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렴에 걸리고 나서 알아낸 것들
오늘 병원에서 폐렴을 진단 받았다. '폐렴'이라는 어마어마한 진단명에 비해 내 증세는 그리 무겁지 않다. 목이 아프고 기침이 나는 정도도 크지 않은데 다만 새벽 두 시만 되면 열이 오른다. 무슨 짜고 치는 것처럼 그 시간만 되면 열이 치솟는데 그 전에도 서서히 열은 오르고 있으므로 잠들지 못 한다. 그냥 해열제 먹고 자면 되지 않나 싶은데 열이 오르고는 있는데 충분히 오르지 않은 상태에서는 먹으면 안 될 것 같아서 기다리다가 새벽 2시에 이제는 더 미룰 수 없는 타이밍이라 생각해서 먹으면 땀이 나면서 몸이 축 늘어진다. 새벽마다 그러니 몸이 축나고 기운이 없어졌다.
열은 추석 연휴 시작날인 며칠 전에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38도 정도라 감기 몸살인가 싶었는데 다음 날 아침 39도가 되었다. 추석 당일이라 문을 연 병원이 없어 365일 연중무휴인 소아과에서 항생제 처방을 받았다. 항생제를 먹고 자니 열이 떨어지고 한결 나아졌는데 새벽 두 시가 되니 또 열이 올랐다. 그래서 집에 있던 해열제를 먹으니 또 30분만에 열이 내려갔다. 다음 날 아침 다시 열이 올라 약을 먹으니 괜찮아졌고 낮에는 딱히 약을 먹지 않아도 괜찮다가 또 새벽 두 시가 되니 열이 올랐다. 그런 날이 며칠 반복되니 뭔가 이상하다 싶었다. 하도 감기에 많이 걸려서 열감기 목감기 기침감기 코감기 등 감기에는 다수 경험이 있는데 이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보통은 하루이틀 정도 열이 나고 그 후에는 열이 완전히 떨어지고 기침이나 콧물 쪽으로 증상이 옮겨가는데 며칠이 지나도 열이 일정한 시간에 계속 나니 감기가 아닌 것 같은 강한 느낌이 왔다.
아닌 게 아니라, 지난 주에 우리 아이가 폐렴이라서 밀착 간호를 했어야 하는 상황이 있었다. 폐렴 걸린 아이 옆에 같이 숨을 쉬며 자고 먹고 놀았으니 아이의 균이 내게로 옮겨왔을 확률은 아주 높았다. 폐렴은 전염되는 질병은 아니라고 알고 있지만 호흡기 질병이기도 하니 침과 분비물 등으로 충분히 전염될 수도 있을지도 몰랐다.
연휴가 끝난 평일. 어김없이 아침에 또 열이 나서 약을 먹고 죽은 듯이 쓰러져 자다 일어나니 벌써 점심 즈음이었다. 증상은 다 가라앉고 푹 자서 그런지 개운했다. 약간 멀고 큰 병원을 갈까 그냥 동네 병원을 갈까 하다가 큰 병원은 갈 시간을 놓쳐서 동네 병원이라도 가자는 생각으로 집을 나섰다. 동네 병원은 한산했고 나는 5분도 되지 않아 진료를 받았다. 동네 이비인후과 선생님은 내가 비염으로 자주 처방을 받는 분이었는데 이 병원 비염약은 한 번만 먹어도 잘 들어서, 나는 보통 한 번 받은 약은 쟁여놓고 비염이 올 때마다 먹곤 했다. 의사 선생님은 나이가 좀 있고 경험도 많은 분이었다. 나는 증상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며칠 전부터 열이 나는데요. 밤마다 열이 나는데 지금은 열이 안 나긴 하는데..."
"목이랑 코 좀 볼게요. 음, 별로 안 부었는데."
"그런데 열이 나는데요. 일주일 전에 간호한 저희 아이가 폐에 이상이 있다고 해서..."
"많이 붓진 않았어요. 네, 다 됐습니다."
"그래도 열이 나는데요."
"지금은 안 나잖아요."
나는 이건 뭔가 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진료실을 나왔다. 약국에서 약을 타는데, 그나마 소아과에서 지어 주었던 항생제도 없다는 말을 듣고 굉장히 당황스러웠다. '아니 열이 나면 염증이 있다는 건데 왜 항생제 처방도 안 했을까.' 의사는 목이 별로 안 부었다는 말만 반복하면서 처방을 내렸을 뿐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마침 폐렴 이력이 있는 지인과 카톡을 하게 되었다. '그래도 열이 그렇게 나는데 폐 사진은 찍어보는 게 낫지 않느냐'는 권유를 듣고 나는 그 지인이 감기인 줄 알고 감기약만 줄창 먹다가 결국 폐렴으로 입원했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오늘도 열이 나면 한 번 다른 병원을 가 보겠다고 하면서, 나는 비장한 각오로 밤을 기다렸다.
