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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나비 Aug 01. 2024

미움을 받는 것의 유익

진정한 자유로움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하면, 이 상태가 당연한 줄 알게 된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그들에게 맞춰주려고 노력하게 된다. 그에게 세상은 핑크빛이고,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들밖에 없고, 그들은 모두 친절하다. 이것은 유아기의 세상이요, 진짜 세상은 아니다.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하는 상태는 실은 비정상적이다. 현실을 왜곡하여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상태에 있는 사람은 자기 자신보다 타인의 시선을 더 의식하며, 자신의 선택보다 타인의 선택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타인은 옳은 사람이므로 틀린 선택을 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보통 이런 사람들은 어린 시절 양육자와의 관계를 잘못 형성한 경우가 많다. 양육자가 자녀의 선택보다도 자신의 선택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도록 강요하여서, 자신을 좋은 사람으로 받아들이게 하고 자녀보다도 자신을 더 우위에 두도록 교육한 것이다.


만약 건강한 양육자에게서 잘 양육을 받았다면, 그는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 역시 모든 사람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이 누리는 관계가 적절히 거리를 유지하면서 존중하는 관계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거리가 좁혀지거나 자신의 영역이 침해당한다고 생각하면 지혜롭게 거리를 다시 유지하거나 관계를 조절하여 자신을 지킨다. 


건강한 양육자에게서 양육을 받은 이를 미워하는 이가 나타났다고 해도, 그는 기분이 나쁠지언정 그것 때문에 자신의 자존감이 깎여진다거나 존재가 소멸되는 지독한 통증을 느끼지는 않는다. 그 자신을 미워하는 이가 자신과 거리 유지를 못 했거나, 혹은 자신을 존중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자신에게서 미움의 원인이 없기 때문에 그는 그 관계를 적절히 끊어내거나 조절한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못했다. 처음 미움을 받았을 때, 내게 든 생각은 "내가 그렇게 잘못을 저질렀나" 하는 생각이었다. 내가 그에게 한 말로 그가 상처를 받았다는 것은 알지만, 나는 그것에 대해 용서를 구했고 그 역시 나에게 사과를 했기 때문이다. 내가 한 말이 그렇게 용서를 못 할 것이었나, 그 말을 괜히 했나, 하는 고민들로 숱한 밤을 괴로움에 빠져 지내야 했다. 이것이 전형적인, 최초의 양육자와 잘못된 관계를 맺은 이가 하는 선택이다. 이런 사람은 미움을 받으면 자신이 죽어야 하나, 하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하게 된다. 미움의 원인이 미워하는 대상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미워하는 그 주체에게 있다는 것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통의 사람은, 대부분의 에너지를 자신에게 쏟지 그것을 타인을 미워하는 데 쏟지 않는다. 미워한다고 해도 그것을 타인에게 함부로 드러내지는 않는다. 솔직히 미워하는 것과 그 미움을 드러내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기도 하다. 많은 직장인들이 자신의 직장상사를 미워하지만 그 미움을 드러내지는 못한다. 상사는 저보다 힘이 있는, 밉보이면 자신이 고생을 할 대상이기 때문이다. 미움을 드러내는 것은, 그 상대를 진짜로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만만히 보기 때문이다. 즉 내가 이 미움을 드러내도 내가 전혀 스크래치가 없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미움 받는 것이, 감정의 문제가 아닌 '거리 유지의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되면 나는 더는 미움을 받는 것에 대해서 자신의 탓을 하지 않게 된다. 그것은 타인이 나와 거리 유지를 못 한 것이요, 나아가서는 나를 존중하지 않은 것이다. 실상 내가 밉보일 행동을 했더라도 내가 그를 좌지우지할 힘이 있다면 그는 나를 감히 미워하지 못한다. 나를 존중하지 않는 그가 분명 잘못하고 있는 것인데, 그것에 대해 내가 책임을 느끼고 죄책감을 느낄 아무런 이유가 없다. 내가 그런 것을 느끼고 있다면, 그것은 내 탓이다. 그의 미움 탓이 아니라, 내가 최초 양육자와의 잘못된 관계 때문에 빠지게 된 늪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움 받는 사람은 우선 스스로를 건강하게 세워야 한다. 나 자신이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보통 타인을 큰 이유 없이 미워하는 이는 그 자신에게 심리적인 문제가 있을 확률이 높다. 나르시시스트이거나, 의존 성향이거나, 회피 성향이거나 하는 등으로 그 역시 최초 양육자와의 잘못된 관계 때문에 자아상이 지나치게 왜곡되어 있어 그것을 벗어나기 위해 나보다 못한 사람으로 보이는 이를 미워함으로써, 자신이 그보다 낫다는 확신을 얻으려고 하는 것이다.


관계를 해결하겠다고 나를 미워하는 사람에게 다시 사과를 하는 것은 그러므로 피해야 할 행동이다. 그것은 그가 나를 더 깔보게 만들기 때문이다. '내가 미워했더니 이렇게 내 마음대로 움직이는군. 이 녀석도 내가 아니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녀석이야.' 이렇게 생각한다. 거리 유지를 못 하는 상대에게 그 거리를 더 좁혀주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러므로 사과를 하는 대신, 나는 그 미움에서 자유해져야 한다. 니가 미워하든 말든, 나는 아무런 상관이 없으며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는다. 나는 내 나름의 삶을 살 것이고 내 삶은 내가 세워갈 것이다. 그런 결심을 하면서 그에게서 멀어져야 한다. 물리적으로 멀어지는 것이 가장 좋지만 그것이 어려운 상황이라면 심리적으로라도 멀어져야 한다. 억지로 그와 가까워지거나 말 한 마디 붙이려고 노력하고, 만약 그가 나를 무시하고 싸늘하게 대하면 또 마음 무너지고 하는 짓은 절대 하지 말아야 할 짓이다.(다 내가 한 잣이다...)


그러므로 미워하는 사람이 생기면 나에게도 유익이 있는데, 그 유익이란 내가 더는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주변 사람들과 거리 유지를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요즘 내가 느끼는 것은 미움 받기 전보다 받은 후에 마음이 훨씬 건강해졌다는 것이다. 가정은 화목해졌고, 모르는 사람이 있는 자리에 가서도 위축되지 않으며, 사람들 눈치를 보는 것도 많이 사라졌다. 저 사람들은 내게 큰 관심이 없으며, 내가 나 스스로를 세워야 겠다고 결심하자 마음은 안정되었고 세상은 더 풍요로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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