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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나비 Mar 06. 2024

뭔지 모르게 울적한 날

오늘은 아이 친구가 집에 놀러왔다.

그 친구는 지난 11월부터 놀러오고 싶다던 아이였다. 우리 어린이집은 서로의 집에 놀러가기도 하고 놀러오기도 하는 것이 매우 잦은데, 나는 집정리를 잘 못 해서 아이들을 거의 초대하지 못했다. 먼저 초대를 하면 데리고 가거나, 혹은 아이 혼자 보냈다.(이런 경우는 상대 엄마가 우리 아이를 데리고 갔다.) 그런 적도 많지 않았는데, 내가 초대도 안 했는데 초대해 달라고 말하기가 뭐했기 때문이었다.

그 아이는 제가 먼저 놀러가고 싶다고 이야기를 해서 아이 엄마가 나에게 말을 했다. 나는 지금은 바빠서 다음 달에 가능할 것 같다고 했지만 그때도 가능하지가 않았다. 날은 계속 미뤄져서 3월이 되었다. 마침 집정리도 했고, 미뤘던 일도 빨리 처리하고 싶은 마음에 나는 아이를 초대했다.

그것은, 남편이 늦게 오는 날이어서도 그랬다. 남편이 늦게 오는 날, 나는 늦게까지 아이와 단둘이 보내야 하는데, 그것보다는 아이 친구라도 와서 같이 어울려 놀기를 바랐던 것이었다. 거기에 친구 엄마까지 오면 남편 없는 밤을 꽤나 재밌게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아이 친구 엄마는 아이만 보냈다. 여기에서 첫번째로 삐끗한 지점이 있다. 아이 친구 엄마는 둘째가 있었고, 그리고 보통은 어른까지 초대할 경우 집을 공개하는 것을 꺼려하는 경우가 있기에 아이만 보내는 경우도 많이 있다. 하지만 나는 친구 엄마까지 와도 괜찮았고, 그래서 둘째 데리고 와도 좋다고 했지만 그 엄마는 아이만 보내겠다고 했다. 여기에서 첫번째 소통의 오류가 있었던 것 같다. 그 엄마의 성격상 폐끼치는 것을 싫어하는데, 아마도 자신이 가는 것이 폐라고 생각한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오지 않는 것이 더 불편했다. 남편이 없는 날이었기 때문에. 그 지점에서 제대로 소통이 되지 못한 것이 아쉽다.(친구 엄마는 남편도 있는 줄 알았다. 내가 따로 이야기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남편도 없으니 편히 와도 좋다고, 오는 게 나는 더 좋다고 명확하게 의사표현을 했어야 했다.)

두 아이는 오늘 우리집에 놀러온다고 아주 신나는 하루를 보냈다. 두 아이는 우리집에 왔다. 손을 씻고 외투를 벗는 것까지는 수월했다. 하지만 여기서 내 두 번째 실수가 나온다. 나는 일곱 살 정도 되었으면 알아서 둘이 잘 놀 줄 알았다. 그 아이 친구는 성격이 무던한 편이고 내 아들보다 순한 편이기도 하다. 하지만 두 아이는 친하지는 않다. 같은 또래일뿐, 노는 스타일이 전혀 다르다. 처음에 집 탐색을 시작하면서 아이 친구는 로보트 장난감을 발견하였다. 그것은 아이가 어린이집 형아에게 선물로 받은 것인데, 받고 나서 한번도 가지고 놀지 않은 것이다. 아이 친구는 그 로보트를 잘 알았고, 그때부터 로보트만 가지고 놀기 시작했다.

나는 적당히 놀다가 서로 어울려 놀 줄 알았다. 그리고 우리 아이 역시 친구와 놀고 싶어서 계속 장난을 쳤다. 하지만 그 아이는 로보트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그리고 변신과 조립 방법(꽤 까다로운 장난감이었다. 변신도 하고 합체했다가 분리도 되었다가 그러는 장난감이었다.)을 동영상으로 보고 싶다고 했다. 나는 처음에 모든 동영상을 금지했었는데, 장난감 사용법 좀 알고 싶다는데 그것까지 거절하는 건 좀 야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용법만 보고 끌 것이라고 생각하고 보여주었는데, 문제는 이 로보트가 너무 복잡하다보니 동영상을 봐도봐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나치게 빠르게 보여주는 까닭에 나조차도 계속 헤매야 했다.

내가 아이 친구와 로보트 조립법과 합체법을 연구하는 동안, 우리 아들은 심심해서 난리가 났다. 이것저것을 만지다가, 같은 계열의 로보트를 만지다가, 옆에 있는 피리를 삑삑 불어댔다. 그리고 친구에게 계속 장난을 쳤다. 나는 대체 이 사태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우리집에 놀러왔으면 같이 좀 놀았으면 싶은데 그 친구는 장난감에 빠져 있고, 우리 아이는 심심해서 어쩔 줄을 모르고. 급기야 아이는 한 번도 안 하던 행동을 했다. 제 고추를 내놓은 것이다. 나는 너무 놀라서 그런 행동은 하면 안 된다고 한 후에 아들에게 좀 더 관심을 주었다. 그래도 아이는 심심한지 아들 친구가 좋아하는 로보트 검을 계속 빼앗아서 주지 않았다. 내가 비슷한 장난감을 찾아서 주어도 아이는 막무가내로 로보트 검을 빼앗았다.

