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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나비 May 26. 2022

'00이가 내 물건을 뺏어갔어.'

소통을 하는 아이

어제는 어린이집 행사 준비로 아이들의 엄마들이 모였다.

엄마들이 일을 하는 동안, 아이들은 한 엄마의 돌봄 속에서 놀았다. 물론 그때의 돌봄은 어린이집 선생님이 상주하며 하는 돌봄처럼 치밀하지는 않다. 그저 잘 노는지, 누가 다치지는 않는지 보는 느슨한 돌봄이었다.

한참 두다다다 어린이집을 뛰어 다니던 무리 속에서, 한 아이가 울음을 터뜨렸다. 울음 소리가 익숙하다고 생각하고 다가가니 다름 아닌 우리 아이가 울고 있었다.

우는 폼을 보니 어디가 다친 것 같지는 않아 조금 안심하면서 아이에게 다가갔다.

내가 아이에게 말을 걸기도 전에 주변의 아이들이 마치 성토하듯이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우리가 때린 거 아니에요."

"우린 안 건드렸어요. 아무 일도 없었는데요."


매우 당혹스러운 듯이 꺼내는 이야기에 나 역시 조금 당황했다. 아직 아무것도 묻지 않았는데, 되려 혼날까 봐 두려워하는 모습들이었다.

하지만 만약 누군가 정말 때리고 밀쳤다면 그 중 누군가는 진실을 말했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아직 거짓을 말하기에는 어린 나이였고, 그들의 성정 역시 조금은 알고 있으니까.


"누가 때리거나 밀치지 않아도 울 수 있어. 잠깐만 물어볼게."


나는 일단 아이들을 안심시키고 아이를 달랬다. 아이가 조금 울음이 잦아들자 나는 왜 울었냐고 물었다. 아이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다시 물었다.


"졸렸어?"


아이가 낮잠을 자지 않았다고 알고 있었다. 그래서 뛰다가 갑자기 졸리고 피곤해서 울었나 싶었다. 그랬더니 아이는 졸렸다고 답했다.

나는 아이를 잘 달래주고 나서 다시 자리로 돌아왔고, 아이들은 언제 그랬냐 싶게 다시 우다다다 달리기 시작했다. 우리 아이도 함께. 그러다 시간이 흘렀고, 나와 아이는 집에 돌아왔다. 나는 아이를 씻기고 눕혔다. 아이는 어두운 방에 멀뚱히 누워 있다가 말했다.


"나는 갈색 공이 좋아."

"갈색 공이 좋았어?"

"어, 근데. 오늘 00이가 갈색 공 뺏어갔어."


00이는 우리 아이와 제일 성향이 잘 맞아서 종종 잘 노는 친구다. 물론 다섯 살이니 매번 짝지어 놀지는 않지만, 그래도 개중에 가장 많이 노는 친구이기도 하다.

나는 그 애가 왜 우리 아이의 공을 뺏어갔는지 알 수 있었다. 갈색 공이 탐이 나서는 아닐 것이다. 아마도 그 아이 딴에는 우리 아이와 놀자는 신호를 그렇게 한 것이겠지.

말은 해도 아직 말로 감정이나 기분, 자신의 생각을 솔직히 표현하기는 서투른 나이다. 생각해 보니 나 역시 표현을 잘 못해서 오해가 쌓인 적이 많다. 어쩌면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타인에게 표현하며 관계를 맺는 것은 사람의 평생에 공부해야 할 과제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아이들은 그 첫 출발점에 선 것이었다.


"00이가 너하고 놀고 싶었나 봐."

"근데 나는 00하고 안 놀고 싶어."

"그럼 다음부터는 00야, 공 돌려줘. 라고 말해. 지금은 혼자 놀고 싶다고 해."

"근데 00이가 공 가져갔어."

(아예 공을 가져가 버렸다고 말하는 듯했다.)

"계속 공 가져가고 안 돌려주면 선생님한테 얘기해."


아이는 그 후 몇 번을 '00이가 공을 가져갔다'는 말을 했다. 

아이가 가지고 있는 물건을 다른 아이가 말도 없이 가져간 경우는 엄청나게 많다. 그 전에 다니던 어린이집에서도 꽤나 많이 있었던 일이다. 그런데 그 일에 아이는 크게 반응하지 않거나, 도로 빼앗으면서 화를 내거나 하고, 곧 잊어버렸다. 이렇게 오래 오래 간직하면서 말을 한 적은 없었다.

나는 혹시 아까 울었던 것도 그 이유냐고 물었다. 아이는 그렇다고 답했다. 너무 서럽게 울어서 진짜 졸려서 그런가 싶었는데, 실은 그때에 00이가 물건을 뺏어간 것이 너무 서러워서 울음이 터져 나왔던 모양이었다.

이럴 때 진짜 하지 말아야 할 말들이 있다.


"남자답게 도로 달라고 하지, 왜 울긴 울어!"

"그렇게 질질 짜면 계속 애들이 너 놀려."

"아까는 왜 제대로 말도 못 했어, 바보 같이."


나는 물론 세 가지 모두 말을 하지 않았다. 나는 다만, 아까 아이들이 모여서 웅성거릴 때에 거기서 당장에 아이가 운 이유를 묻는 것보다는 자리를 피하는 것이 좋았었다고 혼자 생각했을 뿐이다.

생각해 보니 오늘 아이가 00이와 놀지 않았다. 물건을 뺏어간 것이 그토록 화가 났었던가. 나는 아이가 관계 맺기의 출발선에 서 있는 것을 느꼈다.


"오늘 많이 힘들었구나. 근데 엄마도 그런 적 엄청 많아. 물건 뺏어가도 얘기도 못하고 그랬었어."


아이가 듣든지 말든지 나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네가 이제 사람들하고 친해지고 가까워지는 거야. 앞으로도 그런 일이 아주아주 많을 거야."


아이가 잠을 잘 때까지도 00이가 물건을 뺏어간 것이 두고두고 생각났던 이유는, 그만큼 00이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좋아하기 때문에 그 일은 스쳐가는 일이 되지 못했다. 두고두고 생각나는 분한 일이 되었다.

좋아하는 아이와 어떻게 관계를 맺어갈까.

물건을 뺏어가기도 하고 서로 화를 내고 다투기도 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서로 밀치기도 하고 상처도 입겠지. 그러다가 친구가 되기도 하고, 또 원수가 되기도 한다. 그러는 과정에서 사람은 자란다. 아이도 자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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