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병자라는 말도 아까운 배신자
유독 피곤한 날이었다. 평소보다 한 시간 늦게 잔 데다, 친구를 만나서 회포를 푸느라 장장 6-7시간을 수다를 떨어댔고 저녁으로 카레를 만들고 하원한 아이가 아빠랑 노는 동안은 급하게 그날 써야 할 글을 썼다. 아이와 함께 아홉 시 반 정도 잠자리에 누웠다. 보통은 아이가 잠드는 것을 지켜본 후에 일어나서 책을 읽거나 다른 것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데, 많이 피곤했는지 그대로 꿈나라로 가고 말았다. 요의가 느껴졌는지 꿈자리에서는 내내 화장실에 갈까 말까를 고민했다. 여섯 시 조금 넘어서 아이가 일어나서 화장실에 가겠다고 했고 나도 그제야 요의를 느끼고 화장실에 갔다. 간밤에 뭐가 없었나 하고 습관적으로 페이스북을 보는데, 평소와는 다른 극악한 분노의 말들이 맥락없이 이곳저곳에서 튀어나오고 있었다. 더 이상한 것은 그 맥락 없는 말들을 또 과한 공감으로 호응하는 이들이었다. 무언가 나만 모르는 일이 일어난 것 같았다.
다음 날이 되어서야 나는 밤새 계엄령이 선포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일어났을 때는 이미 그것이 해제가 된 후였으나 아직도 그 후폭풍은 계속되고 있었다. 정치에 문외한인 나도, 계엄령이 언제 선포되어야 하는지는 알고 있었다. 그것은 전쟁이 일어났을 때와 같은 중요한 국가적인 위기가 있을 때에 군대가 대통령의 명령으로 모든 것을 통솔하는 것이다. 찾아보니 계엄령이 선포되면 군대를 제외한 모든 것은 멈춘다고 한다. 언론, 출판, 집회 등등이 사라지고 오로지 군대와 그 군대를 통솔하는 대통령의 지시에만 따라야 한다. 한 마디로 ‘어떤 아주 중요한 것, 예를 들면 전시 상태에서 민간인들의 목숨 보전 등의 이유 때문에 민주주의를 일시적으로 멈추는 일’인 것이다.
하지만 우리 나라에서는, 불행히도 전시 상태에서 계엄령이 선포된 예가 없었다. 우리 나라에도 여러 번 계엄령이 선포되었지만 그것은 대부분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이들을 억압할 때 일어났다. 적법한 절차로 그들을 다스릴 수 없으니 계엄령을 이용해서 그들을 없애버렸던 것이다. 평소라면 군인이 민간인을 학살하거나 제압하는 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하지만 계엄령이 선포된 상황이라면 가능하다. 그랬기에 1980년 5월 광주에서도 군인들이 민간인들을 상대로 마구 발포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 2024년 12월 3일에는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났기에 계엄령까지 선포되었던 것인가. 놀랍게도 아무 일도 없었다. 심지어 북한에서 늘 띄우던 오물 풍선조차도 띄우지 않은 날이었다. 다만 대통령이 계속되는 국회와의 마찰로 나름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을 것이라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계엄령 선포 후에 가장 먼저 일어난 일이, 군대가 국회의사당으로 쳐들어온 일인 것을 보면 그것을 알 수 있다. 다른 나라도 아닌 같은 나라에서, 같은 나라 사람끼리, 총을 들고 무장을 한 채 공격을 한 것이다. 단지 국회와의 사이가 벌어졌다는 이유로, 국회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계엄령’이 선포되었다는 것이 참으로 놀랍다.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는 우리 사회의, 양심 없는 사람들에 대한 글이다. 심리학 책 같기도 하고 에세이 같기도 한 이 글은, 양심 없는 이들에 대해서 자세한 사례를 곁들여 소개하고, 그들에게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지를 더불어 조언하고 있다. 100명 중에 약 4명 정도인 ‘양심 없는 자들’은 사회 곳곳에서 자신이 속한 곳을 망치고 있다. 문제는 그들은 스스로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바뀌지 않는 이유는 그들이 양심이 없기 때문이다. 양심이 있어야 스스로 돌아볼 줄도 알고 반성도 할 줄 아는데 그게 없으니 돌이킬 방법도 없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그들이 ‘나는 양심 없는 자이다’하고 써 붙이고 있지 않는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들은 감옥에만 몰려 있지도 않는다. 놀랍게도, 그들은 사회 지도층에도 있다. 심지어 대통령도 될 수 있다. 양심이 없는데, 대통령이 된다면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날까. 그러니 조심해야 하는 사람들은 바로 양심이 있는 96명의 사람들이다. 그 4명의 양심 없는 이들에게 올바르게 대응하지 못한다면 휘둘리고 이용 당하다가 결국 말도 못 할 피해를 입게 되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양심 없는 이들이 그렇게 된 것은 놀랍게도 유전적인 영향이 가장 크다고 하고 있다. 그 외의 환경적인 이유도 있겠지만 그것은 뚜렷하게 밝혀진 바가 없다고 한다. 물론 어릴 때의 애착 등의 이슈로 인해서 반사회적 경향을 지닌 이들도 있다. 하지만 후자와 같은 이들은 보통은 다른 사람들에게 매력 있게 다가가지 못하고 따라서 외톨이인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하지만 유전적인 이유로 그렇게 된 사람들은 매력적이며 착하게 보이기도 하고, 친화력도 있어서 쉽게 다른 사람들에게 호감을 살 수 있다. 하지만 양심이 없기에 아무 거리낌 없이 거짓말을 하고 남을 이용하며 다른 사람들을 고통 속에 빠뜨리고도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그러므로 내 옆의 사람, 심지어 아주 가까운 사람이 이런 사람일 수도 있는 것이다.
