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있어도 돼
내가 어릴 때 가장 먼저 느꼈던 감정은 내가 이곳에서 그다지 환영 받지 못하는 존재라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내가 무슨 학대를 받았다거나, 누군가 나를 함부로 대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나는 당시의 어린이로서, 나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어린이와 같은 취급을 받았다.
우리는 '---하기 위해 이땅에 태어났다'는 '국민교육헌장'을 암송해야 했고, 늘 어머니 아버지 은혜에 감사해야 했으며, 길 가는 어른들이 함부로 머리를 만지거나 반말을 해도 공손히 존댓말로 응대해야 했다. 나 듣는 앞에서 부모님이나 다른 어른들이 내 험담을 해도 기분 나쁜 티를 내서는 안 되었으며,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잘못에 대한 체벌을 받았다. 그 잘못이라는 것은 요즘 말하는 진짜 '잘못'도 있지만 아직 뇌가 미성숙해서 일어나는, 혹은 어른들도 하는 자잘한 실수로 인한 잘못도 있었다. 그런 잘못들로 어른들은 매를 맞지 않지만 어린이들은 신체의 일부에 매를 맞거나 벌을 서는 치욕스러운 일을 당해야 했고 그것 때문에 상처 받거나 힘들어해서도 안 되었다.
그런 모든 취급은 나에게 한 가지 결론을 내려 주었다. '이곳의 주인은 어른들이고 우리는 곁가지구나. 우리가 어떻게든 살아 남으려면 어른들에게 잘 보여야 해.'
나는 공부를 열심히 했고 어른들의 마음에 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렇게 살다 보니 어른이 되었고 내 마음대로 살아도 되는 시기가 왔는데도 나는 그렇게 살 수가 없었다. 나는 여전히 같은 어른들의 눈치를 보았고 어디를 가든 내가 여기 있어도 되나 싶은 마음을 느꼈다. 일을 열심히 하지 않으면 무가치한 사람이라고 느꼈고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데 스스로 위축이 되었다.
그리고 나의 아이도 비슷한 삶을 살고 있었다.
겨우 다섯 살. 나는 아이에게 체벌을 하지 않고 되도록이면 소리를 지르려고 하지 않았지만 소리 지르는 것만큼은 마음대로 조절하기가 힘들었다. 가끔은 남편과 아이가 듣는 앞에서 아이의 이야기를 했는데 개중에는 들으면 좀 불쾌할만할 말도 섞여 있었다. 옷도 먹을 것도 제맘대로 하려는 아이 앞에서 그냥 주는 대로 입고 먹으면 안 되겠냐고 하기도 했다.
아이는 집에서는 그러지 않았지만, 밖에만 나가면 다른 사람이 된듯이 자신의 요구를 말하지 못했다. 밥을 먹고 나서는 더 먹고 싶어도 멍하니 앉아 있었다. 다른 아이들이 소리를 지르거나 물건을 빼앗아 가도 힐끔 놀라거나 몸을 피했다.
다섯 살에, 아이와 아이 아빠와 아이 엄마인 나는 조금 특별한 어린이집을 찾았다. 공동 육아 어린이집이라는, 부모의 참여는 많고 돈은 많이 내며 다른 부모들과 억지로라도 관계를 맺어야 하는 곳이었다. 그런 어린이집을 선택한 것은 물론 나와 남편을 위해서는 아니었다. 여러 어린이집을 알아보는 중에 자연과 친한 교육을 하는 이곳을 알게 되었고, 상담을 하고 면접을 가게 되었다. 어린이집 선생님은 아이에게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했다. 조금 이야기가 진행되었을 때, 선생님이 아이에게 물었다.
"00이는 잠깐 밖에서 놀고 있을까? 엄마 아빠는 이곳에서 00이를 볼 거고, 00이가 필요하면 다시 엄마 아빠를 만날 수 있어."
아이는 처음에는 저항하다가 몇 차례 안심을 시켜주자 면접에 온 기존 원생 부모와 함께 마당으로 나갔고, 그러자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이제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할 건데, 아이가 들으면 좀 기분이 안 좋을 수도 있어서 밖에 있으라고 했어요."
그게 뭐라고. 그 말이 나는 충격이었다. 이제껏 아이에 대한 상담은, 늘 아이가 있는 곳에서 이루어졌다. 4살까지 다니던 어린이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어린이집 선생님은 진심이었다. 나는 이곳에서 아이를 존중해주는 것을 느꼈고,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열렸다.
나는 결국 그 어린이집을 선택했다. 그리고 나서 신입 부모들이 모이는 날이 되었다. 아직 모든 것이 어색한 아이는 부모의 곁에 있었다. 순서가 진행되는데 아이가 좀 큰 소리로 말을 했다. 아이 아빠는 아이에게 좀 나가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그곳에 함께 있던 기존 원생의 엄마가 말했다.
"괜찮아요. 아이는 원래 크게 말해요. 여기 있어도 돼요."
나는 또 한 번, 부모가 아닌 아이를 보는 중심을 느꼈다.
나는 어린이집을 홍보하려는 것이 아니다. 공동육아 어린이집이라고 다 좋은 것은 아니다. 어느 곳이든 단점은 있다. 다만 이 두 가지 경우에서 나는 중요한 것을 깨달았다. 내가 얼마나 아이를 존중하는 것에서 멀어져 있는가 하는 점이었다. 아이라도 존중을 해서 그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는 적절히 분리시켜야 하는 것이 맞고, 또 큰 소리로 떠든다고 무조건 아이를 배척하지 않는 것도 맞다. 물론 너무 방해가 될 때는 아이에게 조용히 말해 달라고 부탁을 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아이가 이곳에서 살만하다고, 자신이 받아들여진다고 느껴야 한다. 나는 어린시절 그것을 느끼지 못했다. 세상은 폭력적이고 잔혹했다. 아이에게는 어떨까. 과연 아이의 오늘이, 아이에게는 살만한 오늘이었을까.
어린이집에서 행사가 있었다. 여러 행사 부스에서 우유를 파는 부스가 있었는데, 팔고 남은 우유를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고 있었다. '이거 먹을 사람!'이라고 하니 아이들이 몰려 왔는데, 그 중엔 우리 아이도 있었다. 전 같으면 말 한 마디 못했을 아이가 멀뚱히 서서 가만히 있었다. 나는 아이를 다그치지 않았다. 뭘 하든, 아이가 표현해 줄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우유가 하나 남은 순간, '먹을 사람!'이라는 말에 아이가 손을 번쩍 들었다.
"나!"
그 소리는 누구보다도 크고 우렁찼다. 개선장군처럼 우유를 들고 오는 아이를 보니까 왠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래, 아이는 오늘도 자란다. 그리고 세상은 아이들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