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한 일
전화 한 통이 일깨운 인연의 가치 (무농)
아침, 뜻밖의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젊은 시절 함께 근무했던 직장 선배였다. 마지막으로 얼굴을 마주한 지가 언제인지 또렷이 떠오르지 않을 만큼 시간이 흘렀지만,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예전처럼 따뜻했다.
“문득 자네 생각이 나서 전화했네.”
그 한마디에 반가움과 함께 미안함이 스며들었다. 나는 늘 바쁘다는 이유로 안부 한 번 먼저 묻지 못한 채 지내왔기 때문이다.
선배는 전화를 걸까 말까 오래 망설였다고 했다. 혹시 부담이 되지 않을지, 괜한 실례가 되지 않을지 고민했다는 말을 듣는 순간, 오히려 내가 더 고마워졌다. 그렇게 우리는 조만간 얼굴을 보자는 약속을 잡았다. 한때는 사람을 만나는 일이 부담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나이가 들수록 사람과의 만남이 점점 더 귀하게 다가온다. 이제는 누군가를 만난다는 사실 자체가 감사한 일임을 알기에, 이번 약속도 기쁜 마음으로 시간을 비워 두었다.
살아가며 우리는 수많은 인연을 맺는다. 그러나 ‘언젠가 연락해야지’ 하는 생각만 품은 채 선뜻 다가서지 못해 관계가 멀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때로는 연락처조차 잃어버린 채 기억 속에만 남아 있는 이름도 있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우리는 바쁨과 피로를 핑계로 소중한 사람들을 뒤로 미뤄 둔다. 시간이 흘러 돌아보면,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만났던 사람들은 좋았든 불편했든 모두 나를 단단하게 만든 존재였음을 깨닫게 된다.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던 의미가 뒤늦게 또렷해진다.
문득 유비가 제갈량을 얻기 위해 삼고초려를 했다는 이야기가 떠오른다. 사람의 가치를 알아보고 세 번이나 찾아갔던 그 정성과 간절함은 인연을 대하는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귀한 인연은 우연처럼 찾아오기도 하지만, 결국은 관심과 진심, 그리고 먼저 다가서는 용기로 이어질 때 비로소 깊어진다.
오늘 받은 전화는 단순한 안부 인사가 아니었다. 그것은 관계를 대하는 나의 태도를 돌아보게 한 조용한 울림이었다. 인연은 시간이 자동으로 쌓아 올리는 결과가 아니라, 마음을 내어 주고 손을 내미는 선택 속에서 자란다. 짧은 안부 한마디가 누군가에게는 오랜 기다림의 답이 될지도 모른다.
우리는 언젠가 모든 시간을 지나 보내게 된다. 그때 곁에 남는 것은 결국 사람일 것이다. 오늘, 마음속에 떠오른 이름 하나를 그냥 흘려보내지 말아야겠다. 인연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소중한 사람을 미루지 않는 삶. 그 다짐이야말로 하루를 더 따뜻하게, 인생을 더 깊게 만드는 시작임을 새삼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