아이 친구는 제 아빠가 찾으러 오고 나서도 로보트를 완성하는데 열중했고, 결국 완성을 하고 검을 꽂겠다고 하는데 아들이 또 그 검을 빼앗아 달아났다. 아들을 달래어 검을 주고 아이 친구 아빠가 로보트 사진을 찍고 나서야 아이 친구는 제 아빠와 돌아갔다. 그러면서 다음에도 또 와서 로보트를 가지고 놀 것이라고 했다.

아들과 아들 친구는 아주 정답게 헤어졌다. 누가 보면 아주 잘 어울려 논 것처럼. 그래도 어울리는 순간들이 있긴 했다. 잠깐 피자 먹을 때, 그리고 로보트 만들다가 중간중간 피리를 불고 로보트 설명 동영상 찾으면서 대화할 때. 그래도 내 성에는 차지 않았다. 아이 친구가 놀러왔으면, 와서 아이와 잘 놀고 세상 다시 없는 절친이 되는 것이 내 시나리오였는데, 그것은 어른의 생각일 뿐이었던 모양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생각해 보면 아이의 입장에서 친구집에 놀러가는 이유는, 그 친구와 재미있게 놀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친구 집에 있는 장난감을 보기 위해서인 경우가 더 많을 듯하다. 친구를 보려면 어린이집에서도 얼마든지 볼 수 있을 테니까. 장난감을 보러 왔고, 장난감 가지고 잘 놀고 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어른의 입장에 무조건 끼워맞추어 생각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좀 아쉬운 건 사용법 보겠다는 말에 미디어 시청을 허용한 부분인데, 그렇다고 수동적으로 미디어만 본 것이 아니라 사용법 보고 로보트 만든 거니 나쁘다고 볼 수만은 없겠다는 생각도 든다. 다만 우리 아들이 보고 싶다는 영상은 시청하지 못하게 하고 친구만 시청하게 한 것이 좀 형평성이 어긋났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이 친구를 데려와서 집에서 놀게 한 것이 처음이라서 여러가지 시행착오가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고 다음에는 좀 더 만반의 준비를 하면 될 것 같다. 아쉬운 것은 이 이야기를 남편에게 했을 때의 반응이다. 

남편은 내가 못한 것도 없다. 사고 없이 잘 마쳤으면 되었다고 하면서도 '나라면 그렇게 안 했지'라면서 제 이야기를 한참 해대었다. 자신은 아이 친구를 들었다 놨다를 하면서 재미있게 해 주었을 거라며. 남편의 이야기를 들으며, 문득 남편은 내 낮은 자존감에 못 박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 전에는 내가 못났으니까, 잘난 남편(남편의 말끝에는 늘 '내가 잘났다'는 말이 있었다) 의지해서 살면 되겠지라는 생각이 있었다. 그러나 내가 직장에서 힘들 때마다 그는 늘 '나라면 안 그랬지' '나라면 더 잘했을 거야.' '나라면 이런 방법으로 했어.'라는 이야기를 했다. 그는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내 감정과 상황에 몰입하기 보다는 그 상황에서 '자신은' 어떻게 했을까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것으로 제 정신승리를 하는 사람이었다.

남편은 다음에는 자신이 있을 때 아이 친구를 데려오라고 했다. 그래, 그렇게 하면 나는 어떻게 되겠는가. 혼자서는 아이 친구와 아이도 못 보는 사람으로 규정짓게 될 것이다. 내 자존감은 더 낮아지고, 나는 남편에게 더 의존하면서, '나라면 저렇게 못해'라고 스스로를 감옥에 가두게 되겠지. 그것이 진정한 해결일까. 

다음에는, 아이와 그다지 잘 어울리지 않거나, 처음 우리집을 방문하는 경우에는 보호자와 함께 오도록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나보다 남편이 더 잘했을 것이라는 생각도 하지 않으려 한다. 장기하의 말처럼, '그건 니 생각이고' 나는 나 나름의 생각이 있다. 남편은 아이가 고추를 내놓을 정도로 심심했었다는 이야기에, 자신은 그러면 아이 친구의 놀이를 중단시켰을 것이라고 하지만 나는 그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아이는 그 장난감을 좋아했고, 이제 집에 돌아가면 놀 수가 없으니 최선을 다해 집중을 한 것이다. 그 아이가 우리 아이를 돌보러 온 것도 아니지 않은가. 남편은 그럼에도 서로 같이 노는 것을 억지로라도 배워야 한다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건 니 생각이고...'

그래, 나는 오늘 하루를 이렇게 정리하자. 여러가지로 많이 배운 날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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