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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나비 Oct 26. 2024

남편을 죽이고 싶을 때가 있었다

하지만 실상 죽고 싶은 사람은...

가족이라는 것은 유일하게 허물을 덮어주는, 가장 가까운 관계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최근에 생각이 바뀌었다. 남편을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이라고 생각하고 살아온 지난 10여 년의 세월, 우리는 오히려 사이가 나빠졌고 나는 남편을 증오하게 되었다. 어느 순간 깨달았다. 사람이 사람에게 온전히 기댈 수 없다는 것을. 서로 지켜야 할 영역이 가장 가까운 사이라도 필요하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우리 부모님도 서로 지나치게 가까웠기 때문에 자주 다투었던 것 같다. 아빠는 우리가 자라고 나서도 때때로 소리를 지르고 심지어 엄마에게 폭력을 휘둘렀고 엄마는 아빠가 이것저것도 못 한다며 종알거렸다. 그것이 나에게는 참 오랫동안 상처였다.     


남편을 '같이 사는 남'이라고 생각하고 대하자 거짓말처럼 남편과 나와의 사이가 달라졌다. 다툼이 줄어들었고 그 사이에 서로를 향한 예의가 생겼다. 남편과 상의하고 내 마음을 바꾼 것이 아니었기에, 변화는 내 주도적으로 시작되었다. 남편은 화를 내도 반응하지 않고 오히려 사과를 하고 거리를 두는 나를 보고 변했다고 했다. 그러고 나서 남편도 조금씩 달라졌다. 자기가 화를 내도 화를 내지 않는 나에게 사과를 했고 화 자체를 줄여나갔다. 화가 나는 일이 있어도 조심스럽게 말하는 것이 나에게까지 느껴졌다. 우리 관계는 그렇게 개선이 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달 째, 우리는 다툴 일이 있어도 조심스럽게 대화로 해결하려고 하면서 전처럼 폭발적으로 화를 내지 않고 서로의 감정을 풀었다. 그렇게 해도 내 안에 쌓이는 나쁜 감정은 변하기 전에 비해 확연히 줄었다. 남편에게는 미운 마음보다도 고마운 마음이 늘 먼저 들었다. 특히 요즘에는 남편이 자주 기침을 하는 데도, 제 의무를 저버리려 하지 않으며 아이를 챙기는 모습에서 많이 고마운 마음이 있었다. 그런데 마치, 누가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바로 오늘 그 모든 것이 다 바뀌어 버렸다.     


남편은 오늘도 아팠고, 병원에 가서 폐 사진까지 찍었다고 했다. 폐가 담배피는 사람의 폐처럼 좋지 않다고 했다. 남편은 약 먹으면 낫겠지, 라고 톡을 보냈다. 나는 얼른 나으라고 답을 보냈다. 그때까지는 분위기가 좋았다. 남편은 아프다는 이유로 아이 하원도 나에게 미루었다가 다시 자신이 하겠다고 했다. 오늘은 아이 발음 때문에 다니는 언어 치료 센터에 가는 날이라서 하원한 아이를 데리고 센터까지 갔다가 왔다. 나는 그 동안 백숙을 한다고 닭을 물에 넣고 푹푹 삶았다. 센터 가기 전 집에 들른 남편은 "닭은 잘라서 넣어야지 안 그러면 제대로 안 익는다"라고 말했고 "나는 몰랐어, 백종원이 그냥 넣으라던데"라는 말로 가볍게 넘겼다. 변하기 전의 나였다면 남편의 말에 자존심이 상해서 다투었을 텐데, 나는 그러지 않고 유연하게 상황을 넘긴 것이었다. 백종원에게 고마운 일이었다.     


