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는, 피어난 자리로 충분하다.
제주에서 목포로 이사 후 한창 정착하던 무렵이었습니다. 아내와 나는 낯선 지역에 잘 적응하는 편인데, 유독 목포에서는 정착하기까지 더 긴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낯선 지역에 정착하는 것은 나무가 뿌리내리는 것과 같습니다. 나무가 뿌리내리기 위해 생채기 하는 것처럼, 사람도 낯선 지역에 정착하기까지 생채기 시간이 필요합니다. 낯선 동네, 낯선 사람, 낯선 문화, 낯선 음식. 돌아보니 그 흔들림은 그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흔적이었습니다.
제주에서 아름다운 바다가 나에게 위로를 주었다면, 목포에서 내게 처음으로 위로를 준 것은 유달산 가파른 골목집들 앞에 놓인 자주색 플라스틱 대야였습니다.
유달산 아래 가파른 골목, 작은 집들 앞에 놓인 자주색 고무대야. 그 안엔 상추와 대파뿐만 아니라, 심지어 벚꽃나무, 이름 모를 꽃들까지 다양한 생명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참 생소한 광경이었습니다. 생명은 그렇게 투박한 그릇 안에서도 자기 빛깔을 피워냈습니다.
특히 고무대야에 심긴 벚꽃나무 풍경은 내게 무척 낯설었습니다. 제주에서는 늘 넓은 밭과 바다, 오름 자락 따라 핀 나무와 꽃에 익숙했으니까요.
돌아보면 나는 언제나 광활한 땅을 꿈꿨습니다. 그런데 내가 마주한 건 고작 한 뼘의 고무대야였습니다.
어느 날, 유달산 골목을 오르내리던 중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넓은 대지에 심긴 벚꽃나무나, 고무대야에 심긴 벚꽃나무나, 그 존재의 차이는 다르지 않다는 그런 깨달음을요.
삶은 크기로 평가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시절, 나는 외로울 때마다 유달산 아래 골목을 거닐곤 했습니다. 그리고 자주색 고무대야를 바라보며 스스로에게 조용히 되뇌었습니다.
“대지가 넓든 좁든 꽃은 핀다.
그 자체로 귀하고 충분하다.”
그건, 나라는 존재에게 하는 말이었습니다. 우리는 자주 나 자신을 타인과 비교하며 삽니다. 심지어 그것도 모자라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비교하며 삽니다. 얼마나 잔인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우리의 삶은 비교할 수 없는 총체적인 삶인데 말입니다.
마흔이라는 삶을 살며 인생이 내게 알려 준 것이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때에 원하는 모습으로 존재하기란 로또 당첨처럼 낮다는 것입니다. 다양한 삶의 모양을 인정할 때, 우리의 삶은 더 성숙해지고 따뜻해집니다.
오늘도 문득,
유달산 골목 어귀의
그 고무대야에 피어난 벚꽃나무가 떠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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