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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나비 Sep 04. 2024

정답 사회

꼭 인생에 어떤 정답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금쪽 같은 내 새끼>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육아 프로그램 중에서 꽤나 오래 방영 되었던 프로그램이고 지금도 많은 사랑을 받는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나 역시 육아를 하면서 이 프로그램을 통해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대표적인 육아 솔루션 프로그램인 <금쪽 같은 내 새끼>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일단 프로그램에 문제가 있는 아동의 가족이 의뢰를 한다. 제작진은 의뢰한 집 안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그 가정의 꾸며지지 않은 모습을 촬영한다. 그리고 편집된 화면을 스튜디오에 공개한다. 스튜디오에는 패널들과 더불어 유아 교육으로 대중적으로 유명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오은영 박사가 있어서, 그 화면을 보면서 아이의 문제를 진단하고 솔루션을 제공한다. 그리고 그 솔루션을 실행하고 좋은 결과를 얻게 되는 것으로 프로그램은 끝이 난다.


다양한 가정과 다양한 아이들이 출연한 까닭에 그 솔루션은 비단 그들의 솔루션이 아니라 시청자들 가정의 솔루션도 될 수 있다. 아동 이해에 대한 내용이 많이 나오기에 교육기관에 종사하는 이들 중에도 그 프로그램을 애청하는 이들이 많이 있다. 나 역시 우리 아이와 비슷한 케이스의 아이가 나왔을 경우 많은 도움을 받기도 했다. 그리고 나의 어린시절 부모님을 떠올리면서 내가 왜 지금까지 어떤 문제로 고통받는지 생각해 본 적도 있다. 사연 속의 아이가 나와 비슷한 행동을 한 경우가 있어서였다.


<금쪽 같은 내 새끼> 뿐만 아니라 이러한 솔루션 프로그램이 꽤 인기를 끌던 시절이 있었다. <개는 훌륭하다> <골목 식당>등의 프로그램도 대상만 다르지 어떤 문제 상황을 제시하고 전문가가 나와 솔루션을 제시하는 방식은 비슷하다. 식당 운영에 관심이 없으면서도 <골목 식당>을 즐겨 보았던 적도 있었다. 외식 프랜차이즈 전문가인 백종원이 나와서 골목에 있는 작은 식당들의 문제를 진단하고 솔루션을 제안하는 프로그램인데, 비단 식당 운영 노하우뿐만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철학 자체를 배우게 되어서 참 좋았던 프로그램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프로그램에도 나름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금쪽 같은 내 새끼>에 선택적 함묵증 아이가 나왔던 적이 있었다. 선택적 함묵증이라는 것은 어떤 정신적인 이유로 특정 장소에서만 말을 하거나 말을 하지 않는 증상을 말한다. 프로그램에 나왔던 아이와 엄마는 매우 힘들어 하였다. 그러나 오은영 박사의 솔루션 덕분에 아이는 답을 찾았고, 어디에서든지 조금씩 말을 하게 되기 시작했다.


나는 이 내용을 보고 조금 위험하다는 생각을 했다. 까닭은 나 역시 선택적 함묵증 아이를 알기 때문이다. 그 아이는 집에서는 매우 활발한데 밖에서는 조개처럼 입을 다물고 있는 아이였다. 아이는 여러 도움으로 밖에서도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했으나 적어도 말을 하지는 못했다. 1년이 넘게, 아주 느리게 변화하고 있는 아이를 보며 그래도 변화하니 희망이 있다는 생각이 드는 한편 그 부모는 얼마나 조급할까, 하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다.


<금쪽 같은 내 새끼> 같은 프로그램을 보면, 육아도 어떤 솔루션을 받으면 금세 해결이 되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사람을 키워내는 일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엉뚱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거나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면 바로잡아야 하겠지만 방향을 잡는다고 아이가 금세 눈에 띌만한 변화를 보이는 것도 아니다. 방송이니 극적으로 보이게 하기 위해서 편집 등을 통해 최대한 아이가 변화한 쪽으로 우리에게 보이지만 만약 그 비슷한 고통을 겪는 부모들의 경우 솔루션과 달리 우리 아이는 왜 이렇게 더딜까 하는 생각에 절망할 수도 있다.


