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글쓰기
아이 어린이집은 외부 활동이 많다. 아이 7살인 올해는 더더욱 활동이 많은데, 2학기 때는 2박 3일로 졸업여행을 가기도 하고 어린이집에서 하루 자고 다음 날 하원하기도 한다. 게다가 올해는 없던 외부 활동이 새로 생겼다. 바로 6, 7세 아이들이 함께 외부에서 하루 자고 오는 활동이었다. 그것도 부모 필요 없이 선생님들이 인솔해서 간다고 한다. 그 소식을 들었을 때 나도 모르게 마음 속으로 독립 만세를 외쳤다.
좀 늦게 결정이 되는 바람에 12월 초에 일정을 정하게 되었다. 하필 날이 막 추워지기 시작한 주였다. 그래도 아이는 아침에 조금 기침을 하는 것 외에는 컨디션이 나쁘지 않았다. 원래 비염이 있어서 아침에 기침을 하는 것은 늘상 있는 일이었다. 다행히 어린이집에서는 기침을 안 한다고 하니 나는 마음을 푹 놓고 아이를 보내고 뭘 할까를 고민했다. 가까운 호텔에서 1박을 할까, 밤에 혼자 마사지를 받을까, 지인들을 집에 불러서 놀까. 이런 나에 대해 아이는 ‘엄마는 나 없이 심심해서 어떻게 잘까’를 고민할 거라 생각하니 좀 미안한 생각도 들었다.
전에 아이가 졸업여행을 갔을 때였다. 나는 너무나 신이 나서 2박 3일 동안 어떻게 하면 재밌게 놀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지인도 만나고 독서 모임도 가고 서울에 있는 작은 호텔에서 1박을 하면서 조식까지 야무지게 먹고 나서 아이를 데리고 집에 오는데, 엄마 없이 잘 지냈냐는 말에 아이는 “엄마는 나 없이 잘 잤어?”라고 물었다. 자기 없이 심심해서 어떻게 지냈냐고 하는 말에 “엄마도 00이 보고 싶어서 힘들었지. 밤마다 꿈에 나왔지.”라고 듣기 좋은 거짓말을 했다. 아이는 아직도 자기가 없으면 엄마 아빠가 매우 심심해하고 괴로워하는 줄 안다. 해방을 외치며 치킨과 콜라와 함께 행복한 밤을 보낸다는 사실은 꿈에도 모른다.
드디어 1박 여행을 가기 전날. 아이는 컨디션이 좋아 보였고, 기침도 거의 하지 않았고, 밥도 잘 먹었고, 남편이 운동한다고 틀어놓는 운동 유투브도 재미있게 따라했다. 그래서 나는 꿈에도 몰랐다. 아이가 병원에 가지 않기 위해, 목이 아파도 참고 참으며 하루를 견디었다는 것을. 내가 아이가 조금 이상한 것을 감지한 것은 그 활발한 아이가 약간 지친 몰골로 거실 바닥에 모로 쓰러져 있는 것을 보고 나서였다. 아직 8시도 안 되었는데 왜 벌써 이러고 있을까 싶어 아무 생각 없이 목 주변을 만져보다가 깜짝 놀랐다. “뜨거운데?” 나는 남편을 보았다. 조금 전에 귤을 먹어서, 아마도 내 손이 차가워서 그런 걸 거라고, 아마 열을 재면 36.5도가 나와서 하하 웃고 말 거라고 생각하면서 나는 체온계를 가지고 왔다. 그러나 열은 37.7도가 나왔다. 일단 37.5도가 넘어간다는 것은 몸이 이상하다는 신호였다. 반대편 귀는 38도. 큰일 났구나.
나는 일단 아이의 선생님께 내일 못 갈 수도 있다는 톡을 보냈다. 그러면서 간절히 바랐다. 제발 오늘 해열제 먹고 열이 똑 떨어지기를. 이미 병원에 가기에는 늦은 시간이었다. 해열제는 잘 들어서 열은 내렸다. 그러나 내일 열이 다시 오르면 여행은 갈 수가 없다. 나의 원대한 계획도 끝이다. 아이는 자면서 계속 목이 아프다고 했고 거의 잠도 자지 못하고 여러 차례 기침을 했다. 어제도 그제도 안 그랬는데 하필 오늘, 지금. 그 바람에 나도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새벽에 열이 오르지 않아서 안심했는데 6시가 넘어가자 나를 놀리듯이 아이의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아무리 해열제를 챙겨 보낸다고 해도 열이 오르는 아이를 여행을 보낼 수는 없었다. 더군다나 아이는 석 달 전에 폐렴까지 앓았었다. 나는 눈물을 머금고 아이에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열이 계속 올라서, 오늘 여행은 못 가.”
“나 여행 갈래, 갈래!”
아이는 울면서 졸랐으나,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선생님께 오늘 여행에 가지 못 한다고 말씀을 드리면서도 그래도 한 번은 잡아주기를 바랐다. 해열제 먹이고 보내세요, 저희가 케어 할게요, 그 한 마디만 해 달라고 마음 속으로 빌었다. 물론 그러면 안 되는 것이지만. 하지만 선생님은 아쉽다고, 다음 일정에는 꼭 함께 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아이는 아픈 주제에 일찍도 일어났다. 아프니까 푹 자라고 하고 싶었는데. 하지만 실제로 더 자고 싶은 것은 나였다. 아이의 기침 때문에 새벽 내내 자는 둥 마는 둥 했는데 아이는 얄밉게도 일찍 일어나서 배가 고프다고 했다. 전날 저녁으로 볶음밥을 잔뜩 해 둔 것을 조금 데워서 먹이고, 나는 전날 밤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시킨 치킨을 먹었다. 아이는 볶음밥을 먹다가 치킨도 달라고 했다. 아파도 먹성은 좋은 아이였다. 다 먹고 났는데 전화가 왔다.
