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다.
졸린데 잠도 오지 않는다.
눈물만 나고 가슴이 답답하다.
시국 때문이 아니다.
나는 가끔은 안 태어나는 게 좋았다는 생각을 한다.
태어나서 좋은 게 없기 때문이다.
늘 불안하고 언제든 이 세상에서 쫓겨날 것 같다.
내가 그런 취급을 받는 게 마땅한 것 같다.
오늘은 베트남 여행을 갔다 집에 돌아오는 날이었고
새벽에 한국에 도착한 우리가 집에 들어오니 열시쯤이 되어 있었다. 나는 아이를 공항 의자와 비행기 의자에서 재우느라 거의 자지 못했다. 아이가 공항 의자에서 떨어지지 않게 하고, 비행기에서는 내 다리를 베고 자도록 했기 때문이다.
집에 돌아온 나는 아침을 먹고 세네시간을 잤다. 마침 생리도 터져서 몸 상태는 더욱 좋지 못했다.
오늘은 교회 셀모임이 저녁에 있었고 우리셀은 오랜만에 카페에서 만남을 가지기로 했다.
남편과 나는 셀모임을 하는 날짜가 같은데, 그래서 아이 컨디션이 안 좋으면 번갈아 셀모임에 나갔다.
지난주에 남편이 셀모임에 나갔고 내가 아이를 보았다.
남편은 이번주에는 자신이 아이를 볼 테니 내가 셀모임을 나가라고 했었다.
나는 남편에게 아이를 맡기고 나가려다 아이가 마침 졸려해서 그냥 재우고 나가려고 좀 기다렸다.
아이는 금방 잠들었고 나는 남편에게 셀모임을 나가겠다고 말을 하고 집을 나왔다.
카페에서 있은지 한 삼사십분이 되었을 때 전화가 왔다.
아이가 우는 소리가 들렸다.
애한테 나간다고 말 안 했어?
안 했다고 하자 남편이 말했다.
지금 애가 트라우마 생겼어. 엄마 없다고 난리 났어.
엄마가 말도 없이 나갔다고.
아이가 우는 소리가 계속 났다.
아이가 오늘 잠도 잘 못 잘 거 같아. 엄마 나갔다고.
오늘 애 재우는 거 힘들겠다.
그의 모든 말은 칼날이 되어 나를 찔렀다.
그래 나는 처음부터 살아서는 안 되는 사람이었다.
나는 죽어야 되는 엄마였다.
그래서라도 이 죄를 갚을 수 있다면 나는 그래야 했다.
내가 마음이 건강한 사람이었다면 어땠을까.
내가 나갔는데 애가 깼구나. 나 여기 10분 거리니까 금방 갈게. 잘 달래고 있어. 그렇게 말하고 집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할 말을 잃고 나는 막막해졌다. 내가 어떻게 해야 해? 지금 집으로 가? 내 선택권은 그에게 있었고 그는 집으로 오라고 했다. 나는 셀모임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카페를 나왔다.
집에 돌아가니 아이는 아이 아빠와 함께 소파에 있었다.
그때라도 남편이 단 한 마디라도 내 마음을 알아 주었다면
지금 내 상황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집에 들어왔을 때 남편은 단호하게 한 마디를 했다.
아이한테 사과해.
그 순간 내 존재는 깨어졌다.
그 말은 내 존재에 대한 확인사살이었다.
그 말이 없었어도 나는 우는 아이에게 사과했을 것이다.
셀모임 도중에 오느라 고생했다, 아이가 깨서 놀랐겠다, 그 한 마디만 들었더라도.
나는 지금보다는 괜찮았을 것이다.
나는 아이에게 사과하고 아이를 방으로 데려왔다.
아이는 금세 잠들었지만 나는 지금까지 잠을 잘 수가 없다.
남편에게 내 마음을 이야기하면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하다.
남편은 내가 잘못했으니 마땅히 그런 소리를 듣고 그런 취급을 당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을 거니까.
자기가 뭘 잘못했냐며 오히려 내게 따지고 들 것이다.
안 그래도 취약해진 감정으로 그에게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고층에서 떨어지면 모든 것이 끝날까 했으나 그것도 할 수가 없다.
그저 나는 없어져야 하는데.
처음부터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는데.
정제되고 매끈한, 고통도 노여움도 없는 그런 사람들과 섞일 수가 없는 사람인데.
베트남에서 있었던 일이다.
남편은 나와 아이의 손을 잡고 빠르게 걷고 있었고
보도블럭이 고르지 않은 탓에 나는 발끝을 보도블럭의 튀어나온 부분에 세게 부딪혔다.
천천히 갔다면 충격은 덜 했을 텐데.
나는 발을 부딪혔다며 손을 놓으라고 했다.
남편이 그러자 나에게 말했다.
안 보고 걸었어?
네가 다친 것은 네 탓이라는 뜻이다.
나 때문에 그런 거야?
나 때문이 아니니 책임 돌리지 말란 뜻이다.
나는 당신 때문이라고 한 적이 없고 발을 다친 것뿐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남편은 더 말하지 않았다.
내가 얼마나 아픈지도 묻지 않았다.
자기 책임만 아니면 되는 것이었다.
남편은 그런 사람이다.
자기가 진짜 어떤 사람인 것보다 자기가 보여지는 것이 더 중요한 사람이다.
불행한 것은 나도 그렇다는 것이다.
불행한 사람이 불행한 사람을 만나 불행이 키워진다.
하지만 그 불행은 누가 만든 것인가.
그것은 바로 내가 만든 것이다.
왜 불행을 만들었는가.
내가 불행해야 남편이 잘못한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나를 불행하게 만들었으니까.
그러므로 그만 이 사슬에서 놓여나자.
불행한 삶은 그만 선택하자.
타인이 백마디를 해도 내가 아닌 거면 아닌 거다.
애가 자니까 맡기고 밖에 나갈 수도 있는 거다.
한두 살도 아니고 일곱 살인데.
내가 어디 멀리 간 것도 아니고 집앞 걸어서 십 분 거리의 카페에 갔는데, 게다가 울고불고 해서 바로 왔는데.
거기다 대고 사과하라는 매너는 도대체 무엇인가.
그는 나를 아이의 엄마가 아닌 몸종을 만들었다.
엄마가 부르니까 바로 왔어, 엄마 최고! 가 아니라.
엄마는 부르면 언제든 와야 하는 존재로 만들었다.
내가 불쌍해져서 그의 잘못을 알게 할 필요는 없다.
내가 불행해져서 얻게 되는 이득도 없다.
누가 뭐라건 나는 나의 길을 갈 것이다.
죽지 않을 것이다.
죽어서 누군가가 죄책감을 가지게 만들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런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