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려고 누웠는데 어지럼증이 너무 심해서 잠은커녕 가만히 누워 있을 수조차 없었다. 독감이 끝나고 이른 장염 때문일까. 속에 있는 것을 다 비워냈는데도 심한 멀미가 나는 것처럼 고통스러웠다. 계속 미식거리고 토할 것 같은데 정작 구역질은 나지 않고, 걸음을 걷기 힘들 정도로 어지러웠다. 고민하다가 수액이라도 맞아야 될 것 같아서 119를 불렀다. 어지러움을 참고 아파트 앞으로 나가자 구급차가 도착했다. 구급차가 멈출 때마다 어지럼증 때문에 신음을 흘리며 겨우 인근 병원에 도착했다.
독감이 유행이라 그럴까. 사람이 많아서 한참을 앉아서 기다려야 했다. 그런데 거짓말처럼, 앉아 있다 보니 조금씩 어지럼증이 가라앉았다. 그냥 집에 갈까, 잠을 잤으면 해결되는 거였나. 그런 생각을 하는 중에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의사는 내 배를 눌러보고는, 미식거리지 않게 하는 수액을 놔주겠다고 했다. 수액을 맞고도 오래 기다려야 하나 싶었는데 다행히 30분 만에 끝이 났고, 누워서 쉬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수액 때문인지 상태가 한결 호전되어서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다음 날인 일요일에는 교회에 갔다. 내가 맡은 반 학생들과 마지막 예배를 드리며 공연히 몇 번이나 울컥하는 기분을 참아야 했다. 학생들은 다음 주 예배 때는 무려 5층 예배실에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고 투덜거리고, 마지막으로 나와 인사를 나누면서 ‘그 동안 가르쳐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선생님을 잊지 못할 거예요.’라는 말 대신 ‘어서 간식을 주세요. 먹을 거, 먹을 거!’라고 말하는 평소와 똑같은 모습을 보였으나 그 모습마저 사랑스럽고 예뻤다. 그렇게 어린이 예배를 끝내고 어른 예배까지 다 드린 후에 집에 돌아왔다.
어젯밤에 응급실을 오간 피로 때문인지, 오후에는 남편과 아이는 집 근처 공연장에 음악회를 보러 가고 나는 누워서 쉬었다. 그리고 보게 되었다. 바로 그날 아침, 내가 분주하게 학생들에게 마지막으로 줄 사탕을 포장해서 교회에 갔을 그 시간에 일어났던 일. 태국에서 돌아오던 비행기가 공항에서 무사히 착륙하지 못하고 사고가 났다. 비행기는 불에 탔고 생존자는 두 명. 나머지 승객들과 승무원 등은 모두 돌아오지 못했다. 사망자가 늘어날 때마다 가슴이 타들어갔다. 그래도 어떻게든 살아남았기를 바랐지만 끝끝내 두 명 외에 생존자는 없었다.
내가 아무 생각 없이 누리던 일상들이, 누군가에게는 끔찍한 사고의 시간이었다는 것이 다시금 느껴지면서 정신이 얼얼했다. 그들 역시 태국에서 나름의 좋은 추억을 가지고 귀국을 하던 길이었을 것이다. 마사지도 받고 맛있는 것도 양껏 먹고, 다음에는 또 어디 갈까 생각을 하면서 늦지 않게 서둘러 비행기를 탔을 것이다. 귀가 아프다고 앙앙 우는 어린 아이에게 아이의 엄마 아빠는 조금만 참으면 괜찮아진다고 달래고, 어렵게 휴가를 낸 직장인은 일요일에는 푹 자고 다음 날 출근해야지 하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 생각들을 떠올리면 마음이 끝을 모르는 지하로 떨어지는 것 같다. 정말로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사고의 원인은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으나, 새가 엔진으로 빨려 들어가 불이 난 것이 아닌가 하고 추측하고 있다. 정말 그렇다면 이것은 어찌할 수가 없는 일이다. 새가 날아간 것을 누가 뭐라고 할 수 있단 말인가. 새 역시 끔찍하게 세상을 떠났는데. 정상적인 착륙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기장이 어떤 선택을 해야 한단 말인가. 불안한 상황에서 마지막 메시지를 전송하던 승객들. 남은 가족들에게 사랑을 고백하던 이들의 메시지들이 속속들이 공개되면서 내 마음은 더 무너진다. 즐거운 여행이 잔인한 비극이 되어 버린 상황이 믿을 수 없도록 아프다.
무안 공항에는 유가족들을 위한 텐트가 마련되었다고 한다. 담요와 떡국을 나누어 주는 자원봉사자의 손길이 있었다. 세상은 아프지만, 또 그속에서도 따뜻함은 피어오른다. 오후 다섯 시가 넘어서 오늘의 첫 끼라고 하면서 떡국을 먹는 유가족의 사연을 보면서 울컥한 감정이 일어났다. 가족의 죽음 앞에 허기마저 잊었다가, 그래도 먹어야 한다는 누군가의 간절함이 닿아서 억지로라도 입안에 떡국을 흘려보내는 사람들. 서로 힘내자며 담요와 물을 나누는 그들의 마음을 나는 다 헤아릴 수가 없었다.
화가 닥치는 것이 이토록이나 느닷없고 갑작스러운 것이라면 그 대책은 ‘다시는 비행기를 타면 안 되겠다’거나 ‘제주항공은 절대 이용해서는 안 되겠다’ 따위가 아닐 것이다. 실은 비행기 사고는 매우 드물다. 교통사고의 확률이 훨씬 높다. 비행기를 타지 않는다면 자동차는 더더욱 타지 말아야 하고 그러려면 밤낮 집에만 틀어박혀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은 사고에 대한 대책이라고 할 수 없다.
나는 어쩌면 그 대책이, 무안공항에서 나눴던 떡국 한 그릇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절망 속에 침잠하고 싶은 상황에서도 절대로 따스함을 놓지 않는 것. 가족을 향한 것이든 가족을 닮은 누군가를 향한 것이든 상관 없이 서로에게 손을 내미는 것이 이 가공할만한 절망 가운데 가장 필요한 희망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