원장 선생님이었다. 아이가 많이 아프냐고, 어제 아이와 여행 이야기를 한참을 했는데 아이의 마음은 괜찮냐고 물으셨다. 제 마음도 좀 물어보시지 그래요. 제 마음은 찢어집니다. 아이를 보내고 나서 할 일이 아주 많았는데요. 하고 싶은 말은 속으로 삼켰다. 그러고 있는데 원장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00이가 기대를 많이 해서요. 많이 아프지 않으면 약 챙겨서 보내시라고 말씀드리려고 전화했어요.”
그 말은, 내게 사탄이 주는 마지막 유혹 같이 느껴졌다. 그러니까 그것은 내가 아이의 담임 선생님에게 듣고 싶은 말이기도 했는데, 그리고 나는 정말로 그러고 싶었는데, 그래도 열이 나는 아이를 보낼 수가 없었다. 해열제 동봉해서 보내고 싶은데. 그게 내 마음인데 말이다.
“아이가 전에 폐렴 걸렸을 때랑 증상이 비슷해서요. 아무래도 쉬어야 할 거 같아요.”
나는 마음 속으로 울며 그렇게 말씀을 드리고 전화를 끊었다. 끊으면서도 간절히 바랐다. 그래도 한 번만 더 이야기해 보지. 폐렴이라도 괜찮아요! 저희가 다 알아서 할게요! 하지만 전염성도 있는 폐렴을 가지고 괜찮다고 할 순 없다. 그렇게 말해도 내쪽에서 거절해야 할 일인 것을 알면서도, 나는 내 아쉬움을 어떻게 달래야 할 줄 몰랐다.
밥을 먹고 난 아이는 매우 활발하게 놀았다. 누가 보면 아픈 사람은 나고 그런 나를 돌보는 사람이 아이인 줄 알 정도로. 나는 아이와 함께 종이 접기를 하고, 아이가 매일 푸는 수학 학습지를 봐주다가 결국 뻗었다. 아이는 누워 있는 내 곁에 왔다. 나는 누워서 할 수 있는 놀이를 생각하다가 다리로 가위바위보를 했다. 가위바위보를 한참 하던 아이가 내 위로 덮쳐서 나를 눌러댔다. 시간은 징하게도 가지 않았다. 나는 만약 아이가 여행을 갔으면 내가 뭘 하고 있었을까를 생각했다. 쓸데없는 생각인 줄 알면서도, 나는 내가 누려야 할 그 달콤한 시간을 생각하며 아이와 함께 침대 위를 뒹굴었다.
다행히 남편이 좀 일찍 퇴근을 했고, 함께 인근 병원에 갔다. 폐 사진을 본 의사 선생님은 폐렴은 아니지만 기관지염까지 왔다고 했다. 목도 많이 부었단다. 적어도 3일에서 5일 정도는 열이 날 수 있고, 기침까지 하면 열흘은 갈 것 같다고 했다. 아니 어제까지 멀쩡했던 애가 갑자기 왜요, 중노동을 한 것도 아니고 그저 줄창 놀았는데도 이렇게 될 수가 있나요, 열흘을 어린이집을 안 가면 나는 어쩌라고요. 그 많은 말들을 속으로 누르며 나는 한 마디를 했다.
“전염은 되나요?”
“당연히 전염되죠.”
의사 선생님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도 전염이 되겠네. 전에 폐렴도 전염이 되어서 아이보다 내가 더 많이 아프고, 더 오래 앓았다. 기왕에 전염될 거면 빨리 되었으면 좋겠다. 나쁜 것은 한꺼번에 오고 지나가는 것이 나으니.
참으로 인생은 예측할 수가 없는 것인데, 그 인생을 마치 내가 재단하는 것처럼 생각할 때가 있어 이렇게 한 번씩 깨지는 날들이 있다. 당연히 보낼 것이라 생각했던 여행을 보내지 못한 것이라든가. 당연히 누려야 할 평화라고 생각했는데 아닌 밤중에 계엄령 소식을 듣는다든가 하는 등의. 누군가의 범죄로 인한 것은 어떻게든 막아야 겠지만, 그게 아닌 정말 인력으로 어쩔 수 없는 것은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데. 처음에 울며불며 징징거리고 나서는 여행은 완전히 잊어버린 듯이 집에서 활발하게 노는 아이보다도, 순간순간 ‘아이가 여행을 갔으면 난 뭘 하고 있을까’를 생각하며 아쉬움을 이기지 못하는 내가 더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처음 수학을 할 수 있고, 말씀 공부도 할 수 있어.”
아이는 요즘 매일 수학 학습지를 풀고, 대림절을 맞이해서 교회에서 준 말씀 스티커를 붙이는 활동도 하고 있다. 여행을 가면 그것을 못 한다고 아쉬워 했는데, 안 가게 되니 그것을 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그래, 내가 너의 긍정적인 마음을 배워야지. 생각하며 나는 과하게 아이의 말에 동의해 주었다.
“그러네! 진짜 그러네! 우리 00이가 굉장한 것을 알아냈어!”
아이의 온기를 느끼며 함께 잠들 수 있어서, 아이의 이런저런 말들을 오늘도 들을 수 있어서, 아이의 귀여운 얼굴을 보고 싶을 때 볼 수 있어서, 나도 좋다. 아니, 좋다고 생각해야만 한다.
“그 여행은 재미없을 거야.”
남편처럼 생각하지는 않더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