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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나비 Jul 31. 2024

지지 마세요

하지만 정말 힘들다.

고등학교 교사를 할 때의 일이다. 우리반에 정말로 통제 불가한 학생이 있었다. 수업 시간에는 계속 돌아다녔고, 지적을 하면 오히려 나에게 화를 냈다. 그 학생 때문에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서 미칠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날도 걱정을 한아름 안고 수업에 들어갔고 대놓고 휴대폰을 보고 있는 그 학생을 보았다. 나는 휴대폰을 끄고 집어 넣으라고 지시했고 그는 갑자기 표효하면서 휴대폰을 집어던지고 제 눈앞에 있는 종이를 갈기갈기 찢었다. 나는 당장 이것들을 다 치우라고 했으나 그는 내 말을 듣지 않았다.


저 아이를 죽일 만큼 때리고 나서 학교를 그만두고 싶다. 그런 생각을 했다. 수업을 하는 둥 마는 둥 마치고 교실로 오는데 부반장 학생이 내 노트북을 들어 주었다. 원래 그런 역할인 건지, 그날 내가 시킨 것인지 그 학생이 자발적으로 하겠다고 한 것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너무 화가 나서 쟤 도대체 왜 저러냐고, 너무 힘들다고 푸념을 했다. 부반장은 무척 성실하고 착한 학생이었는데 그 학생이 그 이야기를 듣고는 말했다.


"선생님, 쟤 중학교 땐 더 심했어요. 지금은 많이 나아진 거예요."

"저게?"

"네. 그러니까 너무 신경쓰지 마세요."


저런 애를 왜 중학교를 졸업시킨 것인가. 나는 고개를 내저으며 교무실에 들어왔다. 내 자리로 돌아왔으나 화가 가라앉지 않았다. 나는 씩씩대다가 지나가던 동료 교사를 붙들었다. 종종 나와 이야기를 나누던 분이었다. 그분에게 내가 조금 전에 겪은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살 수가 없을 것 같아서였다. 내 이야기를 다 들은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리고 한 마디를 하셨다.


"선생님, 지지 마세요."


지지 말라는 건 이기라는 건가. 그 학생을 정말 때리고 그만두어야 하는 걸까. 어차피 그만 두어야 하는 거면 정신 좀 차리게 엄청 세게 때리고 싶다. 하지만 그 뜻일 리가 없잖아. 나는 그 말의 의미를 더 묻지는 못했다. 무언가 대단한 의미를 가진 것 같은데, 내가 알아채지 못한 것 같아서였다. 자리로 돌아간 나는 '지지 마라'는 말을 곱씹었다. 지지 않는 것은 꼭 이기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냥 지지만 말라는 것, 그러니 이길 수도 비길 수도 있다는 것. 어쨌거나 져서는 안 된다는 것.


시간이 흘렀고, 나는 나이를 먹었으나 여전히 예전과 다르지 않게 살고 있었다. 더는 나를 괴롭히는 사람도 없고, 말 안 듣는 학생들도 없으니 살만하다고 여겼다. 매일 지지고 볶는 남편과 아이야 늘 그런 것이고, 다른 것들 때문에 힘들 일은 없었는데, 어린이집에서 나를 미워하는 엄마가 생긴 후로는 또다시 구렁텅이로 빠져버린 것 같았다.


가장 나를 괴롭히는 생각은 이런 것이다. 내가 잘못한 것일까. 내가 조금만 잘했으면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을 것인가. 그 생각에 빠졌을 때는 정말이지 미쳐버릴 것 같다. 그의 앞에서는 나는 정말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 같다. 그가 아무리 나를 무시하고, 내 인사에 '겨우' 답을 하고, 내 톡에 답을 보내지 않아도, 그것은 내 잘못이기에 내가 아무 할 말도 없어야 할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두렵다. 그를 만나는 것이, 무리 중에서 그를 대하는 것이, 그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상상하는 것이, 그의 마음 속의 내가. 그가 차가운 시선을 보내면 내가 소멸되어 버릴 것 같고, 그가 내 질문에 억지로 대답을 하면 나는 구렁텅이에 빠질 것 같다. 그의 태도 하나하나가 나의 삶에 영향을 끼쳐서 내 숨통을 조이고 나를 바다 저 깊은 곳으로 잠기게 만드는 것 같다.


그를 그렇게 만든 것은 내 탓이기에, 나는 어떻게든 형벌을 받아야 하고 그 끝은 아득한 존재의 소멸이 되어야 할 것 같다. 나는 어떻게든 그를 만족시키지 못했고, 그가 나를 미워하게 만들었기에. 나는 완전히 그의 미움 앞에 진 것이다. 그의 미움은 그의 선택인 데도 불구하고 그 선택에 나를 던져버린 것이니까.


실상 그가 나에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사람을 그토록 미워하면 나에게 말 한 마디 해야 하지 않나. 아니면 나와 어떻게든 관계를 풀려는 노력이라도 해야 하지 않나. 어느 것도 하지 않는 그야말로 전형적인 회피형 인간이요 제 인생을 주체적으로 살아가지도 못하는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이다. 그런 사람에게 휘둘릴 필요가 있을까. 그저 모자라고 부족한 인간일 뿐인데, 그런 인간이 종이를 찢던, 나를 미워하던 그의 선택이고 그가 책임질 일이다.


지지 않는다는 것은, 책임을 그에게로 돌리는 일이다. 행위를 한 당사자에게 그 행위의 결과를 돌린다. 그리고 나는 최대한 영향을 받지 않는다. 나는 나를 지킨다. 알면서도 쉽지가 않다. 솔직히 그를 만나는 것조차, 대면하는 것조차 내게는 두려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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