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을 안 받을 수도 없고
즐겨 가는 인터넷 카페에 글이 올라왔다.
요지는 먼저 잘못해 놓고 그것에 대해 지적한 사람에게 되려 화를 내면서 난동을 부린 '이상한 사람'이었다. 댓글로는 대부분 그런 사람은 피해라, 괜히 건드리지 마라, 경찰에 신고하라, 세상에 별꼴을 다 봤다는 글들이 달렸다.
그 글 속의 '이상한 사람'은 글쓴 사람과 아무런 관계도 없는 사람이었다. 그냥 지나가다 만난 사이. 또 만날 수도 있지만 그들이 다시 말을 섞을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 다시는 볼일이 없고, 글쓴 사람도 그저 그냥 화가 나서 투덜거린다고 했다.
아마 그는 곧 그 사건을 잊을 것이고 나중에는 추억속에 떠올려 보는 정도로 기억할 것이다. 트라우마 같은 것도 크게 남지 않을 것이다. 그냥 지나가다 똥 밟았다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나의 오늘은 달랐다.
오늘 내 차에 탄 사람은, 세상 다시 볼 수가 없는 진상 손님이었다. 나는 그에게 안전벨트 하나를 채웠을 뿐이었다. 출발하려는 차 안에서 그는 난동을 부리기 시작했고, 나에게 내리라고 악을 썼다.
뉴스에 보면 가끔 있는 진상 대리 기사 손님, 진상 택시 손님이었다. 그 손님들은 보통 밤늦게 술에 취해서 그런 일을 저지르는 적이 많은데, 오늘 내 손님은 술은 커녕 물도 한 방울 안 마셨다.
안 그래도 초보라서 조심조심 운전하는데, 차 안에서 악을 쓰니 미칠 것 같았다. 정말 어디 박아버릴까, 그래야 저 입을 다물게 할 수 있을까 싶은 이상한 생각마저 들었다.
나는 그와 다시는 볼일이 없지 않다. 나는 그를 또 볼 것이다. 볼 뿐만 아니라 같이 잠도 잔다. 밥도 먹고, 놀고, 심지어 같이 산다. 저 시한폭탄 같은, 별일도 아닌 것에 악을 바락바락 쓰는, 저 이해할 수 없는 동물과 말이다.
보통 사람에게 욕을 듣거나 얻어 맞으면 경찰에 신고를 한다. 그에게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 한다. 어린 아이인 경우에는 부모에게 말해서 해결해 달라고 요청한다. 하지만 그게 안 되는 관계가 있다. 바로 부모 자식 간이다. 자식이 부모를 때려도 부모는 하소연할 데가 없다. 하소연 하면 이런 답이나 듣는다. '부모가 잘못해서 그런다'. 아니, 맞은 것도 부모고 당한 것도 부모인데 원인도 부모에게 있다고 한다. 도대체 부모가 뭘 어쩌라는 것인가.
각종 육아 채널, 프로그램에 보면 부모가 더는 아이에게 강압적으로 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아이가 엇나가면 몇 번이고 말하며 들을 때까지 기다려 주어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그렇게 해도 아이는 폭력적으로 될 때가 있다. 부모를 때리고 악을 쓰면서 난동을 부릴 때가 있다. 조금 크면 검사를 하고 약도 먹겠지만 어린 아이는 그럴수도 없다. 그저 기다리고 또 기다리면서 얻어 맞고 욕을 먹어도 참아야 한다.
얼마 전에 <금쪽 같은 내새끼>에 이지현 씨가 나왔다. 아들이 ADHD라고 했다. 아들은 혀를 내두를 만큼 폭력적이고 거칠었다. 엄마인 이지현 씨를 마구 폭행하고 난동을 부렸다. 그런 방송을 보며 사람들은 쉽게 말했다. 엄마가 너무 물러, 엄마가 잘못해서 저래, 엄마가 저렇게 만든 거야. 내 모든 것을 걸고 말하지만 이지현 씨가 저렇게 만든 것이 아니다. ADHD는 누가 그렇게 만들려고 해서 된 것이 아니다. 물론 이지현 씨의 훈육이 아이에게 적합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이가 그렇게 된 원인이 엄마가 아니다. 그저 이지현 씨의 아들이 훈육하기에 너무나 어려운 아이인 것이다. 그런 아이가 있다. 세상에는 대하기 쉬운 사람이 있고 어려운 사람이 있듯이, 키우기 쉬운 자식이 있고 아닌 자식이 있다.
이지현 씨가 전문가의 조언을 받고 훈육의 방향을 제대로 잡은 것은 좋은 일이다. 어떤 아이는 그런 전문적인 조언이 필요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부모가 잘못해서가 아니다. 물론 부모가 잘못 양육하는 경우는 있다고 생각한다. 지나친 체벌, 위협, 그리고 아이들을 화풀이 대상으로 삼는 경우다. 하지만 요즘 대부분의 부모들은 그러지 않는다. 최선을 다하고자 하지만 늘 벽에 부딪힌다. 제 능력의 한계를 경험하면서 괴로워한다.
아이들은 때로 '세상에서 가장 대하기 어려운 진상 손님'이 된다. 아이의 오늘 아침 차에서 보였던 모습처럼. 나중에 나는 거의 해탈 지경이 되어서, '정신과에 보내야 해. 저건 내가 감당을 못 해.' '집에 가면 소아 정신과를 좀 알아봐야 겠어. 대체 왜 저러는지 검사를 받아야 해.' '그냥 소맥 원샷하고 맛이 간 부장님이라고 생각하자. 자기도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잘 모를거야.' 이런 생각을 하며 운전을 했다. 도착하고 나서 아이는 또 세상 착한 아이가 되어서 어린이집에 갔다. 나는 너무 황당해서 물었다.
"아까 왜 그랬던 거야? 엄마한테 왜 소리 질렀어? 왜 내리라고 했어?"
아이는 순박한 얼굴로 나를 보았다. 민망한 듯 나를 바로 쳐다보지는 못했다. 본인도 생각해 보니 좀 아닌 것 같았으리라.
"모르겠어."
그래, 모르겠구나. 아직 전두엽이 덜 자라서 제정신이 아닌 게지. 알면서도 나도 때로 내 머릿속 전두엽이 상실되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말 그대로 머리 뚜껑이 열리는 것이다.
사랑은 됐고, 그냥 평화롭게 살자. 그냥 그것만이라도 하자. 최소한 동거인에게 예의 정도는 지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