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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므니 Aug 16. 2023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제주는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손꼽히는 관광지 중의 하나다. 제주살이 열풍이 있었고, 제주이민이라는 말도 생겨났으며 제주에 대해 한 번쯤은 푸른 여행을 꿈꾸는 곳이니까 말이다.


이런 제주에 살며, 매일같이 수평선 아래 넘실대는 바다와 환상적인 일몰을 보며, 봉긋봉긋 솟아오른 오름과 구름 위에 있는 한라산을 보며 이런 호사가 없다고 느끼지만 너무 좋은 것도 한두 번이라는 배부른 투정과 함께 육지행을 꿈꾼다.


처음 제주에 왔을 때, '육지'에서 왔냐고 또는 누군가 어디 간다고 할 때 '육지'가냐고 말할 때 일상에서 잘 쓰지 않는 단어라 생소하고 재미있었다. 그러면 웃음을 삼키는 나에게 스스로 질문하며 육지 말고 대체할 단어가 뭘까. 생각하곤 했다. '뭍'이라고 해야 하냐면서. 제주의 풍광만큼 육지라는 단어도 익숙해져 이제 너무 재미있다고 웃는 육지사람을 향해 뭐가 우습지?라고 생각하는 도민이 되었다.


일상생활에서 육지말과 제주어의 그 어느 중간에서 정체 모를 언어를 구사하며, 도민들에게는 어색한 사투리다. 육지인들에게는 제주사람 다 됐네를 동시에 듣는 나는 아직도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는지도 모른다.



제주도민들은 휴가를  안 가도 되겠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휴가는 모름지기 집을 떠나 물 설고 낯 설은 곳에 가서 자기 돈 쓰며 고생하는 거라 도민도 휴가를 간다. 비행기를 타든, 배를 타든 어디론가 제주'도'를 벗어난다.


제주에서 벗어나는 걸로 항상 비행기를 택했는데, 처음으로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육지로 간다. 긴 여정을 위해 꼭두새벽부터 일어났고 분명 고된 일정이라 여겨져 이미 체력이 현저하게 바닥을 치는 나에게 두렵기도 한 휴가이지만 그럼에도 새로움을 향해 일상을 벗어나는 일은 언박싱하지 않은 택배처럼 흥분감을 선사해 준다.


아침은 제주, 점심은 전라도 해남, 저녁은 부여에서 먹는 일정으로 시작된 여행 첫날은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익숙함을 넘어 낯섦과 설렘으로 넘어가는 길목이다.


새 신발을 신고 처음 나갈 때 발을 굽혀 신발자국을 조심스레 남길 때, 새 책을 받아 첫 장을 곱게 접어 넘길 때처럼 여행은 경험하지 못한 새것과 경험한 것 가운데 새 길을 낸다.


이번 여행은 우리 가족에게 어떠한 길을 선사할까.

낯설음의 기운이 기분 좋게 우리를 감싸길.

여행의 절반은 준비요, 나머지 절반 중의 상당 부분이 이동인데 여독이 쌓이며 우리를 삼키지 않길.

그래서 일상을 새롭게 살아낼 수 있는 힘을 받길.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가는 도중 헤드뱅잉을 거쳐 뻐근해진 목을 들춰 세우며 여행의 묘미를 찾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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