이런 솔루션 프로그램의 또 하나의 한계는, 답이 아닌 어떤 과정의 중요성이 간과될 수 있다는 것이다. 프로그램은 어떤 문제가 제시되고 나서 전지전능해 보이는 전문가가 나타나 명쾌하게 답을 내리는 것으로 구성이 된다. 하지만 인생에 어떻게 답이 있을 수 있을까. 육아도, 식당 운영도, 그리고 개를 키우는 것조차도 원리는 있으되 사람이 열 명이면 열 명의 방법들이 있을 수 있다. 게다가 그 답을 찾아나가는 과정은 다 다를 수 있다. 물론 그 전문가들이 모든 상황에서 명쾌하게 답을 내리는 것은 아니요, 어쩌면 우리가 모두 알아야 하는 상식적인 원리들을 제시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것을 보는 사람들은 '세상 모든 문제는 전문가가 내리는 답이 있을 수 있다'는 엉뚱한 오해를 하게 될지도 모른다. 


나는 한 아이를 키우는데, 아이가 한 명이고 또 처음 육아를 하다 보니 여러 시행착오에 부딪힐 때가 있다. 아이는 내 생각처럼 자라지 않고, 때로는 내가 상상하지도 못했던 말을 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오은영 박사에게 데리고 가 봐야 하나?"하고 남편에게 고민을 말하기도 한다. 실제로 어떤 전문가를 찾아가서 진단을 받아야 하나 고민을 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에 알았다. 답은 우리가 알고 있고, 그리고 아주 큰 원칙만 지켜 나간다면 함께 고민하는 과정이 바로 답이 될 수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마치 수학 문제지의 정답 찾듯이 '하나의 답'을 적어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만 가지 상황에 맞는 만 가지 답을, 그때그때의 직관과 판단으로 찾아나가는 것이 바로 육아고 삶이라는 깨달음이었다.


고등학교 때 수학 선생님이 수학 공부를 하는 법을 알려 주셨었다. 그 선생님은 매우 실력도 있는 분이면서도 우리에게 굉장히 독특한 질문을 많이 하신 분이었다. 그중에 하나는 '이 공간의 공기가 한쪽으로 몰려서 공기가 없는 쪽의 사람이 질식해 죽을 확률은 얼마나 될까'라는 질문이었다. 이런 식으로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다양한 생각들을 하도록 장려하신 분이었다. 어느 날, 그분이 수학 공부법이라고 하면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수학 공부를 할 땐 답지가 없어야 해. 답지를 떼어 놓고 세 시간이든 네 시간이든 고민을 해. 그게 다 공부야.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처럼 보여도 그게 다 공부가 되는 거야." 나는 실제로 그 공부법대로 하나의 문제를 놓고 야자시간 내내 고민을 했던 적이 있다. 끝까지 답을 알아내지는 못했지만, 그 자세는 그의 말대로 나에게 하나의 공부로 남아서 수능 때에 꽤 좋은 성적을 거두었던 기억이 있다.


인생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한다. 특히 육아는, 관계에 답이 없듯이 아이에 집중하면서 아이의 요구에 대해 그 내밀한 욕망까지 짐작해가며 최선을 다해 상호작용을 해 나가면, 터널에서 아주 먼 곳의 빛이 반짝이듯이 하나씩 '나만의 답'을 내리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전문가가 내려주는 어떤 '전능한 답'이 아닌, 스스로 찾은 나만의 답을 하나씩 알아갈 때에 나와 아이의 시간은 쌓이고 그것은 내 인생의 나만의 답이 되어갈 것이다. 그러니 어떤 하나의 정답을 구하기 전에, 세 시간이고 네 시간이고, 삼 년이고 사 년이고 고민해 볼 것이다. 그것이 어떤 답이든, 전문가라는 전능자가 내려주는 답보다는 나에게 가치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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