아이는 센터 끝나고 집에 왔고 아이를 씻겼다. 아이는 오늘 낮잠을 자지 않고 활동을 하는 날이었다. 어린이집에서는 활동이 많기에 필수로 낮잠 시간을 넣는데, 일곱 살 아이들은 특별히 그 낮잠 시간에 다른 활동을 하기도 했다. 오늘이 그 날이라 그런지 아이가 좀 예민했다. 평소 같으면 그냥 넘어갈 일도 소리를 빽빽 지르면서 화를 냈다. 머리를 감기다가 엉킨 머리칼이 내 손가락에 걸려서 아팠다고, 머리를 너무 오래 감겼다고, 얼굴을 박박 문질렀다고 화를 냈다. 나는 애써 참고 나서 그런 일은 화를 내지 않고 말해주었으면 좋겠다고 내 의사를 전했다. 아이는 입이 댓발이나 나오긴 했으나 그래도 내 요구를 수용했다.     


아이를 씻기고 나서는 밥을 먹었다. 문제는 그 밥을 다 먹고 나서 일어났다. 나와 아이, 그리고 남편이 백숙을 다 먹고 나서 남편이 무언가 찾기 시작했고 나는 방으로 들어왔다. 잠시 후, 남편이 약이 어디 갔냐고 물었다. 휴일이었던 어제, 남편이 기침이 심한데 약이 없다고 해서 나는 내가 예전에 조제했던 기침약을 남편에게 주었다. 오늘 남편이 병원에 갔고 진단을 받았다고 해서 내 방으로 약을 가져왔다. 남편은 그 약을 찾다가 내가 가져갔었다는 것을 알자 말도 없이 주었던 것을 가져가면 어떡하냐고, 계속 찾지 않았냐고 나에게 짜증을 냈다.     


만약 아이가 나에게 먼저 화를 내지 않았다면, 그리고 남편이 그것을 찾았어도 나에게 짜증과 화가 섞인 말투로 이야기하지 않았으면 아무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 모든 일은 일어났고 남편의 화와 짜증은 내게 고스란히 끼쳐 왔다. 나는 일단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방으로 들어왔다. 들어와서도 화는 가라앉지 않았다. 전 같으면 남편이 쏘아붙이면서 같이 화를 냈을 것이다. 참지도 않고 마주 싸웠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남편은 내게 같이 사는 남이었고, 그래도 예의를 지켜야 할 대상이었고, 집에는 아이도 있으니까.     


나는 방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갑자기 억울한 감정이 들었다. 나는 아이 때문에 남편과 안 다투려고 갖은 애를 쓰는데, 아이가 화를 냈을 때도 나는 참았는데, 왜 나한테 저 사람은 참지 않을까. 왜 저 사람은 제가 화를 내고 싶은 대로 내는 걸까. 왜 참는 건 나만 하는 것일까. 실제로는 안 그럴 것이었다. 그도 참는 것이 있었겠지. 하지만 당시의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억울해했다. 나만 내 감정과 싸우면서 홀로 고생하는 것 같았다. 그는 내 고생을 알아주지도 않고, 그저 화내고 싶은 대로 화만 내는 것 같았다.     


다시 그가 있는 부엌으로 간 나는 말했다. "부탁이 있어. 나한테 친절하게 말해줘." 나는 최대한 화 내지 않고 말하려고 했다. 내게 화를 내면서 말하는 것이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는 일인지 그가 알아주기를 바랐다. 어릴 때부터 부모의 화 때문에, 언니 오빠의 화 때문에 얼마나 내가 힘들었는지, 그래서 나는 절대로 아이에게 나와 같은 가정을 물려주고 싶지 않은 것을 그가 살펴주기를 바랐다. 그가 나의 말을 수용하고 받아들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래, 아까 내가 좀 심하게 말했지. 미안해. 거기서 끝냈으면 어땠을까. 그러면 나는 지금 이 글을 쓰고 있지도 않았을 것이요, 편안하게 꿈나라로 갔을 것이다.     


