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아팠다
아이에게 옮은 폐렴을 꼬박 2주를 앓았다. 열이 떨어지고도 어지럼증과 두통이 이어져서 제대로 활동을 하기가 어려웠다. 그 동안에 모든 집안일을 담당한 사람은 남편이었다. 남편도 컨디션이 그다지 좋지는 못했고 자주 기침을 했으나 다행히 열이 나지는 않았다. 병에 걸리지 않아도 몸이 약해서 조금만 활동해도 쓰러지곤 했던 내가 전혀 움직이지 못하자, 남편은 제 몸을 돌볼 겨를 없이 아이를 위해서 최선을 다 했다. 그리고 10월 첫번째 주 두 번째 휴일이 있는 날, 남편은 심한 기침으로 더는 활동을 하기 어려운 상태가 되었다.
나 역시 완전히 회복이 된 것은 아니었다. 어지럼증은 여전히 있었고, 기침도 완전히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도 정말로 심하게 기침을 해대는 남편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아침을 먹고 나서 나는 아이와 함께 집을 나섰다. 아이가 집안에만 있기 힘들어 했고, 남편은 아팠고, 그러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이를 데리고 나들이를 가는 것뿐이었다. 지하철을 타고 역 몇 개를 가면 아이와 내가 종종 가는 보드게임장과 노래방 등등이 있는 곳이 나온다. 나는 아이와 함께 보드게임을 하기로 하고 지하철을 탔다.
보드게임장에 도착한 나와 아이는 당황했다. 아침을 먹고 나온 것이 화근이었나. 오픈까지 한 시간 정도가 남아 있었다. 문이 굳게 닫힌 보드게임장을 나오니 갈 곳이 없었다. 돌아다니는데 아이는 자꾸 "어디로 가?" "지금 어디로 가는 거야?"라고 꼬치꼬치 물었다. 나는 일단 문이 닫았으니 다른 곳에 가 보자고, 어디로 가는지는 나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인근에 슬라임 키즈카페가 있어서 가 보았더니 예약제라며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하지 싶었을 때 아이가 노래방에 가자고 했다.
노래방은 처음부터 아이가 가자고 한 곳이기도 했으나 나는 별로 가고 싶지 않았다. 노래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시끄러운 음악이 나오는 것은 더 싫은 데다가 나는 아직 기침이 나고 목도 아팠다. 그렇다고 노래방에 가서 내내 아이만 노래하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노래방은 다음에 가자고 미뤄두었다. 그런데 한 시간이 남았고 시간은 가지 않는데 슬라임 카페까지 문을 닫았으니 다른 갈 곳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노래방에 갔더니 8000원 이하는 현금이 안 되는 무인노래방이었다. 그 시간에 문을 연 노래방도 몇 개 없었고 다른 곳을 찾기도 힘들어서 8000원에 16곡을 선택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정작 들어왔으나 나도 아이도 부를 노래가 없었다. 처음에 아이가 좋아하는 노래를 선택했으나 거의 부르지 않은 까닭에 20점 정도가 나왔다. 나는 노래방에 20점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고 경악했다. 그러나 그 후에 몇 번 0점을 맞고 난 후 점수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고 아이에게 설명했다. 아이가 나도 부르라길래 곰세마리, 아기 상어 등등을 선택해서 불렀다. 곡은 짧았지만 정말이지 16곡은 너무 많았다. 캐롤과 동요, 그리고 내가 아는 몇 개의 가요까지 부르고 나서 겨우 노래방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노래방에서 한 시간 여를 때워서 바로 보드게임장으로 갔다. 처음 했던 게임은 <우봉고>라는 퍼즐 게임이었는데, 작은 조각을 주고 퍼즐에 맞추는 게임으로 공간지각능력에 상당히 도움이 될 것 같은 게임이었다. 아이는 몇 번은 포기하기도 했으나 또 몇 번은 신기하게 나보다 먼저 맞추었다. 이건 집에 사 두어야 겠다고 혼자 생각하면서 두 번째 게임을 선택했다. 두 번째 세 번째 게임은 아이가 선택했는데 별로 기억에도 남지 않고 그다지 재미도 없었다. 게임을 마치고 나와서 물어보니 아이는 의외로 두 번째 게임이 재미있었다고 했다. 두 번째 게임은 움직이는 벌레를 칸에 맞추어 놓고 칸을 움직여 제쪽으로 오게 하는 것이었는데, 벌레가 드드드드 움직이는 것이 너무 징그럽고 싫어서 나는 매우 별로였다. 아무리 재미있어도 저 게임은 사지 말아야 겠다 생각했었다.
보드게임을 마치고 나서는 피자를 먹으러 갔다. 아이와 함께 이곳에 놀러오면 항상 가는 피자집이었다. 1인용 작은 피자가 파는데 아이는 항상 치즈피자를 먹었다. 나는 치즈피자 하나를 주문하고 떡볶이 하나를 더 주문했다. 치즈피자만 먹으면 너무 느끼해서 같이 주문한 것이었다. 피자 한 조각을 남겨서 포장을 해서 나오니 이미 오후였다.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오는데, 별일이 없을거라 여겼는데 한 가지 이벤트가 발생했다.
