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므니 Aug 12. 2023

친자확인의 시간

요즘 같은 시대에 선행을 하지 않고 겨우 한 학기 예습만을 하고 있는 우리 집으로서는 방학이 그야말로 전쟁터이다. 아, 한 학기 예습은 다른 과목에 해당하지 않고 오직 수학에만 해당된다. 다른 과목이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할 시간이 없어서 그렇다. 수학은 초등학교 2학년까지는 설렁설렁 재미있게 대충 그까짓 거 할 수 있는 과목일 수도 있지만 3학년 때부터는 달라진다. 곱셈과 나눗셈의 콜라보로 이루어지면서 "이걸 왜 몰라!" 하며 다른 집 아이들에게는 유독 친절하고 상냥한 아줌마이지만, 집에서는 목소리가 커지는 친엄마임에 틀림없는 친자확인의 시간이 펼쳐진다.

엄마 때문에 공부하지만 엄마 때문에 공부하기가 싫어지고 더불어 수학까지 싫어질까 봐 덜컥 겁이 나긴 한다. 그럼에도 어쩌겠는가. 해야지. 암, 해야지 말고.



여름 방학은 겨울 방학보다 짧은 데다가 여러 레저 활동도 양념처럼 첨가되니 더더욱 공부할 시간은 줄어든다. 나에게는 설상가상이지만 애들에게는 일거양득인지 이번 방학에는 영어캠프가 두 차례나 있어서 그만큼 공부할 수 있는 절대적 시간이 줄어들었다. 그리고 1학기 문제집도 미처 끝내지 못한 것이 있어 뒤처리를 못한 찝찝함이 남아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하기 싫어 병이 도진 둘째와 그 병의 전염성이 첫째에게 까지 옮아갈세라 전전긍긍하고 있는 엄마 사람인 나는 아이들 눈치도 살폈다가 고성도 냈다가 하루에 몇 명의 인격을 꺼내서 살아가고 있는지 모를 지경에 올랐다.

남들은 이런 지경에 어떻게 1년, 2년 선행을 척척 하고 앞서 나가는지 매우 의문스럽고 잠깐이라도 저기요, 댁의 아이는 어떻습니까?라고 묻고 싶지만 그런 영업기밀을 말해 줄 이는 있을까 싶다. 나 또한 누군가가 물어본다면 말해 줄 것도 없을뿐더러 그냥 다 똑같죠. 호호호 로 일관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이번 방학 때도 우선은 야심 차게 개념서 한 권 씩을 준비해서 아이들 앞에 펼쳤다. 얘들아, 방학 때 이거 엄마랑 열심히 한 번 해 보자! 하며 친절하고 열정적으로 시작은 했다. 방학이 끝나가는 지금,

" 이럴 거면 공부하지 마! "(진짜 안 한다고 할까 봐 약간 긴장)

라는 큰소리와 함께 아이를 을러도 보고, 달래도 보며 빠득빠득 가는 시간을 붙잡으며 공부를 봐준다. 아직 수학학원은 다니지 않고 있어, 그저 집에서 문제집으로 예습만 해 갈 뿐인데 서서히 외주를 줘야 하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는가도 싶다.


큰 아이는 비교적 순항 중이라, 둘째와 엄마의 실랑이 속에서 눈치를 보며 수학 문제를 부여잡고 있는 것이 보인다. 요즘 많이 이야기되고 있는 공부 정서를 망칠까 봐 걱정이 되어 감정을 추스르고 악문 이를 들키지 않으며 속으로 주문 외듯 외워 본다.

'옆집 애다. 옆집 애다. 잠시 다니러 온 손님이다. 손님이다. '

하며 조금은 마음을 진정시키고 다시 아이를 달래서 연필을 잡게 했다. 아이를 직접 가르치지 말고 엄마 선생님이 되지 말라는 말을 주위에서 많이 듣긴 했다. 하지만 아직은 수학학원에 보내지 않고 싶은 엄마 마음에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을 가지고 있긴 하다.



더운 여름 에어컨 밑에서도 더워지는 집 공부 현장에서 다시 되뇌어 본다.

" 나만 잘하면 돼. "

아이들의 공부를 봐준다는 것은 필시 도를 닦는 것과 다름없어서 수행하듯 나를 다스려 가야 하는 여정이다.

수행이 끝나면 어느 경지에 도달할 수 있으려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