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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나비 Oct 26. 2024

엄마 모임의 함정

엄마 모임에서 내가 얻고 잃은 것들

요즘 이혼 관련 콘텐츠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혼 전문 변호사를 다룬 드라마가 큰 인기를 끄는가 하면, 이혼을 앞둔 부부들을 대상으로 캠프를 열어서 이혼의 원인을 찾고 그 해답을 찾아가는 프로그램도 있다. 이혼을 한 연예인들이 나와서 일상을 보여주고 함께 교제를 나누기도 한다. 이혼은 과연 이 시대의 핫한 콘텐츠 같다. 이것은 예전보다 오늘날 이혼을 더 쉽게 말할 수 있는 분위기여서인 듯도 하다. 예전에는 이혼을 하면 나쁜 사람, 이혼을 한 여자나 남자를 손가락질하는 분위기가 대다수였지만 지금은 그런 분위기가 변화하고 있다. 서로 맞지 않으면 이혼할 수 있고 그런 선택 또한 응원해야 마땅하다는 목소리들도 요즘은 힘을 얻고 있는 추세다.


나 역시 이혼 관련 콘텐츠들을 즐겨 소비하는 시청자 중의 하나다. 그중 하나가 '이혼숙려기간'이라는 프로그램인데, 이혼을 앞둔 부부들의 모습이 매우 적나라하게 나와서 자극적이기도 하지만, 결혼 10년차가 넘어가는 나에게는 매우 공감이 되는 지점들이 많아서 더 몰입해서 보았다. 특히 아내가 남편에게 막말을 하거나 때리거나 '너 때문에 내 인생이 망했다'면서 신세한탄을 하는 경우에 더 그런 것을 크게 느끼는데, 그것은 내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남편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면서 내 결혼은 망했다는 생각을 거의 매일같이 했기 때문이다. 그때 우리집은 늘 싸움 직전의 아슬아슬한 상황이거나 싸우고야 마는 상황이었고 그속에서 상처를 받는 아이는 뒷전이 될 수밖에 없었다.


최근에 본 내용은 어느 욕을 잘하는 아내에 관한 내용이었다. 그 사람은 욕과 비속어를 일상적으로 쓸 뿐만 아니라 제 화를 참지 못해서 물건을 던지고 소리를 지르는 일도 매우 잦았다. 그는 자신의 남편 때문에 너무 힘들다, 남편 때문에 되는 일도 안 된다며 남편 탓을 매우 많이 했다. 남편 역시 화를 다스리지 못하고 아이들을 무섭게 훈육하는 모습이 있기는 했지만, 한편으로는 직장을 다니면서도 휴일에는 오로지 집안일과 아이들 돌보는 일에 헌신하고 퇴근을 해서도 마찬가지의 모습을 보였다. 그런 남편에게 아내는 단 한 번도 고맙다 고생한다 수고한다는 말을 하지 않고, 남편이 아내의 잘못을 지적하면 화를 내며 그의 말을 거부했다.


그 아내의 모습은 바로 내 모습이기도 했다. 내 남편도 매우 헌신적으로 집안일을 했다. 식기세척기를 산 후로는 설거지는 꼭 자신이 했고 분리수거도 나는 거의 한 적이 없다. 아이 가방을 싸는 것도 남편이 했다. 남편이 요리를 잘 못 하는 까닭에 요리는 내가 했으나 그 외에는 대부분 남편이 했다. 나는 프리랜서라 집에서 일을 하지만 마음만 먹으면 집안일은 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남편은 내가 몸이 약하고 힘들어하니까 청소를 제외한 집안일은 하지 말고 두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런 남편에게, '당신이 당연히 해야 할 것을 하는 것이지'라고 말하곤 했다.