집앞 전철역에서 내려서 아이와 함께 개찰구를 통과했을 때였다. 역무원으로 보이는 이가 나한테 와서 아이가 초등학교 들어간 것이 아니냐고, 몇 살이냐고 물었다. 내가"일곱 살이요."라고 답했더니 일곱 살은 무임승차가 안 된다고 했다. 나는 조금 황당해 하면서 "학교 아직 안 들어갔어요."라고 말했다. 그러고 나서 "요즘 나이로는 일곱 살이 아니라 여섯 살이네요."(나중에 생각해 보니 다섯 살이 맞았다)라고 답했다. 그랬더니 역무원 아저씨가 그냥 "아, 그래요. 몇 살부터 무임승차가 아니니 유의하세요."라고 하고 돌려보낼 것을, 그러면 왜 일곱살이냐고 했냐고 꼬투리를 잡았다. 마치 자신이 나한테 뭐라고 한 것은, 그 말 때문이 아니었냐고 책망하는 듯한 태도였다. 일곱 살이 아닌 아이를 잡아서 무안했었나. 그러면 그냥 보내면 될 것을 왜 굳이 안 해도 될 말을 할까 싶어 나는 그냥 가만히 역무원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아이도 옆에 있는데 실랑이를 해서는 안 될 것 같아서였다. 역무원 아저씨는 또 한참을 왜 일곱 살이냐고 했냐고 하더니 생일이 지났느냐 안 지났느냐를 따지고는 생일 지나면 표를 끊어야 한다고 했다. 나는 "아, 그래요. 알겠습니다."하고 인사를 하고 나왔다.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이러저러한 일들이 있었고, 몸도 완전히 회복이 안 되고 해서 집에 온 나는 늘어져 버리고 말았다. 침대에 누웠는데 아이 아빠는 우리 놀러나간 사이에 잠이나 자지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는지 소파에 있다가 아이가 들어오자 방으로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그 모습이 좀 괘씸하게 얄미웠다. 나는 아픈 자신을 위해서 애 데리고 놀러나갔고, 솔직히 몸이 아직 힘든 와중에도 돌아다니고 게임하고 그랬는데 자기는 그 사이에 좀 쉬고 회복을 해야지 텔레비전 보고 놀고 있었나 싶어서였다. 아이는 남편이 그러니 내 옆에서만 놀았고 나는 누워서 아이랑 설렁설렁 이야기도 하고 휴대폰도 보고 하다가 느적느적 저녁을 먹고 도로 누웠다.
잠을 자려고 누웠는데 아이가 또 내 옆으로 왔다. 왜 이렇게 귀찮을까. 좀 떨어져 있고 싶다. 아이가 사랑스러운 것과는 별개로 그런 마음이 자꾸 들었다. 이런 마음을 아이도 알면 상처받을 텐데 싶은 반면에 나도 좀 자유롭게 쉬고 싶다는 생각도 계속 들어서, 나는 내 마음의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아이가 내 몸을 자꾸 툭툭 치자 그 마음이 증폭되었다. "엄마 자꾸 치지 마. 팔 이쪽으로 해서 엄마를 치면 불편해." 이야기를 하자 아이가 토라져서는 거실에서 자겠다고 했다. 그러다가 또 결국 내 옆에 누웠다. 자는 아이를 보니 뒤늦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자다 보면 툭툭 칠 수도 있는 건데, 내 말로 거절감을 느끼지 않았을까. 내가 어렸을 적, 엄마가 나를 귀찮아하고 혼자 좀 놀라고 하는 말에 상처 받았었는데 아이도 나와 똑같은 것을 느끼는 것은 아닐까. 안쓰럽고 짠한 마음이 드는 것과 동시에, 나라에서 휴일 좀 그만 만들었으면 좋겠고 특히 이런 징검다리 휴일은 최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와 노는 시간이 한없이 좋은 시간일 수는 없을까. 나는 왜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꼭 일하는 시간인 것처럼 느껴질까. 법정 근무시간을 넘기면 더는 아이와 함께 하기가 힘든 것은 왜일까. 정작 아이는 나를 매우 사랑하는데, 좋아서 옆에 꼭 붙어 있는데, 그런 아이를 귀찮아하는 내가 왜 이러나 싶고 마음이 아프다. 아이를 대하는 내 마음은 어떤 것일까. 내게 아이는 어떤 존재이길래 나는 이런 마음이 드는 걸까. 이것은 아이의 책임이 아니라 내 책임이다. 내가 아이를 바라보는 시각은, 내 삶에서 나온 것이니까. 내 삶을 더 깊이 바라보고, 아이에 대해서 투명한 마음을 품고 싶다. 아이가 나를 사랑하듯이, 나도 그저 있는 그대로의 아이를 받아들이고 싶다. 내가 받아보지 못한 사랑을 아이에게는 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