아마도 양심이 없는 사람들은, 이런 책 자체에 흥미를 느끼지 못할 것이다. 대부분 이런 책을 집어 드는 사람들은, ‘양심 없는 자들’로 인해 고통을 받았던 96명의 사람일 확률이 크다. 이 책은 그런 사람들에게, 양심이 없이 사는 이들이 결코 승리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들이 이기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의 내면은 더없이 황량하며, 끝없이 도파민만 추구하는 그들은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고 있다. 사람들과 진정으로 소통하고 사랑할 줄 모르는 그들은 인생의 참 맛을 알지 못하며, 죽을 때까지 그저 지루하게 살다가 세상을 떠난다. 나는 이것을 읽으며 문득 전두환을 떠올렸다. 그는 쿠데타를 일으켜 대통령이 되었고, 대통령이 된 후에도 이루 말로 할 수 없는 잔학한 짓을 저질렀다. 그는 천수를 누리고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났다. 그는 죽을 때까지 호화롭게 살긴 했으나 그의 손자인 전우원 씨에 따르면 그의 가정은 그다지 행복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가족들은 서로 돈을 가지고 다투었으며, 전우원 씨의 아버지는 외도와 방탕한 삶으로 제 전반적인 삶을 채웠고 전우원 씨와 그의 어머니는 오래 우울증을 앓아야 했다. 그 과정에서 마약에도 손을 댔다. 호화롭지만 내면은 황폐한 삶, 그것이 바로 ‘양심 없는 자’가 만들어낸 세상일 것이다.
반면에 양심이 있는 자들은, 양심이 없는 자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조심하기만 한다면 이 사회의 대부분을 구성하는 양심 있는 자들과 함께 행복하게 살 수 있다. 서로 사랑을 나누고 교감하며, 이해하고 용서하고 용납하면서 양심 없는 자들은 상상도 하지 못하는 그런 삶을 살아낼 수 있다. 돈이 많이 없어도, 외적인 조건이 완벽하지 않아도 그저 함께 있는 것으로 행복하고 감사한 삶, 그런 삶이 바로 양심 있는 자들이 만들어낼 수 있는 삶이다. 그러므로 진짜 이 세상의 승리자들은 바로 양심 있게 사는 이들이다.
12월 3일 밤부터 12월 4일 새벽까지, 계엄령 헤프닝을 보면서 나는 이 책을 떠올렸다. 밑도 끝도 없이 계엄령을 선포한 대통령은 아마 양심 없는 자에 가까울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것이 얼마나 큰 폐해를 가져올 지 알면서 다만 국회를 없애고 자신의 방해 세력을 처단하기 위해 그런 행동을 할 수가 없다. 하지만 세상에는 그런 사람만 있지 않아서 내가 자는 동안에도 밤새 대다수의 국회의원들이 잠도 못 자고 모였고, 계엄령이 정당성이 없음을 들어 계엄 해제 결의안을 가결하였다. 어떻게든 계엄을 해제하기 위해 군인과 몸싸움을 벌이고 손가락까지 부러지면서 본회의장으로 들어온 의원도 있다. 그는 병원도 가지 못하고 밤새 국회의사당을 지켰다고 한다.
원래는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를 읽으면 다른 이에 대해서 글을 쓰려고 했었다. 그러나 12월 3일부터 4일 새벽까지 일어난 사건을 보면서 배신자가 대통령이면 정말이지 놀라운 일이 일어날 수 있음을 통감하여 이러한 글을 쓰게 되었다. 배신자들은 우리와 아주 가까이 있으며 심지어 대통령도 될 수 있다. 그런 상황에서, 대체 어떻게 그들에게 어떻게 대응해야 한단 말인가. 이 책에서는 그 대응책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이해하려고 하지 말고, 상대하지도 말고, 다만 당신의 삶에서 몰아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