내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미안해. 아까는 내가 짜증이 나서." 시작은 좋았다. 그러나 남편은 아직 다스려지지 않은 감정을 끝내 토해내고야 말았다. "그런데 소통이 안 되잖아. 소통이 안 되는 게 한두 번이 아니잖아. 약을 가져갔으면 가져갔다고 말을 하면 되는데, 왜 그걸 말도 없이 가져가냐고. 나는 일일이 다 말을 하잖아." 나도 말을 했다. 어제 내 약을 주면서, 이건 어차피 먹어야 듣지도 않는다, 성인 남자와 여자는 약의 용량이 다르니까. 그러니 당신 약을 지어와서 먹으라고 했다. 그러고 나서 오늘 병원에 다녀왔으니 내 말을 듣고 자신이 지어온 약을 먹을 것이라 지레 짐작했다.     


그는 듣고 싶은 말을 듣고, 듣기 싫은 말은 듣지 않았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약이 필요하다는 말은 듣지 않고 그에게 내 약이 듣지 않을 것이라는 내 확신만 들었다. 그래서 나는 말도 없이 약을 가져가 버렸고 그는 소통이 안 된다는 말로 나를 '공격'했다. 솔직히 그것이 공격인지 아닌지 그의 입장을 나는 알지 못한다. 그저 나에게 공격으로 닿았을 뿐이었다. 나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감정은 죄책감이다. 부모의 다툼을 보며, 나는 내가 태어나지 말았으면 오히려 나았겠다는 생각을 했었고, 엄마의 하소연을 들으며 나는 내가 없었다면 엄마가 좀 더 자유롭게 아빠로부터 벗어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존재에 대한 죄책감이 있다. 그리고 이것을 누군가 건드렸을 때 나는 폭발한다.     


남편의 말은 "다 네 잘못이야, 이렇게 된 건 다 네 탓이라고!"라고 하는 말로 들렸다. 참고 참았던 감정은 터져 버렸다. 그 말은 내 오랜 죄책감을 건드렸고, 내가 더는 살아서 안 된다는 말의 증명으로 들렸다.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선반의 빈 깡통을 바닥에 던지고 있었다. 나도 모를 말들이 꽥꽥 소리를 내며 터져 나왔다. 혼자 머리끈을 가지고 놀던 아이가 동동거리며 내 곁으로 왔다. 남편은 잠시 멍한 눈으로 나를 보더니, "들어가든지 나가든지 해."라고 말했다. 남편도 화가 났으나 더는 말하지 않고 참는 듯했다. 나는 방으로 들어왔다. 마침 베개 위에는 수건이 있었다. 나는 수건으로 내 얼굴을 닦았다. 눈물이 끝없이 흘렀다. 그 동안 참았던 것이 도루묵이 되어 버린 것 같았다. 나는 이제 더는 쓸모가 없는 인간이 된 것 같았다.     


처음에 든 생각은 죽어야 겠다는 생각이었다. 그토록 안 하려고 했는데 기어이 비집고 나와 버린 생각이었다. 모든 것이 내 잘못이라는 메시지에 나는 정말로 모든 것을 놓아 버렸고, 따라서 아이에게 좋은 가정을 만들려고 했던 것을 한순간에 망쳐버린 것 같았다. 나는 있어서는 안 될 사람이었다. 예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안 태어나는 것이 가장 좋았을 사람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끝도 없이 울었다. 울어도 울어도 눈물은 계속 났다. 그러고 있는데 아이가 내 곁으로 왔다.     


