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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나비 Jun 04. 2022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

어린이 뮤지컬 소감

동화책을 좋아하고 상상 놀이를 좋아하는 아이를 위해, 나는 어린이 뮤지컬을 보러 가자고 했다. 

처음에는 좀 더 비싸고 좀 더 먼 곳에서 하는 다른 뮤지컬을 보려고 했다. 그런데 남편이 멀리 나가기 힘들다며 좀 더 값싸고 좀 더 가까이에서 하는 뮤지컬을 골랐다. 하지만 나는 그 뮤지컬이 별로일 것 같아서, 책을 바탕으로 한, 좀 더 값싸고 좀 더 가까이에서 하는 뮤지컬을 최종 선택했다. 그 뮤지컬의 제목은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


매우 자극적인 제목의 이 뮤지컬은, 동명의 책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어린이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끈 그림책이다. 내용은 매우 간단하다. 눈이 나쁜 두더지가 제 머리에 똥을 싼 범인을 찾으려 수사를 시작하고, 각종 동물들의 똥을 일일이 확인하다가 나중에 파리의 도움으로 결국 범인을 찾아내어 똑같이 복수를 한다는 내용이다. 내용은 단순하지만 분명히 장르는 미스터리물이며, 거기에 어린이들이 환장하는 '똥'까지 등장하고 있다. 어린이들이 안 좋아할 수가 없는 내용이다.


나는 이런 책을 바탕으로 만든 뮤지컬은 재미 없으라고 고사를 지내도 재미 없을 수가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블로그 후기를 찾아봤더니, '평이하지만 처음 뮤지컬을 접하면 그럭저럭 재미있게 볼 수 있는 뮤지컬'이라는 평이 있었다. 대체 재미가 있다는 건지 없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 블로거에 따르면 뮤지컬을 처음 보는 아이에게는 좋은 뮤지컬이 될 것 같았다.


공연 장소는 넓고 쾌적했다. 의자도 넉넉했고 계단식 배열이라서 앞자리에 무대가 가려지지 않았다. 무대도 예뻤다. 나는 만족하며 자리에 앉았다. 그러나 시작 시간이 가까워 오자, 여러가지 아쉬운 점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첫 번째는 공연 전 '안내의 말'이었다. 보통 연극에서도 휴대폰을 꺼 달라거나 하는 등의 안내 말은 누군가가 나와서 눈과 눈을 마주보며 전해준다. 하지만 이 뮤지컬은 어린이 뮤지컬임에도, 면대 면의 대화가 더 필요한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음에도 그저 스피커를 통해 방송이 나올 뿐이었다. 게다가 말도 너무 빨랐다. 아이들이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천천히, 또박또박 말을 해줘도 좋을 텐데.


두 번째는 공연 시작 시간이었다. 공연은 별다른 멘트 없이 5분 정도 지연되어 시작되었다. 어른이야 그냥 기다리면 되지만 아이들이 가만히 기다리는가. 우리 아이도 한 열 번쯤 의자에서 내려 섰다가 도로 올라 앉기를 반복했다. (접히는 좌석을 처음 앉아봐서 신기한 모양이었다.) 우리 아이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5분만 더 지연되었다면 공연장을 나가야 했을지도 몰랐다.


조금 짜증이 나기 시작했을 때 공연이 시작되었다. 전문가는 아니라서 잘 모르지만, 배우들은 한눈에 베테랑 같았다. 그 중에 딱 주인공으로 보이는 두더지 역의 배우는 노래도 잘하고 연기도 일품이었다. 그런데 열심히 듣다 보니 자꾸 말이 끊어졌다. 배우의 잘못이 아니라 마이크가 나왔다 안 나왔다 하는 것이었다. 마이크 성능 때문인지, 아니면 음향팀하고 사인이 안 맞은 것인지. 


그 와중에도 배우들의 열연은 두드러졌고, 아이들을 웃겼다가 집중하게 했다 하면서 극은 무리없이 흘러갔다. 짧게 끝나는 책과 다르게 캐릭터를 부여해서 극을 풍성하게 만든 것이 좋았고 지루할때쯤에 나오는 노래와 춤도 좋았다. 다만 극의 후반부에 나온 한스 뒤에, 분명 '한스의 집'이라고 쓰여 있어야 하는 것이 '힌스의 집'이라고 쓰인 것은 굉장히 당혹스러웠다. 한스가 아닌 힌스라니. 배경팀과 소통 오류라도 있었던 걸까.


