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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나비 Dec 06. 2024

이런 날은 마라탕을 먹어야 한다

마라탕마라탕마라탕

아이가 아파서 이틀째 어린이집을 쉬고 있었다. 노벨상 수상작을 읽는 독서 모임이 바로 다음 주인데, 그때까지 읽어야 할 책을 거의 읽지 않아서 아이가 노는 옆에서 머리에 들어오지도 않는 책을 꾸역꾸역 읽었다. ‘아 정말 재미 없다.’ 나는 대체 왜 그런 독서 모임을 신청했을까. 노벨상 수상작을 읽으면 내가 똑똑해질 것이라 생각했던 걸까. 후회를 거듭하면서 억지로 책장을 넘겼다. 이번 책의 작가는 ‘르 클레지오’인데 느낌이 딱 ‘노벨상 수상’을 할 것 같은 이름이긴 했다. 뭔가 상당히 있어 보이는 이름이랄까. 내용도 상당히 있어 보이고, 또 무슨 소린지 잘 모르겠다.     


다음 날은 오랜만에 대학 친구들을 보기로 한 날이었다. 그 친구들과 함께 있는 톡방은 최근 이슈인 대통령 탄핵 이슈로 계속 글이 올라오고 있었다. 내일 모인 김에 광화문에 갈까, 하는 말들도 오갔다. 남편은 내일 아픈 아이를 데리고 여의도로 갈 것이라고 했다. 탄핵은 탄핵이고, 애부터 건강해야 하지 않는가. 남편에게 데리고 나가지 말라고 했지만, 하필 내가 약속이 있어 아이는 남편의 손에 있다. 아이 건강 상태를 보겠다고는 하지만 남편은 잔뜩 흥분한 상태였다. 마치 이 사태를 즐기기라도 하는 것처럼. 나에게는 대통령만큼이나 이해가 되지 않는 남자였다.     


책은 읽어야 하고, 사람은 만나야 하고, 대통령 탄핵도 성공해야 겠고, 아픈 아이도 나아야 하는 그 시점에 나는 편집자에게서 온 메일을 읽었다. 웹소설 작가인 나는 2주 전에 원고의 일부를 편집자에게 보냈다. 보내면서도 크게 걱정은 하지 않았다. 열심히 썼고, 쓰면서도 다양한 책을 통해 내면을 채웠기 때문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텅텅 빈 상태에서 억지로 쥐어 짠 글이 아니기에 무난히 통과할 줄 알았건만, 사태는 내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편집자는 앞부분 원고가 좋았기에 무난하게 넘어가려고 했지만 ‘고민이 많으신 듯하여’ 이런 메일을 드리게 되었다고 했다.     


고민이 많으신 듯하여, 다시 말하면 글이 똥망이라는 것이다. 하나하나 지적한 부분을 보니 과연 그랬다. 왜 안 보였을까. 웹소설은 단순한 글이다. 문제가 있으면 반드시 그 해결이 그 다음에 나와야 한다. 독자들을 많이 고민하게 해서도 안 된다. 그러면서도 글이 매력이 있고, 캐릭터들이 생생하게 살아 있어야 한다. 하지만 하필 나는 그 소설을 쓰면서 ‘도스토예프스키’의 글을 읽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대표적인 만연체 작가로 그 소설 속에서는 인물들이 계속 말싸움을 한다. 게다가 그 장면들을 통해 보여주는 인물들의 심리는 굉장히 다양하고 복잡하다. 문장이 짧고 내용이 쉬운 현대 웹소설과는 전혀 맞지 않는다. 게다가 까뮈의 ‘이방인’까지 읽었다. 이 소설 역시 내용이 쉽게 이해되지 않는, 굉장히 상징적인 소설이다. 웹소설과는 어울리지 않는 글들을 읽었으니, 뭔가 오묘하고 답이 없는 글이 나와버렸던 것이다.     


화가 났으나 화를 낼 수가 없었다. 출판사에서는 이 소설로 선인세까지 주었다. 그 선인세는 지금 내 수중에서 온데간데가 없다. 분명 내 기준에서는 꽤 많은 돈이었는데도. 야금야금 사라져 버렸다. 그러고 나서 글을 똥망으로 썼으니, 편집자 입장에서는 얼마나 배신감이 들었을 것인가. 편집자에게 나는, 이렇게 말을 해야 하나 싶었다.     


“정말 죄송합니다. 하지만 제가 글을 이렇게 쓴 것은 제 탓이 아닙니다. 도스토예프스키와 알베르 까뮈가 잘못한 겁니다. 그러니 그들에게 책임을 돌리시고, 제 글을 다시 봐주시지요.”     


물론 이렇게 말을 하면 편집자는 매우 곤란해하면서 선인세 반환에 대한 은근한 뜻을 비출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은 내 수중에 없는 그 돈 말이다. 그러니 나는 하고 싶은 말들은 꾸역꾸역 참고 편집자의 말을 참고하여 이제부터 수정에 돌입해야 한다. 하지만 문제는 있다. 이 소설이 론칭되는 달은 이미 정해져 있다. 그래서 내가 글을 쓸 수 있는 날도 한정되어 있다. 그러니 이렇게 수정하고 수정을 하면 나는 점점 곤란해지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주변에서는 나를 내버려 두지 않는다. 아이는 언제 아플지 예고도 하지 않고 아프기 시작하고, 나에게는 미리 정해진 스케쥴들이 있으며, 노벨상 수상 작가들 작품도 계속 읽어야 한다. 게다가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한 이후 나라 상황도 매우 혼란스럽다. 내가 사는 곳은 평소에도 탱크와 장갑차가 자주 보이는 경기 북부 파주다. 차로 개성이 한 시간 안쪽으로 걸리는 바로 그곳이다. 이러다 정말 전쟁이라도 나는 것이 아닐지 싶어서 하루하루가 너무나도 불안하다.     


그래서 어쩌라는 것인가. 나는 배달 어플을 켰다. 편집자가 잘못한 것은 없지만, 그로 인해 나는 매우 힘든 상태였다. 게다가 힘들다고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니 마라탕을 먹을 생각이다. 그 뜨끈하고 매운 국물 속에서 고소한 땅콩 소스를 맛보며 인생도 이렇게 맵고 짜고 고통스러운 와중에 땅콩 소스처럼 고소한 맛을 찾아내는 것이라 위안을 할 것이다. 그래도 그 사라진 선인세의 일부가 이 마라탕 비용이라고 생각하니 그다지 밑지는 장사는 아니었다. 돈만 밝히는 인생을 보통은 부정적으로 바라보지만, 또 인간을 위안하는 것은 이처럼 소소한 지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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