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가에 앉아 있었던 시간

나리타 익스프레스 안에서

by 오승현




어쩌면 나에게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발견하는 일이 아니라, 나의 잃어버린 이야기 한 조각을 다시 발견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사진 한 장 한 장을 들여다보며, 당시 내가 왜 그 장면을 찍었는지를 거꾸로 묻는 방식의 글쓰기. 이번 짧은 도쿄 여행의 기록을 남기려 합니다.


오늘은 나리타 공항에서 시부야로 향하는 기차 안, 창가에 앉아 있던 한 장의 사진에 담긴 이야기입니다.



나리타 공항에서 시부야로 가는 기차 안. 창밖으로 흘러가던 시간이 유독 또렷하게 기억에 남습니다. 특별한 풍경이 펼쳐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산과 들, 끝없이 이어지는 전봇대와 전신주, 낯선 일본의 아기자기한 주택가, 학교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아이들. 그저 그 풍경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던 시간입니다.


요즘 들어 유난히 기차가 타고 싶었습니다. 목적지 없이, 창밖을 한없이 바라보며 그저 멀리 가고 싶은 날들이었습니다.


이번 짧은 도쿄 여행에서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 순간은 화려한 장소도, 특별한 장면도 아니었습니다.


이노카시라 공원에서 마주한 작은 호수와 숲길, 버스를 타고 낯선 좌석에 앉아 풍경을 바라보던 시간, 편의점 앞 철길 옆에서 주민들과 함께 기차가 지나가기를 조용히 기다리던 순간들, 이렇게 기차를 타고 한없이 풍경을 바라보는 시간. 이 모든 시간이 크게 말하지 않아도 마음속에 남았습니다.



돌아보면 내가 여행 속에서 그리워했던 것은 특별한 순간이 아니라 그저 일상 그 자체의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현실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고 아무 생각 없이 걷고, 보고, 머무는 시간. 그 시간이 이번 여행의 이유였습니다.


도쿄에서 내가 원했던 것은 시부야의 분주한 스크램블도, 사람들로 가득 찬 놀이공원도, 맛있는 케이크와 쿠키로 가득한 쇼핑센터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일상처럼 숨 쉴 수 있는 공간, 자유롭게 머물 수 있는 시간이었을 뿐입니다.


누군가는 “그런 시간은 굳이 여행을 가지 않아도 사는 동네에서도 누릴 수 있지 않느냐”라고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나 역시 언젠가는 그런 넉넉한 마음을 가진 진짜 순례자가 되면 좋겠다고 잠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일상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동네 개천을 걷는 산책,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쁜 삶, 지금 이렇게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에 기뻐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는 마음이 조용히 남았습니다.



사춘기를 지난 지도 오래고, 청년의 시기를 지나 이제는 세 아이의 아빠가 된 마흔 중반의 나이. 여전히 설명하기 어려운 삶의 갈증이 내 안에 남아 있음을 느낍니다.


이 갈증이 언제 사라질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지금은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아니면 이러한 삶의 갈증은 당신만을 바라보라고,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작은 흔적일 수 있겠단 생각이 듭니다.


시부야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창가를 바라보다 잠이 들었습니다. 옆자리에 앉은 딸아이는 닌텐도 ‘동물의 숲’ 게임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무도 내가 잠든 줄 모르는 조용한 기차 안에서 잠들었다 깨어나기를 반복하며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다

시부야에 도착했습니다.




한국에 돌아온 뒤 나는 다시 용기를 내어 목포 기차 여행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오래전 떠난 그곳의 풍경과 사람들을 늘 그리워했지만, 아마 이번에도 나는 조용히 다녀올 것 같습니다.


나는 아마,

나만의 추억을 그리는 방식으로,

그곳을 다녀올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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