아이는 평소처럼 밝은 얼굴로 내게 다가왔다. 어쩌면 혼자 이 집에서 상처받지 않은 듯했다. "엄마." 아이가 입을 열었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울어?" 나는 멍한 눈으로 아이를 보았다. 아이는 일곱 살인데, 그 순간은 아이가 칠십 살로 보였다. 저 아이는 어떻게 내 마음을 알까. 내 마음이 죄책감에 물들어 있는 것을. 나는 아이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소리를 질러서 미안하다고. 아이는 괜찮다고 했다. 아이는 남편과 나의 과정을 다 보았다. 때로 남편이 나에게 길게 잔소리를 하는 것도 아이는 다 보았다. 언젠가는 남편이 나에게 "이렇게 한 것은 잘못이잖아."라고 말했다. 그날은 내가 실수한 것이 맞아서, "맞아, 그러네."라고 동조했다. 그랬더니 나에게 다가온 아이가 말했다. "엄마, 나도 잘못하는 거 많아. 나는 말이지, 이것도 잘못하고 이것도 잘못해." 그날 아이는 지금처럼 칠십 살이었다. 마치 '인턴' 영화에 나오는 그 연륜 있는 인턴처럼, 인생 2회차처럼 아이는 나를 곁에서 위로해 주었었다.     


아이가 가고 나서 남편도 내 곁으로 왔다. 남편은 이미 아이에게는 소리질러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한 후였다. 누워 있는 내 몸을 톡톡 건드리며 남편은 "미안해."라고 말했다. "몸이 아파서, 그리고 아이가 밥을 먹는데 말을 안 들어서." 남편도 나와 비슷한 상황이었다. 씻기면서 소리를 꽥꽥 지르는 아이에게서 스트레스를 받았던 나처럼, 남편도 아이에게 밥을 먹이며 비슷한 스트레스를 받았고, 아이에게 화를 내면 안 되니까 참았는데 그게 약을 찾으며 폭발한 모양이었다. 나는 "나도 미안해."라고 말했다. 뭐가 미안한지는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자꾸 눈물이 나서였다. 그러고 나서도 내 마음은 풀리지 않았다. 나를 괴롭힌 것은, 남편이 나에게 화를 냈다는 사실보다도 그것을 못 참고 결국 아이 앞에서 물건을 던지고 못난 모습을 보인 나였다. 그런 내가, 나는 용서가 되지 않았다.     


나는 때때로 남편을 죽여버리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로 미웠다. 하지만 실상, 죽고 싶은 것은 나였다. 남편과 다툴 때마다, 남편의 말이 공격으로 내게 들릴 때마다, 내 마음 속의 소리가 "그래, 안 태어날 것을 그랬지." "그래 넌 죽어야 하는 인간이야." "네 죄책감을 너는 해결할 수 없어."하고 속삭였다. 남편은 그저 자기가 힘들다고 하소연을 하는 것인데, 오늘도 따지고 보면 몸도 아픈데 아이도 징징거리고 약도 찾으니 없어서 나에게 아이처럼 툴툴거린 것인데 그것을 나는 "너는 죽어야 할 몹쓸 인간이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내 감정을 따라 패악질을 부리고 '그래, 이렇게 행동하는 것을 보니 나는 죽어야 하는 인간이 맞지'라고 생각하며 침대에 누워서 울고만 있었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 화를 냈던 것은 어쩌면 죽고 싶어서가 아니라 살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그 어린 날의, 부모는 내게 주지 않았지만 내가 홀로 견뎌야 했던 메시지, 내가 아무 필요도 쓸모도 없고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는 그 메시지에 대해서 그게 아니라고 그러고 싶지 않다고 내 마음의 소리가 울부짖은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침대에 누운 것도 그저 위로를 받고 싶어서일지 모른다. 누군가 이런 나의 생각을 부인해 주기를. 너는 그래도 살 가치가 있다고. 너는 죽어야 할 몹쓸 인간이 아니라고. 나는 진실로 죽고 싶은 것이 아니라, 누군가 그런 나를 온 마음으로 사랑해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 마음이 보이니 더는 괴롭지 않았다. 나는 내 오랜 신앙의 힘에 의지해서 기도했다. 그리고 외롭고 추웠던 나를 마음으로 안아 주었다. 그 동안 오해와 불신 속에서 홀로 떨었을 어린아이를, 그래서 아이처럼 화를 폭발시킬 수밖에 없었던 그 불쌍한 존재를. 그러지 말라고 꾸짖는 대신에 그저 안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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