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째
중학교 1학년 때부터 3학년 때까지 줄곧 같은 반이었던 친구가 있다. 고등학교 때에 헤어지고 나서 간간이 연락을 했으나 결국 연락이 끊기고 말았다. 끊어졌던 연락이 다시 이어진 것은 내가 결혼을 할 때였다. 오래 연락을 못 했음에도 친구는 고맙게도 결혼식에 와 주었고, 사는 곳이 근처였기에 종종 만났다. 그 친구에게는 ‘느닷없는’ 톡이 많이 왔다. 나처럼 연락을 챙기기 힘든 사람에게는 그 가끔씩 오는 뜬금없는 톡이 참 반가웠다.
좀 늦게 결혼을 한 친구는 금세 두 명의 아이 엄마가 되었다. 또래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되어 만나는 친구는 새로웠다. 중학교 때, 그 아무것도 모를 때 아무 말이나 뱉고 아무 짓이나 하며 돌아다니던 때와는 확실히 달랐다. 아직도 기억이 나는 중학교 때 일화 하나는, 지나가는 마을 버스를 향해 밑도 끝도 없이 손을 흔들어대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 버스에 탄 ‘오빠’로 보이는 이들에게 화답을 받았다. 또 하나는, 춥다는 이유로 길에서 꽥꽥 소리를 질러대던 기억이었다. “아 추워”가 아니라 “꺄아아아악” 거리고 다니던 우리는 확실히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주동자는 참으로 놀랍게도 나였다.)
그런 우리가, 지금은 아이에 대한 고민을 나누고 마흔을 넘었으나 아직 ‘진로’를 찾지 못한 현실을 개탄하고 있었다. 도서관에서 만났으니 책도 보려고 했는데 수다를 떨다가 밥 먹을 시간을 훌쩍 넘기고 말았다. 2차로 어디를 갈까 고민하다가 우리 집에서 라면과 김밥을 먹기로 하고 집에 들어왔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는 그 친구에게 오래 묵혔던 잘못을 고백했다.
“그 있잖아, 우리 무슨 도안 그리는 과제 있었는데, 나랑 **이랑 쉬운 거 맡고 너한테는 어려운 거 맡겨서, 너 혼자 다 못했다고 선생님이 때리셨거든. 그때 나는 나 안 맞았다고 좋아했는데, 그게 계속 생각이 나드라.”
그 일은 그 친구를 생각할 때마다 덩달아 떠오르는 기억이었다. 그때 그 친구가 어디를 어떻게 맞았는지까지 기억이 났다. 그 말을 들은 친구는 웃음을 터뜨렸다.
“기억이 안 나.”
아니 억울하지 않았나. 기억도 안 난다는 말에 나는 당황하고 말았다. 그러면서 그 친구가 들려준 추억은 또 다른 것이었다.
“그때 아네모네 선생님(얼굴이 네모난 수학 선생님이 계셨다)이 우리 무릎 꿇려놓고 허벅지 다 때렸거든. 근데 그러고 나서 더 상처받은 얼굴로 가신 거야. 내가 그래서 우리 괜찮다고 그랬어.”
맞은 사람이 때린 사람을 달래주는 이 이상한 상황이라니. 하지만 그때는 그랬다. 체벌이 있었고, 인권 같은 것은 전인권도 몰랐고, 학생들이 얻어맞는 것은 일상이었고, 교사들은 폭력적이면서도 상처를 잘 받았다. 생각해 보니 거의 30년이 다 된 일인데, 돌아보면 어제처럼 생생한 것이 참 신기했다.
그 일을 시작으로, 우리는 중학교 때 일을 두런두런 나누었다. 우리집이라 누구 눈치를 볼 까닭도 없었고, 아이의 하원 때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았다. 어제의 나는 오늘의 나와는 다르다고 하지만 여전히 어제를 짊어지고 있어서, 나는 꼭 내가 중학교 때의 그 철없고 어린 나로 돌아간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친구도 나도 더는 그 어린 시절에 머물러 있지 않다는 깨달음이 왔다. 상처는 상처로 끝나지 않았고, 그것은 어떤 식으로든 우리를 배우게 하고 자라게 했다.
사람은 갑자기 어른이 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은 어린 아이를 거쳐 어른이 된다. 영화 ‘빅’처럼 갑자기 초능력으로 어른이 된 이들은 몸만 어른이지 마음에는 어린이가 있다. 그것은 아마도, 어린이가 어른이 되면서 거치는 무수한 기억들, 그 무수한 상처와 고통과 감사와 설렘 같은 것들이 어른이 될 수 있는 양분이기 때문인 듯하다. 친구와 중학교 때 추억을 나누며 나는 우리가 ‘공짜’로 어른이 된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상처의 터널을 지난 친구와 나는 이전보다 단단해졌고 지혜로워졌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아닌 타인을 키워낼 정도로 ‘성숙해졌다.’
아이를 키우며 다시 어린아이가 된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진짜로 어른이 어린아이가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그 지난 시절을 돌아보며, 내가 어떤 과정을 거쳐 왔는지 어떻게 이렇게 자랄 수 있었는지를 생각하게 된다는 뜻일 것이다.
“그래, 나도 그랬듯이 너도 다 지나가. 그러니까 너무, 마음 쓰지 마라.”
현재에 내가 가장 신경 쓰이는 일을 알고 있는 친구가 마지막으로 충고를 해 주었다. 그 충고는, 그 친구가 들려준 이야기가 있기에 진정으로 받아들여졌다. 나중에 나도 그 친구에게 좋은 양분이 될 충고를 해줄 수 있을까. 그렇지 않아도, 함께 같은 길을 걸어가는 친구가 있어 풍요롭고 넉넉한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