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무나비 Dec 12. 2024

독서하는 삶, 사유하는 삶

12일째

올해 봄, 나는 예상치도 못한 일을 겪었다. 나와 사이가 좋았던 한 학부모와 틀어진 것이다. 나는 사과를 했고, 그쪽도 사과를 해서 풀었는 줄 알았는데 그후로 그는 나에게 인사를 하지 않았다. 전에는 간이라도 빼줄 듯이 살갑게 굴었던 사람이라서 처음에는 내가 그렇게 잘못한 것인가 싶었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주변 사람들의 조언을 구하고, 유투브도 찾았다. 그러다가 내가 가장 크게 도움을 구한 곳이 바로 책이었다. 다양한 심리학 책, 그중에서도 성격 장애나 관계에 대한 책을 읽으며 세상에는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이 있고 그들과 모두 친하게 지낼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지금도 여전히, 그 사람이 불편하기는 하지만 전처럼 그것 때문에 괴롭거나 죄책감을 느끼지는 않는다.      


이전의 나는 쉽게 답을 찾는 사람이었다. 주변 사람들의 조언을 가장 먼저 구했고 3분이나 5분 정도로 요약되는 유투브를 찾아 보았다. 때로는 그런 정보들이 딱 정답이다 싶을 적도 있었다. 하지만 쉽게 접하는 정보는 그만큼 값어치가 떨어질 때가 많았다. 사람들이 하는 조언도 단편적이고 깊이가 없었다. 그것은 그 사람이 문제여서가 아니라 사람이 입으로 전하는 정보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책을 보면서, 나는 유투브에서 말하는 것과 사람을 통해 들었던 정보 안에 숨어 있는 ‘진짜 답’을 찾은 기분이 들었다. 그것은 내가 책을 읽으며 끝없이 생각하고 글을 쓰면서 또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읽기 때문이었다. 유투브나 사람을 통해 들은 말들은 그 정도로 곱씹지는 않았다.      


도서관에서 책을 대출해서 읽고 다시 반납하면서, 나는 점차 책을 읽는 재미를 알게 되었다. 책에는 정말로 무궁무진한 세계가 숨겨져 있었다. 이것을 왜 진작에 알지 못했을까 싶어서 아쉬운 마음이 들 정도였다. 심리학 책을 읽다가 관심이 생겨서 사이버 대학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심리학에 대해 좀 더 체계적으로 알고 싶었다. 집에 사다만 두고 읽지 않았던 책들도 하나둘 책 표지를 열어보기 시작했다. 어느새 나는 사람을 만나는 것보다 책을 읽고 내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 더 재미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책을 가까이하기 전의 나는 무언가 내게 문제가 생겼을 때, 다른 이들을 만나 내 처지를 하소연했었다. 내 생각을 관철시키고 내가 옳다는 것만 증명했었다. 남편과 갈등이 있을 때도 나는 잘못이 없고 남편만이 잘못이 있다고 주장했었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은 당연히, 내 지인이니 나의 말을 들어주고 공감을 해 주었는데 그러다 보면 내가 남편을 점점 더 이상하게 생각하는 지경이 되어갔다. 남편과의 사이는 더 안 좋아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책을 읽고 생각을 하다 보니 그런 나에 대해 되돌아보게 되고, 또 반성도 하게 되었다. 사유의 깊이가 깊어질수록 나와 타인, 세상을 보는 시각도 전과는 달라지게 되었다. 사람을 만나는 것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사유 없이 독서 없이 ‘사람만 만나는 것’은 나 같은 사람에게는 독이 되었었던 것이다.   

  

요즘은 사람을 만나는 것과 독서를 하는 것의 균형을 이루려고 한다. 신기한 것은, 어린이집 한 학부모와 틀어지면서 다른 학부모와도 잘 만나지 않게 되었는데 그 대신에 그 자리에 다른 모임들이 많이 생겨난 것이었다. 게다가 그 모임은 대부분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모임들이다. 나는 때로 어떤 모임에서 나가게 되면 만날 사람이 줄어든다는 생각에 불안한 마음이 있었는데 그것은 아니었다. 내가 나를 가꾸어갈수록, 내 삶을 내가 이끌어갈수록 비슷한 사람이 주변에 모이게 되어 있다. 그러니 어떤 사람에 맞추어 나를 길들여가기보다, 내가 더 좋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걸어가는 것이 더 나은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럴 때에 나와 같은 방향의 사람들과 어느새 같이 걸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고, 그 걸음은 억지로 맞춘 걸음보다 훨씬 수월하고도 가치 있다는 것도 깨닫게 될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