내가 엄마를 기억하듯이
내가 왜 일본을 좋아하게 되었을까.
돌이켜보면, 그 시작에는 늘 아내가 있었다.
결혼 전의 나는 먹는 것에도, 꾸미는 것에도, 여행에도 별다른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스물여덟에 아내를 만나 처음 아메리카노를 마셨고, 홍대에서 브리또와 타코를 먹었고, 펌을 했고, 결혼 후에는 일본으로 첫 해외여행을 떠났다. 아내는 내 삶에 처음이라는 단어를 하나씩 늘려 주었다.
아내를 만나기 전의 나는 회색에 가까웠다. 그런데 함께 시간을 보내며 나는 조금씩 색을 입었다. 처음 자유여행을 했던 도시가 도쿄와 오사카였기 때문인지, 일본은 지금도 내게 편안하다. 아직 아날로그의 감성이 남아 있는 도시, 그 느린 온도 속에서 나는 이상하게 마음이 풀어진다.
이번 여행은 다리가 완전히 낫지 않아 지팡이를 짚고 다녔다. 아이들은 재작년에 갔던 산리오월드를 다시 가고 싶어 했고, 우리는 전철을 타고 그곳으로 향했다. 하지만 나는 오래 걷기 힘들어 벤치에 앉아 아이들이 뛰노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멀리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만으로도 충분히 좋았다.
점심은 재작년에 갔던 덮밥집에서 해결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한 카페가 눈에 들어왔다. 90년대의 클래식한 분위기가 남아 있는 레트로한 카페였다. 메뉴판의 팬케익 사진이 유독 눈에 밟혔다.
아내와 나는 이유를 오래 따지지 않는다. 끌리면 들어간다. 그날도 그랬다. 이런 여행 스타일을 보며 큰딸 은비는 우리 가족은 완전 P라며 웃었다. 그래도 우리 가정에는 이런 방식이 더 잘 어울리고, 더 즐겁다.
아내와 나는 커피를, 아이들은 레몬 에이드를 주문했다. 팬케익은 나오기까지 30분이 걸린다고 종업원이 여러 번 설명했다. 마치 주문받기 싫은 메뉴인 것처럼 말이다. 나는 모르는 척 괜찮다며 주문했다.
팬케익이 나왔다. 두툼했고, 따뜻했고, 버터가 천천히 녹고 있었다. 내가 포크로 한입을 먹는 사이, 세 아이들은 허겁지겁 팬케익을 거의 다 먹었다. 채 5분도 걸리지 않았다. 아내와 나는 놀랍다는 듯 미소를 보였다.
한국에 돌아와 사진을 다시 보았다.
그 순간, 오래된 기억 하나가 겹쳐 올라왔다.
어릴 적, 젊고 예쁘던 엄마가 집에서 구워 주시던 두툼한 팬케익. 우유에 찍어 먹던 구수한 맛. 지금은 몸이 많이 아픈 엄마. 결혼 후 서울로 올라와 봉천동 단칸방에서 시작했던 엄마와 아빠. 집에서 늘 소일거리를 하시던 엄마는 본드로 빨간 하트 종이 상자를 하루 종일 붙이며 만들었다. 본드 냄새에 어지러워 약을 드시면서도 손을 멈추지 않던 엄마. 그 이후에도 엄마는 네 남매인 우리를 위해 식당에서, 가죽 공장에서 쉬지 않고 일하셨다.
시간이 지나며 엄마의 몸은 많이 닳았다. 몸이 아프면 마음과 다르게 말이 차가워질 때가 있다. 몸이 약해지면 사랑하는 사람에게 흘려보내던 웃음도 희미해진다.
그제야 알았다. 그날 내가 먹고 싶었던 것은 팬케익이 아니었다. 나는 어린 시절의 나를, 따뜻한 엄마의 품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그리고 엄마의 온기가 담긴 그
팬케익을 우리 아이들에게 느끼게 하고 싶었다.
도쿄에서 아이들이 먹던 팬케익. 언젠가 이 사진 속에서 나를 다시 보게 될 아이들에게, 이 시간은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먼 훗날, 내 육체의 연약함으로, 사랑하는 아이들에게 웃음이 희미해지는 날이 오더라도 이날의 아빠로, 영원히 나를 기억해 주기를.
내가 엄마를 기억하듯이.
오늘은 엄마에게 따뜻한 전화 한 통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