남편은 말을 잘 하지 못했다. 다시 말하면, 사람이 듣기 좋은 말을 잘 하지 못했다. 남편의 말은 직설적이었고 때로 나를 향한 말은 지시와 명령뿐이기도 했다. 이거 해야 하는데 왜 안 했어? 이거 했어야지. 퇴근하고 나서 설거지를 하면서 그릇 정리에 대해 잔소리를 하는 그를 보면 짜증이 났다. 나도 내 일도 하고 나름 쉰 것도 아닌데, 좋은 말도 많은데 왜 꼭 지적부터 하는지 싶었다. 그러면서 남편이 '오늘 요리 맛있었어.' '수고했어'라고 짤막하게 하는 이야기는 귀담아 듣지 않았다. 그리고 남편이 하는 부정적인 말만 꼬투리를 잡고 싸움을 했다.


이렇게 쓰니까 내가 되게 쓰레기 같은데, 정말 사실이라 변명할 것도 없다. 나는 왜 내 모습을 객관적으로 파악하지 못했을까. 왜 이렇게 살면서, 남편이 힘들어하는 데도 그것이 당신 탓이라며 정신과나 상담이나 받으라고 그를 내몰았을까. 그가 참다참다 힘들어서 고함을 지르고 물건을 집어 던졌을 때 왜 그의 마음은 알아주지 않고 그 행동만 보고 '당신과 더는 못 살겠다'며 며칠이고 그가 내게 빌게 만들었을까. 지금 생각하면 모두 후회가 될 일이고 땅을 칠 일이다. 무엇보다도 이것에 영향을 받은 사람은 아이였는데, 아이는 부정적인 말을 많이 했으며 불안해했고, 친구 관계에서도 부정적인 모습을 많이 보였다. 어린이집에서도 걱정된다고 할 정도였다.


다시 프로그램으로 돌아와서, 그 아내는 꼭 나처럼 그렇게 힘든 남편을 몰아세우고, 자신을 충분히 사랑하지 않는다고 다그쳤다. 그 남편은 하다하다 지쳐서 어쩔 줄을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밤. 그날도 주말에 남편은 계속 일을 하고 아내는 휴대폰으로 인터넷을 하고 인스타를 하며 보냈다. 그러다 밤 열두 시가 되었을 때, 아내는 어디론가 나갔다. 아파트 주민들이 있는 단톡방이 있는데, 그 단톡방에 번개를 모집한 것이었다. 남편이 쓰러져 있는 집에서, 아내는 몰래 나와서 같은 아파트 엄마들과 호프집에서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 내용은, 대부분 남편 욕이었다.


나는 비로소, 내가 왜 함정에 빠져서 내 모습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했는지 깨달았다. 물론 그 이유만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아주 많은 부분 그 영향이 있었을 것이라 보인다. 바쁘고 힘든 엄마들은, 모여서 이야기를 하면서 스트레스를 푼다. 나 역시 교회, 어린이집, 그리고 고등학교와 대학교 친구들을 만나면서 '엄마가 된 이야기'를 많이 한다. 당연히 누군가의 엄마가 되는 것은 힘들다. 미숙한 존재를 성숙한 존재로 만드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단순히 '엄마가 되는 힘듬'을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런 것은 서로 용기를 북돋아 주고 격려하게 되는 그런 자리이다.


문제는 그 모임의 화살이 누군가를 향할 때이다. '내가 어제 아이에게 소리를 질렀는데 너무 속상하다'이런 이야기는 서로 나누고 위로를 받고 다시는 그러지 말자며 대응책을 나눌 수 있는 이야기다. 그런데 '내가 어제 아이에게 소리를 질렀는데, 그게 실은 남편이 어제 늦게 들어와서 그런 거였지'라고 이야기가 전개되면 그 화살은 남편에게 향하게 된다. 그러면 서로 남편이 얼마나 쓰레기이며, 남편이 얼마나 자신에게 못하며, 남편이 얼마나 못됐는가를 이야기하면서 입에 침을 튀기게 된다. 그러면 어느새 아이에게 소리를 지른 것에 대한 반성은 저리가고, 남편에 대한 공격만이 그 자리에 남게 되는 것이다.


