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중 둘째날
자주 위장에 탈이 나서 집 근처 내과에 간다. 가면 처음에 ‘점검’하는 것이 있다.
“술 마시나요?”
“아뇨.”
“커피는요.”
“아뇨.”
“담배도 안 하시고?”
“네.”
술, 담배, 커피, 플러스 우유까지 마시지 못하는 저질 같은 몸은 그러나 자주 아프다. 억울하고 분하다. 누구는 내 나이에 술 담배 커피 등등을 입안에 쏟아도 멀쩡히 직장도 다니고 하면서 잘만 사는데, 나는 심지어 직장 생활도 안 하는데 왜 이렇게 자주 골골대는지.
처음부터 술을 못 마셨던 것은 아니었다. 스무 살, 대학생 시절 술을 마시지 않았던 것은 종교적인 이유였다. 지금은 좀 완화(?) 되었지만, 당시만 해도 교회에서 대학생들에게 술을 마시면 안 된다고 가르치곤 했다. 내가 다니는 작은 교회는 담임 목사님과 성도들의 관계가 매우 가까웠는데, 심지어 내 경우는 담임 목사님이 고3 시절에 교회가 끝나면 집까지 차로 직접 모셔다(?) 주곤 했었다. 생일 때는 부모님도 안 해주시는 생일파티를 아웃백 등등의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해 주셨다. 그런 분이 술을 마시지 말라고 하는데 무서워서 마실 수가 있나.
술자리에 가면, 술을 마시지 않고도 놀 수는 있었다. 꿋꿋하게 ‘나는 술을 마시지 않아!’라고 하면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하지만 늘 짓궂은 사람들은 있어서, 술게임이 뭐니 하면서 억지로 술을 마시라고 권하기도 했다. 신입생 환영회에서 나도 게임에 걸려서 억지로 소주를 마셔야 했다. 그 마시는 행위가, 나에게는 마치 사탄의 음료를 마시는 것이나 다름이 없는 찜찜한 일이었다. 심지어 맛있지도 않았다. 나는 결국 신입생 환영회 이후로 과 활동을 하지 않고 기독교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공식적’으로 술을 마시는 행위와는 멀어졌다.
내가 다시 술을 만난 것은 직장에 다니면서부터였다. 서른 살이 즈음이 되니 교회에서도 더는 술로 터치하는 일이 없었다. 나는 고등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했는데, 교사들의 술자리에서는 게임을 통해 술을 억지로 마시게 하는 것은 없었다. 대부분 그때 즈음에는 술을 아주 잘 마시는 경우와, 전혀 안 마시는 경우로 양분되기 때문에 그런 게임 자체가 필요 없는 때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그곳에서 대학 때에도 마시지 않던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까닭은 스트레스 때문이었다. 당시 학교에는 나하고는 열 살 정도 차이가 나는 선배 교사가 있었는데 나와 이 사람은 정말이지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맞지 않았다. 게다가 이 교사는 후배 교사들에게 히스테리를 부리기로 정평이 난 사람이었다. 내가 이 교사의 타깃이 된 것은 뭐 놀라운 일도 아니었다.
당시 회식 자리에는 술을 아주 좋아하는 부장 선생님과 나의 또래 선생님, 그리고 몇몇 선생님과 나를 괴롭게 하는 그 교사가 있었다. 부장 선생님은 맥주와 소주를 적절한 비율로 섞어 폭탄주를 기가 막히게 제조하시는 분이었는데, 나에게도 한번 먹어보라며 권하셨다. 폭탄주라니. 맥주도 소주도 마시지 못하는 내가 무슨 폭탄주인가. 그러나 나는 마셨다. 그리고 신세계에 눈을 떴다. 맥주와 소주를 전혀 마시지 않았던 것은 아니라, 대충 맛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런데 맥주는 뭐랄까 찝찌름한 것이 오줌 같기도 하고 달지도 않은 것이 거품만 많아서 별로였고, 소주는 정말 왜 먹는지 모를 만큼 맛이 없었다. 그런데 이 둘을 섞으니, 꽤 먹을만해 지는 것이었다. 맥주의 고소한 맛과 소주의 알딸딸함이 섞인 이 오묘함은 두 종류의 술의 장점을 배가시키는 그야말로 대단한 발명품이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연거푸 폭탄주를 세 잔이나 마셨다. 오죽하면 나를 괴롭게 하던 그 교사가 걱정을 할 정도였다. 그러나 나는 비틀거리면서도 아주 맛있다며 좋아했고, 부장 선생님도 나를 새로운 세계에 입문 시켰다면서 매우 좋아하셨다. 그러나 내가 진짜로 좋았던 것은, 폭탄주를 마셨던 것보다도 나를 힘들게 하던 그 교사가 나를 걱정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이었다. 나를 망쳐서라도, 어떻게든 사랑을 받고 싶었던 내 취약한 내면이 여과없이 드러난 순간이었다.
