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즉흥놀이
오늘 두 개나 써서 그만 쓰려고 했는데, 오늘 아이와 한 놀이가 좀 특이해서 기록해 놓으려고 한다.
집에 세탁기가 새로 들어오게 되었다. 십여년을 쓴 세탁기가 며칠 전 세탁 도중 멈추어 버렸다. 늙은 모터를 덜덜거리며 탈수를 하다가 그만 생을 놓아버린 것이었다.
아이는 세탁기를 사랑했으므로, 세탁기가 아파서 병원에 간다며 마지막 작별인사를 시켰다. 그리고 새로 산 세탁기 설치 기사가 오는 동안 나와 아이는 방에 감금되었다.
오늘 아이는 꽤 중요한 미션 하나를 통과했다. 머리에 물 닿는 것을 싫어해서 집에서도 머리를 잘 못 감는 아이가 무려 미용실에서 머리를 깎고 머리까지 감고 온 것이었다. 미용실 원장님과 남편의 폭풍 칭찬을 뒤로 하고 개선 장군처럼 집에 돌아온 아이에게 나 역시 진심을 담아 물개 박수를 쳐 주었다.
이후로 아이는 많이 피곤해 했다. 그래서 세탁기 기사가 올 즈음 제발 잠들기를 바랐지만... 오히려 그 시간이 되니 쌩쌩해졌다. 나는 자려고 했던 계획을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와 내가 감금된 내 방에는 아이의 장난감이 하나도 없었다.... 모두 거실에 있었는데, 이미 거실은 나갈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세탁기가 들어와야 하므로 아이가 돌아다니면 위험한 상황이었다.) 까닭에 나는 내 방에 있는 것을 최대한 활용해서 아이와 한두시간을 어떻게든 버텨 내야 했다.
뭘 하지.
멍하니 있는 내 눈에 들어온 것은, 구겨진 포장지였다. 지금 말고 전에 다니던 어린이집에서는 생일 맞은 친구를 위한 작은 선물을 준비하도록 했다. 그때 선물을 포장하기 위해 산 포장지였는데, 관리를 잘못해서 다 구겨져 버리고 말았다. 한 마디로 그것은 '쓰레기'였다.
하지만 아이의 눈에 그것은 절대 '쓰레기'가 아니었다. 아이란 존재는 어떤 존재인가. 장난감을 사 주면 안의 장난감은 빼고 상자를 가지고 노는 존재가 바로 아이이다. 나 역시 아이가 가지고 놀라고 산 장난감은 안 가지고 놀고 엄마나 아빠의 생필품을 가지고 노는 것이 매우 황당했었다. 근데 원래 아이들은 그렇다고 한다.
나는 그 알록달록 포장지를 내 침대 위에 펼쳤다.
그것이 놀이의 시작이었다.
구깃구깃한 종이 포장지는 말랑말랑한 침대 위에서 구깃구깃 소리를 냈다. 아이는 재미있는 듯이 발로 포장지를 밟았다. 나도 손으로 포장지를 꾹꾹 눌렀다.
몇 번 그렇게 누른 포장지 위에 나는 휴지, 머리빗, 그리고 플라스틱으로 된 조악한 머리핀 등을 올려 두었다.
"얘네는 어린이집 가는 거야."
나는 상황을 설명했다. 아이의 두 눈이 반짝반짝해졌다.
"어린이집 버스를 타고 갈 거야."
아이는 그 말에 반기를 들었다.
"배 타고 갈 거야!"
그렇게 '어린이집에 배 타고 가는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나는 배가 된 포장지 위에 옛날 어린이집에서 준 모형 꽃을 올렸다. 면봉이 담긴 함도 올리고 아무튼 손에 닿는 것은 다 올렸다. 그러자 아이도 다른 것을 가져와서 올렸다.
그렇게 어린이집을 가는 배에 모두 승선을 했다.
"이제 어린이집에 가자. 근데 운전은 누가 해?"
"운전은 내가 해."
아이는 포장지 앞에 베개를 두고는 자신이 그 위에 올라 앉았다. 나는 핸들로 쓸 만한 동그란 두루마리 휴지를 주었다. 아이는 그것을 핸들처럼 움직이면서 운전을 시작했다.
그러고 나니 뭘 해야 하지 싶었다. 이대로 침묵인가.
근데 무릇 이야기에는 시련과 좌절이 필요한 법이 아닌가. 바로 이 타이밍이 악당이 필요한 때인 것 같았다.
나는 아이의 앞으로 갔다. 양말을 양 손에 끼고 소리쳤다.
"나는 양말 귀신이다!"
요상한 동작을 하며 손을 움직이는 나를 보고 아이는 침착하게 내 손에서 양말을 빼버렸다. 그렇게 양말 귀신은 장렬히 전사하고 말았다. 하지만 여기서 그만둘 수는 없었다. 나는 이번에는 에코백을 양손에 끼우고 등장했다.(이 부분에서 나는 나의 창의력 없음을 절감해야 했다. 또 손에다 끼우다니. 차라리 발에 끼울 걸.)
"나는 가방 귀신이다!"