아이는 극이 진행되는 내내, 자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을 만큼 조용히 있었다. 심지어 박수를 하거나 웃어야 하거나 무언가 대답을 해야 하는 순간에도 입을 꾹 다문 채 앞만 보고 있었다. 정말 자고 있나 싶어 눈을 보니 눈은 멀뚱히 뜨고 있는 채였다. 진짜 집중해서 보는 모양이다 싶었을 때, 아이의 입이 열렸다. 극이 거의 끝나서 출연자들이 나와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르고 있을 때였다.


"곰돌이 어디 갔어?"


한 시간 내내 숨소리도 없이 뮤지컬을 본 아이는, 뮤지컬의 처음부터 끝까지 곰돌이 따위는 나온 적이 없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듯했다. 나는 곰돌이는 나온 적이 없다고 했으나 아이는 끝까지 곰돌이를 찾았다. 알고 보니 강아지 한스를 아이는 곰돌이로 본 모양이었다.


뮤지컬이 다 끝나고 나서 내가 무슨 내용이었냐고 묻자 아이는 짧게 답했다.


"음식이 나왔어. 맛있게 먹었어."

"음식 안 나왔어. 똥이 나왔잖아."


대체 뭘 봤던 걸까. 


집에 와서 저녁에, 인형으로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 놀이를 했다. 나는 원숭이 인형을 들고 토끼 인형 머리에 똥을 싸는 시늉을 했다. 아이는 토끼 인형으로 원숭이 인형을 때렸다. 그러다 아이는 두 인형을 들고 벽에 올렸다 내렸다 하면서 놀았다. 그것으로 나는 만족하기로 했다. 즐겁게 봤고, 또 그것을 통해 즐겁게 놀면 되는 것이니까. 내용이야 천천히 알게 되겠지.


뮤지컬을 보기 전이었다. 어떤 엄마가 아이들을 자리에 앉히며 말했다.


"여기서 잘 보고 나와. 엄마는 나가 있을게."


나는 놀라서 그쪽을 바라보았다. 굉장히 단순히 뮤지컬이기 때문에 보통 취학 아이들은 유치해서 보지 않는다. 내 눈에 띄는 아이들도 대부분 5살에서 7살 사이의 어린이들이다. 엄마의 말을 듣고 얌전히 자리에 앉는 아이들도 그 또래, 아무리 많아도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밖에 되지 않아 보였다.


물론 육아로 힘들 수도 있다. 내내 아이들에게 시달리다가 나왔을 수도 있지. 혹은 공연비가 부담스러웠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래도, 공연장에 아이들만 두고 나가는 것은 위험해 보였다. 엄마 대신 또 다른 보호자가 있으면 모르겠지만 그것도 아닌 듯했고. 아마도 거의 무슨 일이 없겠지만, 만에 하나 무슨 일이 있다면. 혹은 아이가 화장실에 가고 싶다거나, 공연장이라 시시때때로 꺼지는 불 때문에 무서운 마음이 든다면. (실제로 그 아이는 아니지만 좀 더 어린 아이가 공연 말미에 울음을 터뜨렸다.) 


공연을 다 보고 나서는? 아이는 즐겁게 공연을 보아도 엄마와 접점이 없다. 그냥 재미있게 본 것으로 끝난다. 그것을 통해 엄마와 더 이야기를 나누거나, 혹은 그것과 관련된 놀이를 할 수 없다. 엄마는 그 내용을 모르기 때문이다. 


아이와 함께 있을 수 있는 나이에는, 최대한 함께 있어주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싶다. 어차피 언젠가는 싫어도 아이들이 먼저 부모의 품을 떠날 것이니까. 말도 섞고 싶지 않을 때가 오고, 혼자만의 비밀을 간직할 때가 온다. 그 전까지는, 아이의 옆자리를 지켜주는 것이 부모의 일이 아닐까 한다. 물론 나도 많이 부족하다. 오늘도 책 읽어달라, 이야기 해 달라는 아이의 징징거림을 다 받아주지 못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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