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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므니 Aug 17. 2023

부족함 속에서 느끼는 묘미

일찌감치 여행을 계획했지만, 일상에 치여 예전만큼 일정을 치밀하게 계획하지 못했다.

그것에는 믿고 있던 남편에게 비롯된 것이라 변명해 보지만, 나에게도 어느 부분 책임이 있다. 여행 전 같이 장소와 날짜를 정한 뒤, 서로 원하는 사항을 이야기하면 남편은 상세히 알아보고 예산과 시간, 플랜 B까지 짜서 파일을 건네준다. 그러면 나는 컨펌해야 할 사람처럼 살펴본 뒤 추가 사항을 요청하고 남편은 다시 수정해서 보내준다. 그러면 우리의 여행 계획은 끝인데, 이번에는 남편이 바빴던 탓에 미리 준비를 못 한 것을 여행 며칠 전에 알게 됐다. 남편이 파일을 왜 이리 안 주나 기다리고 있었는데, 아직 준비를 못 했다는 것이 아닌가.



발등에 불이 떨어졌으니 나라도 나서야 한다. 부랴부랴 이리저리 알아보면서 일정은 미리 책을 읽은 아이에게 한 번 짜라고 해 보았다. 책에서 안내된 동선을 참고하여 아이가 가고 싶은 곳을 중심으로 선정하며 알아본다. 그 사이 남편도 합세해서 거리와 동선을 고려하여 아이가 짠 일정을 수정해 본다. 유튜브로 맛집도 검색하고 갈만한 식당을 알아보는 것은 내 몫이다.


그래서 어찌 저찌 여행 계획이 완성되었다. 여정 중에 이동길목에 있는 명소도 남편이 알아봐서 중간에 들르기로 했고, 그럴듯하게 우리 만의 여행의 밑그림에 채색이 들어갔다.



처음에는 남편이 일정을 짜놓지 않아서, 나도 미리 점검을 못해서 어떡하나 발만 동동 굴렀다. 부족하니 그 틈을 비집고 새로운 대안들이 솟아났다. 아이가 조력자가 되어 주었고, 말로만 하는 아이 주도적 학습(여행도 학습이라 우겨본다.)도 할 수 있게 되었다.

딱 딱 자로 잰 듯 내 손 안에서 맞아떨어지진 않아도 믿고 맡기며 위임하니 새로운 그림이 탄생하는 것을 봤다.


예상하고 계획하는 것을 즐겨하고 그렇지 않으면 불안해하는 내가 색다른 맛을 보고 있다.

이렇게 해도 되는구나, 큰 일 나지 않구나 생각하며 내 기준으로 세웠던 잣대를 내려놓아 본다.



문득 인생도 이와 같다는 생각을 해 본다. 정해진 수순을 따라 예상되는 인생을 살며 남들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학창 시절까지 엇비슷했는데 어느 순간 사람마다 인생의 시계는 다르게 흘러간다. 나만의 시계를 가지고 인생을 산다. 흘러가는 시간은 같을지라도 그 안에 그려지는 그림과 색깔은 다르다. 비교하지 말자해도 비교하며 잣대를 가지고 내 인생을 이리저리 조정해보려 했던 것은 아닌지.


부족함 속에 채워지고 더해지며 완성되어 가는 모습을 보며 모자라도 그것에 만족해야지. 더 나아지고 보완될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을 가져야지. 되뇌며 배워가는 묘미를 맛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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