방송에 나온 그 여자도, 솔직히 처음부터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남편에 대한 미움이 동조를 얻고, 자신이 얼마나 힘든가가 북돋아지면서 '그래, 잘못된 건 내가 아니었지'라는 결론에 다다르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분명히 아이 앞에서 몹쓸 꼴을 보이고, 남편에게 못되게 대하는 것은 맞는데 나는 내가 한 것은 쏙 빼고 남편이 내게 한 말만 편집해서 들려주면서 남편을 '천하의 못된놈'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러면 그것을 듣는 사람들은 당연히 남편 욕에 동조할 수밖에 없다. 남편이 왜 그런 말을 했고, 남편이 진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었으며, 그래서 이런 문제는 어떻게 풀어가야 좋을까 하는 것은 뒷전이고 그저 자신을 정당화하고 나를 위해 희생하는 사람은 못된놈을 만들어 버린다. 그러면 변화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실상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들은 좋은 사람들이지만 그들은 또, 내 이야기만을 듣고 모든 것을 판단하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그리고 나에게 직언을 했다가는 나와의 관계가 끊어질까 두렵기도 했을 것이다. 사람이 사람에게 바른 말을 하는 것이 쉽지 않다. 나조차도 거의 못 한다. 그러므로 다만 하고 싶은 말을 숨기고 있을지도 모르는 것인데, 그런 그들의 말에 의존해서 나를 정당화하고 내가 사랑해야 할 사람을 미워하고 그를 오해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있을까. 


나는 어느새, 엄마 모임에서도 누군가를 비난하고 공격하는 말만 하거나 자신이 불쌍하다는 말만 하는 사람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그저 남편과의 일상 이야기, 아이와의 행복한 이야기만으로도 엄마 모임은 풍성해질 수 있다. 그리고 아이에게 실수를 한 이야기, 소리를 지르거나 아프게 한 이야기 역시 솔직히 말하고 위로를 받으면서 그 책임을 누구에게 돌릴 것이 아니라 앞으로 그러지 않기 위한 건설적인 이야기들도 하면 좋겠다. 이런 이야기 역시 계속 위로를 받다 보면 '소리를 지를 수도 있지' '그렇게 하는 엄마들 많아'라면서 자신을 합리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을 때 무조건 위로를 해주는 이들 보다는 '그럴 때 아이들이 상처를 받을 수 있다'고 솔직히 말해주는 지인들이 곁에 있는 것이 더 좋은 듯하다. 


엄마 모임은 잘만 하면 정말 좋은, 풍성한 모임이 될 수도 있다. 한 권의 좋은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눌 때에도 욕보다는 칭찬, 까내리는 말보다는 세워주는 말, 그리고 위로와 더불어 서로에게 도움이 될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잠시 후일담을 나누자면, 나는 정신을 차린 후에 습관적으로 남편에게 '잘한다' '고생한다' '멋지다' '사랑해'라는 말을 한다. 듣든 말든, 어떻게 반응을 하든 계속 한다. 그랬더니 남편도 어느 순간 그런 말을 내게 하기 시작했고, 아이까지 그 말을 따라하기 시작했다. 아이는 현재 어린이집에서 많이 달라졌고, 예전 모습도 물론 남아 있지만 교사의 말에 공감하고 위해주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특히 동생들에게 자상하게 알려주고, 예전에 보였던 소리지르는 모습은 지금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고 한다.


이런 말이 다소 꼰대같이 보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여자 입장에서 힘든 것은 힘들다고 이야기를 해야 하는 것도 맞다. 하지만 이것은 극단까지 갔던 나의 글이고, 내 남편이 또 헌신적인 사람이었고 내가 그 모습을 간과하였기에 벌어진 일 같기도 하다. 모든 경우에 다 맞지는 않을 것이지만 나와 같은 경우가 방송에 나온 경우도 있는 것으로 보아서는 또 결코 적지는 않을 것 같기도 하다. 결론적으로, 남자든 여자든 먼저 깨달은 사람이 손을 내밀고 상대의 말을 들어주고자 노력하면 그 가정은 이전과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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