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오이디푸스가 아니라 오이를 좋아하는 아기일 뿐이야
대학 시절 '오이디푸스 왕'이라는 소포클래스의 비극을 읽었다.
그리고 프로이드의 '오이디푸스 컴플렉스'역시 배웠다. 남자 아이가 엄마를 좋아하면서 아빠를 싫어하다가, 아빠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그와 동일시를 하면서 성역할을 학습한다는. 당시로서는 크게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아이가 엄마를 좋아하는 것은 사실이겠지만, 설마 아빠를 싫어하면서까지 엄마를 좋아할까 싶었고, 또 프로이드 당시에는 아빠가 육아에 많이 참여를 안 하니 그랬을 것이라고도 생각했었다.
그런데 요즘, 아이의 행동이 "엄마 그때 오이디푸스 컴플렉스 이해 잘 못 했지? 내가 확실하게 이해하게 해줄게."라고 말하는 듯이 아주 격렬하게 아빠를 싫어하고 있다.
아이는 아주 대놓고 "아빠 싫어." "아빠랑 같이 안 자." "엄마랑만 잘 거야." "아빠는 저리 가."라고 이야기한다. 나한테도 물론 그럴 때 있는데 나에게는 자기가 화가 났을 때 그렇게 말한다. 예를 들어 내가 이를 닦아야 하고 과자는 밥 먹고 나서 먹어야 하는 등의 잔소리를 하면 "엄마 저리 가." "나 밥 혼자 먹을 거야. 엄마 가." 라고 말하는 식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또 나에게 다가오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논다.
하지만 아빠를 대하는 것은 아주 일관적이다. 심지어 다른 사람들이 곁에 있는데도 "아빠 싫어." "아빠 저리 가."라고 말해서 주변 사람들이 당혹하게 하는 경우도 있다. 내가 아이에게 밤에 자기 전에 조용히 "아빠가 00이 많이 사랑하는데." "아빠가 00이 좋아해. 00이가 아빠 싫다고 하면 아빠가 상처 받을 거야."라고 말을 해도 아이는 "나는 엄마만 좋아." "엄마랑만 잘 거야." "아빠 싫어."라고 꾸준히 이야기를 한다. 그렇다고 내가 잠시 외출하거나 아이가 아빠랑 놀러 나갔을 때는 아빠를 따른다. 나와 있을 때만 그러는 것이다.
어제는 같이 밥을 먹는데 남편이 자꾸 내 밥을 제 숟가락으로 떠 갔다. 자기 밥 뜨기 귀찮다고 자꾸 내 밥을 가져가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자꾸 왜 그래." 라고 살짝 짜증을 냈더니, 아이가 갑자기 "나 소리지를 거야!"라고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남편은 물론 장난이었고 나도 장난인 걸 알았지만 약간 짜증은 났기에 별 생각이 없이 말한 건데 아이는 그 일을 마치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괴물이 나타나 괴롭히는 것과 같은 아주아주 심각한 일로 인식을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아이는 자기가 조금 심하게 짜증을 냈거나 장난을 쳤다고 생각한 밤에는, 나에게 얼굴을 내밀고 "엄마 미안해. 아까 내가 소리질러서."라고 꼭꼭 말을 한다. 아이 손을 내 얼굴에 대면, 내가 아이에게 하듯이 "예쁘다 예쁘다"하면서 나를 쓰다듬어 준다. 아이에게 나는 세상보다도 더 소중한 사람이다. 절대로 어디에서도 상해서는 안 되는 보물 같은 사람이다. 그런 사람에게 자기 말고 다른 남자가 자꾸 말을 건다. 때로는 그 사람을 짜증나게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자꾸 무언가를 시킨다. 그러니 미울 수밖에. 내 소중한 사람은 나와만 이야기를 나눠야 하고 나하고만 놀아야 하는데 자꾸 뺏어가니까.
거기에는 내 잘못도 있는 것 같다. 남편에게 너무 힘들어서 소리친 적도 있으니까. 그걸 보고 아이는 점점 더 내 편이 되어야 겠다고 생각한 것 같다. 하지만 지금 와서 남편에게 사랑한다고 해도 아이는 그걸 보고 또 질투할 것 같기도 하다. 아이가 언제쯤 자신은 아빠를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될까. 아직은 자기가 한참 왕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