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놀아야 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
얼마 전에 놀이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아이와 어떻게 하면 잘 '놀아줄까'를 고민하는 엄마들을 대상으로 한 강의였다.(아, 엄마들을 대상으로 한 강의라는 말은 없었는데 듣는 사람들은 다 엄마들이었다. 아마도 강의가 오전에 있었기 때문이겠지. 엄마만 놀아주기를 강요 당하기 때문은 절대로 아니겠지. 그렇겠지.)
약 한 시간 조금 넘게 놀이에 대한 이론을 아주 간단히 공부하고 실제 놀이 시연한 것을 봤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다음과 같은 말이었다. 놀이의 목적은? 즐거움이다. 놀이를 통해서 다른 것을 하지 말아라. 놀이는 그저 즐거우면 되는 것이다.
어른들은 놀이를 통해 아이에게 많은 것을 바란다. 가장 많이 바라는 것이 바로 '언어 습득 능력'이다. 그래서 어떤 엄마들은 영어로 놀아주다가 중국어로 놀아 주다가 하기도 한다. 나는 물론 능력이 안 되어 한국어로만 놀아준다. 놀이를 하면서 아이는 자연스럽게 언어를 습득한다. 습득하는 줄도 모른 채, 조금의 거부감도 없이.
놀이를 하면서 수학을 익히게 하기도 한다. 장난감의 개수를 세거나, 인형들을 놓고 '우리 포도를 세 개씩 주어 볼까'라고 유도를 하면서 아이의 수학 공부를 시킨다. 사회성도 물론 발달한다. 서로 대화를 주고 받는 속에서 상대에게 맞추어 어떻게 말을 하면 좋을지, 상황에 따른 학습을 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목적'이어서는 안 된다고 한다. 그것은 당연하게도, 그런 것들이 목적이 되는 순간 놀이의 가장 큰 목적인 즐거움이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인 듯하다. 아이가 만약 포도를 세 개씩 놓아야 하는데 두 개를 놓는 순간 "이게 두 개지 세 걔야? 세 개라고 세 개!"이렇게 말을 하게 되고 놀이는 그 순간 끝나 버리는 것이다.
사회성 학습을 놀이의 목적으로 삼아도 마찬가지다. 아이는 놀이를 하다가 인형을 발로 밟기도 하고 인형끼리 서로 다투는 모양을 연출하기도 한다. 그럴 때에 "인형을 발로 밟으면 안 되지." "이렇게 싸우면 안 되는 거야."라면서 갑자기 개입을 해 버린다. 그러면 그야말로 갑분싸가 된다. 역시 놀이는 끝난다.
그런데 즐거움을 목표로 놀이를 하다 보면 그 속에서 언어, 수학, 사회성 기타 등등의 능력이 저절로 크게 된다. 그것을 새로 깨달으면서 놀이의 부담이 확 줄었다.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른들은 놀이가 필요 없나. 어른들도 놀고 싶은데. 어른들도 그냥 아무 것도 필요 없이 '즐거움'을 위한 행위를 하고 싶어질 때가 있지 않나.
웹소설 작가로 살면서 가장 크게 힘들었던 것이 내게 놀이였던 것이 어느 순간 일이 되었던 것이었다. 내가 쓰고 싶어 쓰는 글이 아니라, 편집자가 원하고 독자가 원하니 써야 하는 글이 되었을 때 나는 마치 즐겨 쓰던 오른팔을 잃은 것처럼 암담해졌다.
지금은 잠시 웹소설 쓰기를 쉬고 있다. 일정 분량의 원고를 출판사에 보내고 나서 피드백을 기다리는 시기라서 그런 것도 있다. 원래는 이때에 다른 곳에 투고하거나 심사할 원고를 쓰려고 했었다. 그런데 아무런 글도 써지지가 않는다. 대신에 브런치에만 글을 올리고 있다.
이곳에 글을 쓰는 것은 쉼이다. 고맙게도 보아 주시는 분들이 있지만 부담은 없다. 나에게는 일종의 놀이이다. 책읽기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요즘 읽는 책은 웹소설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에세이집이다. 물론 간접적으로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지금은 그런 의식 자체를 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저 이 시간이 내게 즐거움이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생각한다. 즐거움을 아는 인간이 또 타인과 즐거움을 목적으로 한 놀이를 할 수 있을 거라고. 그러니 아이와 잘 놀아주고 싶으면 본인부터 잘 놀아야 될 것 같다.
물론 부작용은 있다. 놀고 있으니 한도 끝도 없이 놀고 싶다. 마치 아이가 이제 자야 할 시간이라고 할 때 신경질을 내며 더 놀겠다고 고집을 부리듯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