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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나비 May 24. 2022

아이가 다쳤다

다치면서 크는 아이들

아이가 주차장에서 다쳤다. 크게 다친 것은 아니지만 언제나 아이가 다치면 부모는 신경이 쓰인다.


아이는 이틀 전에도 다쳤었다. 아이 아빠와 함께 놀러 나갔을 때였다. 어린이집이 공동육아 어린이집이라서 언제나 개방되어 있는데, 일요일에 어린이집에 같이 들어가서 잡기 놀이를 한 모양이었다. 아이 아빠는 공룡이 되었고 아이는 도망치는 존재가 되어서 계단을 기어 올랐는데(왜 멀쩡히 걷지 않고 기었는지는... 생각해 보니 나도 외갓집 계단을 늘 기어 다녔다. 어릴 땐 그게 재밌었나 보다.) 몇 계단 가지 못해서 엎어졌고 광대뼈에 피멍이 생겼다.


피멍을 달고 귀가한 아이에게 놀라서 물었더니 "계단을 기어 오르다가 넘어졌다."고 이야기했다. 아빠가 뒤에서 자기를 쫓아왔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아직 거기까지 설명을 못 해서일 수도 있지만, 또 아이의 착한 마음에 아빠의 허물을 감추어 주는 것인가 싶기도 했다.


나는 아이가 계단을 오를 때에는 바른 자세로 한 걸음씩 오르도록 지도해야 한다고 아이 아빠에게 한 스무 번은 이야기 했다. 절대 아이가 계단에 있을 때 장난을 치지 말라고. 대체 왜 그때 공룡 흉내를 내면서 아이를 쫓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아이가 계단에만 서 있어도 가슴이 벌떡벌떡 하는데. 어린이집 선생님도 아이가 두 계단씩 오르기라도 하면 내려가서 다시 올라오라고 하시는데 말이다.


그런데 이틀이 지나서 이번엔 내 실수로 아이가 다친 것이었다.


주차는 늘 기둥 옆에 한다. 아이가 내릴 곳을 넉넉하게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와 같은 경우가 많은지 기둥 옆은 늘 먼저 자리가 찬다. 어제 저녁은 마침 기둥 옆에 자리가 있어서 기둥에 바짝 붙어서 주차를 했다. 마침 옆차가 없었으므로 아이가 내릴 자리는 넉넉했다. 문제는 오늘 아침이었다.


하필 내 옆의 대형 SUV차량이 주차선에 딱 붙어서 주차를 한 바람에 아이가 탈 자리가 없었다. 일단 뒷문을 열어주기 위해서 아이에게 좀 더 뒤로 가라며 살짝 밀었는데, 아이가 밀린 곳에 주차턱이 있었고 거기에 발이 딱 걸려 버린 아이는 요란하게 넘어지고 말았다. 얼른 아이를 일으켜서 손바닥을 확인해 보니 다행히 깨끗했다. 아이가 아프다고 징징거려서 일단 달래고 나서 SUV차가 있는 쪽의 반대편으로 아이를 태웠다.(대체 왜 처음부터 그 생각을 못했단 말인가!)


차를 출발시켜 어린이집에 도착했다. 문에서 바로 헤어지지 않고 보통은 안에 들어가서 아이들과 선생님과 인사하고 나서 아이를 인계하고 나오는데, 아이가 무심코 걷은 팔에 길게 상처가 나 있었다. 아까 주차장에서 넘어질 때 다친 곳이었던 모양이었다. 손바닥이 멀쩡해서 안 다친 줄 알았는데. 길게 핏금이 그어진 아이의 하얀 살을 보니 머리가 팽팽 돌았다.


상처는 깊진 않았으나 너무 길었다. 아마도 날카로운 무엇에 긁힌 듯했다. 넘어지면서 뭐에 긁혔을까. 깊게 파인 상처는 아니었으나 감염이 될 수 있었으므로 소독약과 연고를 바르고 나서 적당한 크기의 밴드가 없어 작은 밴드를 가로로 세 개 붙였다. 치료를 하는 내내 아이는 아프다고 하면서 어서 밴드를 붙여야 한다고 나와 선생님을 재촉했다.


집에 돌아온 나는 아이의 상처에 맞는 밴드를 찾아서 약국에 갔다. 약국에서는 다쳐서 딱지가 생기기 전에 붙이면 효과가 좋은 폼을 소개해 주었다. 흉이 지지 않는다고 했다. 지금 바로 가지고 가면 붙일 수 있다고. 순간 이걸 가지고 20-30분 거리인 어린이집에 또 운전을 하고 가서 아이에게 이걸 붙여야 하나 생각했다. 이걸 안 붙여도 흉이 지지 않을 것 같은데. (그거로 흉이 졌으면 나야말로 온몸이 흉이었을 듯) 


나는 고민 끝에 폼을 반품하고 넓은 반창고를 샀다. 집에 오면서 엄마라면 저 폼을 사서 지금이라도 눈썹이 휘날리게 어린이집으로 달려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그러고 싶지가 않았다. 다른 엄마들이라면 어떻게 할까. 흉이 지진 않을 것 같지만 일단 최선을 다 하기 위해서 다시 운전을 할까. 아니면 나처럼 그냥 집에 돌아오고 말까. 


물론 지금 간다고 해도 만나지 않을 확률이 높다. 이미 어린이집에서는 산행을 갔을 것이고, 아이들은 산에서 뒹굴며 놀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린이집에 가도 아이가 있는 산을 찾아서 또 한참 들어가야 할 것이고, 만나도 아이를 일단 어린이집에 데리고 와서 씻기고 폼을 다시 붙여줘야 하는데 아이의 성격상 산에서 놀다가 도중에 가기는 죽기 보다 싫어할 확률이 높았다.(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마음이 좀 더 편해지기는 했다.)


이틀 연속으로 아빠 엄마 때문에 다친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한편으로는 아이 아빠가 아이를 또 다치게 하는 일이 있어도 절대 뭐라고 하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는 정말 의외의 상황에서 다친다. 그래서 항상 주의해야 하지만, 또 다쳤다고 해서 그것을 내내 자책하고 있거나 힘들어 해서도 안 된다. 그것으로 상대를 비난해서도 안 된다. 우리 어릴 때 생각해 보면 그땐 다치는 게 일상이었고 나도 양 무릎에 흉터를 달고 있다. 아이는 다치면서 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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