아이는 가방 귀신도 벗겨 버림으로써 가볍게 퇴치했다. 그 후 나타난 비닐봉지 괴물도 마찬가지였다.(나는 창의력이 없기에 똑같이 손에 끼우고 등장했다. 머리에 쓸까 했으나 아이가 따라할까 봐 하지 않았다.)
나는 무언가 새로운 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손에 끼우는 거 말고 뭐 신박한 괴물 없을까. 그때 내 눈에 문구용 딱풀이 들어왔다. 나는 딱풀을 집어 들었다.
"나는 딱풀 귀신이다!"
나는 딱풀 뚜껑을 닫은 채로 아이의 무릎과 머리, 팔 등에 슥슥 그었다. 아이는 딱풀이 묻은 부분을 손으로 딱딱 때렸다. 그렇게 딱풀 괴물도 물러갈 줄 알았으나, 딱풀 괴물은 아까 괴물보다도 더 집요한 놈이었다.
"난 여기로도 올 수 있지!"
낄낄거리며 딱풀 귀신은 어린이집에 가는 배에 탄 아이들(빗, 머리핀, 휴지 등등의 아이들)도 공격했다. 딱풀 공격을 받은 아이들은 몸이 붙어서 괴로워했고, 아이는 그제야 당황한 듯이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아이는 내게서 딱풀을 뺏어 들었다. 그러고는 내가 그랬던 것처럼 내 무릎과 팔 등에 딱풀을 발랐다.(물론 뚜껑을 닫은 채였으므로 진짜 바르지는 않았다.)
"아이고, 몸이 다 붙어 버렸네."
딱풀 귀신은 이제 딱풀이 붙어서 힘을 못 쓰게 되었다. 몸이 딱 붙었다며 몸을 오그린 채 괴로워했다. 그러자 아이는 딱풀의 뒷면으로 붙은 곳을 슬슬 발랐다. 내가 눈치를 못 채고 더 붙었다고 하자, 아이는 나를 억지로 일으키며 말했다.
"아니야. 이제 떨어져야 해."
딱풀 앞부분이 붙이는 작용을 한다면 뒷부분은 떨어지게 만드는 작용을 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다시 떨어졌으나 떨어지자 마자 다시 아이는 딱풀을 발라서 나를 붙여 버렸다. 나와 아이는 번갈아 가며 딱풀을 바르고, 다시 떨어지고, 다시 바르고 하는 것을 반복했다. 지금 어린이집 가는 중이라는 것은 이미 둘 다 잊은 듯했다.
그렇게 어린이집 하원 시간이 되어서야 일행은 어린이집에 도착했다. 딱풀 놀이 때문에 잠시 목적을 잊은 듯했던 아이는 다시 운전석에 앉아서 말했다.
"어린이집에 도착했어!"
우리는 배에 탄 아이들을 모두 내렸다. 그런데 내리자 마자 아이가 말했다.
"이제는 집에 가야해!"
그래, 하원 시간이 되었으니 집에 가야 한다. 아이들은 다시 배에 탔다. 그 사이 세탁기는 설치가 끝났다. 나는 놀이 마무리를 해야 했지만, 어떻게 이 놀이를 마무리해야 할지 몰랐다. 나는 새 세탁기를 보러 가자고 아이를 잡아 끌었고, 그 사이에 그냥 배에 있던 내 도구들은 다 치워 버렸다.(물론 아이의 손으로 집에 데려다 주었으면 좋았겠지만 이미 시간이 늦었고 그러려면 또 한도 끝도 없이 시간을 보내야 할 듯했다.)
놀이 시간에는 누구보다도 재미있게 놀이에 참여했던 아이는, 놀이가 끝나고 나자 짜증 대마왕으로 바뀌어 버렸다. 아마도 누적된 피로로 짜증이 올라와서겠지만, 나는 순탄했던 항해 중 '짜증 귀신'이라도 만난 것처럼 당혹스러웠다. 놀이가 너무 잘 되어서 더 그랬다. 정말 오늘은 내가 좀 잘한 것 같았는데. 결국 또 반복인가. 어쩔 수 없는가. 재밌게 놀아줘도 아이는 아이일 뿐인가.
짜증 종합 선물 세트로 엄마의 짜증까지 올려버린 아이는, 지금 코를 골며 자고 있다. 역시 피곤했던 것이다. 격렬하게 놀고 보니 더 그랬겠지.
지금 와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보니 부끄럽다. 잘 논 줄 알았는데, 너무 내 위주였다. 내가 끌어가고 내가 정답을 다 알고. 중간중간 아이도 자기 의사를 이야기하고 놀이를 끌어 갔으나 아무래도 내가 90이고 아이가 10이었던 것 같다. 잘 놀기 위해서는 내가 10이고 아이가 90이어야 할 텐데. 그렇게 하긴 정말 힘들 거 같다. 하지만 글쓰기처럼 놀이도 그런 거라면, 하면 할수록 느는 어떤 거라면 지금이 시작이라고 볼 수 있겠지. 그렇게 자신감을 가지자고 스스로에게 말해본다.
오늘 아이는 미용실에서 머리를 자르고 머리를 감으면서 제가 가진 한계를 넘어섰다면, 나 역시 아이와 새로운 놀이를 만들고 같이 놀면서 내 한계를 넘어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