그 후 또 술을 마셨던 적이 있었다. 직장은 그만 두게 되고, 대신에 나는 한 글쓰기 모임에 들어가게 되었다. 당시 글쓰기 모임은 끝나면 늘 뒤풀이가 있었다. 아이가 없었던 데다 결혼은 했고, 직장도 없었던 나는 밤새 술을 마셔도 아무런 걱정이 없었다. 그곳에서 소주며 맥주며 되는 대로 마시면서 글로 담지 못했던 마음을 마구 쏟아내었다. 술을 마신 세상은 온통 안개처럼 뿌옇게 흐려져서 누가 누군지 잘 보이지도 않았다. 그곳에서는 나와 타인의 구분도 모호해졌고, 타인과 타인은 더더욱 구분할 수가 없었다. 나는 그곳이 꼭 내 최종 안식처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좋은 곳이 있었다면 대학 시절부터 좀 즐겨볼 것을. 이제야 술자리의 맛을 알게 된 것이 안타까울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런 관계도 오래 가지는 않았다. 나와 타인의 구분이 안 되었던 점이 실수라면 실수였을까. 갈등이 생겼고, 사과하고 갈등을 덮고자 했으나 내 마음의 앙금은 남아 버렸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너무 내 모습을 여과없이 많이 보여주었던 것 같고, 그것이 불편했던 사람들이 있었던 것 같다. 더 이야기를 하고 잘 풀었어야 했는데 그러지를 못했다. 어쩌면 처음부터, 술에 기대어 버린 그런 관계 자체는 ‘눈속임’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그러지 않은데 그런 것처럼, 친하지 않은데 친한 것처럼, 사랑하지 않는데 사랑하는 것처럼.
글쓰기 모임에서 나온 후에는 따로 술을 마실 사람이 없었다. 아이가 생기고 출산을 하고 나니 더더욱 그런 자리와는 멀어지게 되었다. 가끔 어쩌다 마시면 머리가 아팠다. 누구는 잠이 안 와서 술을 마신다고 하는데, 나는 잠이 안 와서 맥주를 마시면 머리가 아파서 더 잠이 안 왔다. 나는 그제야 내가 술과 별로 맞지 않는 인간인 것을 알았다. 사람을 만날 때는 맨정신에 차를 마셨고, 일정한 거리 이상을 넘어가지 않았다. 그것이 어떤 성숙의 경지인지 아니면 그저 중요한 것을 포기해 버린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아마도 이전으로는 돌아가지 않을 것 같다.
때로 취하고 싶을 때도 있다. 그저 이 세상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끼고 싶을 때. 그럴 때 나는 ‘우주’에 관련된 영상을 본다. 2000억 년 후의 우주와 같은 영상. 지구에 인류를 비롯한 아무런 생명체도 남지 않은 그때의 영상. 혹은 우주의 끝까지 가는 영상. 빛의 속도의 10조 배로 가도 한참을 가야 하는 우주의 끝, 그 무한의 공간을 상상하다 보면 지금 내 앞의 문제는 티끌보다도 작게 느껴지면서 덧없다는 생각이 든다. 술을 마시는 것도 이와 같은 느낌 때문이 아닐까. 몸이 술을 받지 않으니, 마음으로라도 술을 들이키는 것이 아닐까. 금주령이 내렸을 때도 인간은 어떻게든 술을 마셨다고 하니, 정말이지 인간은 술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가 아닌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