그리고 그날 밤, 계시처럼 새벽 두 시에 어김없이 열이 올라 정점을 찍었다. 뜨거운 배를 매만지며 내일은 갈까 말까 고민했었던 집 근처의 종합병원에 가야 겠다고 생각하고 잠이 들었다. 그 다음 날이 바로 오늘이었다. 나는 차를 몰고 무려 5분을 운전해서 종합병원으로 갔다. 차로는 5분이지만 걸으면 30분이 넘기도 해서 가기 망설여졌는데, 이제는 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나름 각종 검사도구를 갖춘 곳이라 바로 이러저러한 검사도 진행하면 되겠다 싶었다.
호흡기 내과 선생님은 내가 한 말을 꼼꼼히 살펴 주셨다.
"지난 월요일부터 열이 났고, 지금은 기침이 나고 목이 아프다고요."
"네. 밤마다 열이 나요."
"열이 몇 도까지 올라갔었어요?"
"39도까지 갔었어요."
나는 아이가 페렴이었다는 것도, 그 아이를 돌보았었다는 말도 했다. 이비인후과에 갔을 때와 거의 비슷하게. 그러나 그 답은 그때와 달랐다. 내가 무슨 말을 하건, 내 목만 살펴보고 별로 붓지 않았다고 처방을 내리고 나를 내보낸 그 의사와 달리 호흡기 내과 의사는 이렇게 말했다.
"열이 39도가 넘었다면 폐렴 의심이 되는데요. 사진을 한 번 찍어보는 게 낫겠어요."
안 그래도 사진을 찍을까 했었는데, 나는 내 마음을 딱 알아주는 의사 선생님을 만나서 가슴을 쓸어내렸다. 안 그러면 의사가 처방도 안 했는데 사진 한 장 찍어달라 매달리는 꼴이 될 것 같아서 걱정을 했었다. 사진을 찍고 나서 다시 진료실로 가니 의사 선생님이 말했다.
"폐렴인 것 같아요. 여기 이 부분에 지저분한 거 보이죠? 열이 그래도 해열제 먹으면 잘 내려가니까 입원은 하지 말고 집에서 약 먹고 경과를 살펴보도록 합시다."
집으로 돌아와 나는 새 약을 먹었고, 그리고 새벽 두 시가 되어 가는 지금 아직 열이 날 것 같은 기미는 없다.
나는 이비인후과 의사와, 호흡기 내과 의사와의 차이를 생각해 보았다. 단순히 작고 큰 병원의 차이일까. 우리집에서 얼마나 가까우냐의 차이일까. 아니면 이비인후과에는 폐가 포함되지 않았기에 잘 몰랐던 것일까. 그럴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의사의 태도에도 중요한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비인후과 의사는 애초에 내 말을 잘 듣지 않았다. 그는 그저 현재 나의 상태를 보고 나름의 판단으로 처방을 내렸다. 물론 동네 이비인후과에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경미한 병 때문에 오는 경우이고 내가 열이 난 지 며칠 안 되었다고 판단해서 일단은 약한 약으로 처방한 후에 경과를 지켜보려는 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가 내가 폐렴에 걸린 아이를 지난 주에 간병했었고, 매일 같은 시간에 열이 나며, 그 열이 위험하다싶은 고열이고, 4일이 되도록 꾸준히 열이 난다는 것을 조금 더 귀기울여 듣고 생각했다면 다른 처방을 내릴 수도 있었을 것이요, 다른 큰 병원에서 엑스레이를 찍어보라 권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에 비해 호흡기 내과에서는 내 말을 일단 주의 깊게 듣고, 열이 몇 도까지 올랐느냐는 추가적인 질문도 했다. 내 말을 제대로 경청한 의사 덕분에 나는 제대로 내 병을 알고 치료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사람과의 관계도 이와 같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나는 사람의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이 아니었다. 특히 가까운 사람들에게 그러했는데 그 까닭은, 그들의 말을 편견 없이 듣기에는 내가 그들에 대해 가진 생각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그들이 어떤 말을 해도 '편견'이라는 필터가 걸러서 내게 다가오는 말은 전혀 다른 목적의 말이 되곤 했고 그 결과 나는 가까운 이, 특히 남편과 빈번한 소통의 오류를 겪었다. 하지만 진정한 관계를 위해서는 일단 내가 가진 편견을 내려놓고 그 사람의 말을 있는 그대로, 그 사람이 의도하는 대로 들어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들어주고 난 후에 그 사람에 대해서 생각해도 늦지 않기도 하고 말이다. 그렇게 했을 때 그 사람과 나는 조금 더 가까워질 수 있고 그 사람의 진짜 모습에 다가갈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서로를 치료할 수 있는 건설적인 관계로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내가 가진 지식, 편견, 배경을 내려놓고 그 사람의 말을 있는 그대로 들어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런 어려운 일은 반드시 좋은 결실을 맺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럴 때, 나는 내 목소리도 더 잘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실상 상대의 말을 가로막는 내 편견이라는 것은, 나의 해결되지 않은 상처나 욕망 혹은 버리지 못하는 기억 등에서 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편견을 제거하기 위해 마치 염증이 있는 몸에 항생제를 투여하듯이 뚜렷한 노력을 할 때에 남의 목소리와 더불어 내가 진짜 하고 싶었던 말과 나의 욕구들이 보이면서 나 자신도 좀 더 투명하고 건설적으로 표현해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그런 '성숙'으로 나아가는 과정 중의 어느 지점에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