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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므니 Aug 22. 2023

여행이라는 섬

섬에 살고 있어서 섬이 주는 독립적인 위치와 때로는 고립감을 잘 알고 있다. 기후상황에 따라 섬에 갇히는 듯한 기분이 들 때도, 딴 세계에 있는 듯 느껴지는 쾌청함도 있으니 섬이라는 지리적인 위치가 주는 정체성이 상당하다. 언어적으로도 '섬'이라는 글자 그대로의 모습의 질감과 소리 내어 발음할 때 느껴지는 한 음절의 어감도 상당히 독립적이다.


여행을 한다는 것은 섬에 들어가서 고립되고 때로는 갇히며 한정된 상황 속으로 뛰어드는 것 같기도 하다. 잘 거나 계획하지 못해도 여행이라는 물리적인 공간과 그 속에서의 시간은 경험하지 않았던 무인도와 같은 섬이라고도 해야 할까.



여행을 준비하며, 계획하며 설렜고 행복했다. 일상에 치여 현실세계에 매몰되지 않으려고 발버둥 칠 때 여행을 생각하면 뿅 하고 튜브 밖으로 몸을 빼내어 일상 속에 파묻히지 않을 수 있었다.

여행을 가면 이렇게 할 거야. 저렇게 할 거야 하며 설렘 가득 꿈을 꾸면서도, 약간은 현실감각을 주입해 풍선을 날아가지 못하게 묶어 두긴 했다. 하지만 여행이라는 꿈을 주입한 풍선은 어느새 여행의 목적지이기도 하고 그 자체이기도 한 섬에 다가가 있었다.



남들과는 다르게 주말에 더 바쁘고 긴장되며 일이 많은 우리 가족이기에, 금요일부터 가는 주말여행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했다. 아이들이 미취학시기일 때는 월요일이 휴일인 남편에 맞춰 나도 일을 하지 않거나, 프리랜서로 월요일을 비워 당일치기 나들이를 가곤 했으나 이제는 불가능한 일이 되어 버렸다.


그랬기에 여름휴가는 오매불망 애타게 기다리던 가족여행의 시간이었다. 시공간을 초월해 낯선 곳과 낯선 시간 대에 떨어진 우리는 여행이라는 낯선 섬에 도착해서 고립된 듯 아닌 듯 갇힌 것을 즐기며 시간을 보냈다.


6박 7일의 기간 동안 2박씩 다른 곳에 머물며 다양한 체험을 하고 보고 즐기고 맛봤다. 봉긋하고 아담한 오름들과는 다른 우람한 산들을 보며 경이로움을 느꼈고, 연푸른 논들을 바라보며 논뷰에 눈이 황홀했다. 마치 육지에서 지냈던 적이 없었던 사람들처럼 육지의 풍광들을 이국적으로 느끼며 감탄했고 대교를 건너면 강 위나 바다 위를 지나고 있다며 박수를 치곤 했다. 남편은 베트남의 아름다운 풍경을 떠올리며 우리나라도 너무 아름답다 했고 고속도로를 지나며 톨게이트와 휴게소까지 신기해하는 제주 촌 가족이었다.



이제는 여행이라는 섬에서 그만 헤엄쳐 나와 다시 우리가 사는 진짜 섬으로 간다. 시공간을 초월해 오직 우리 가족이 함께 꾼 꿈의 섬을 빠져나와 우리 삶의 터전인 섬으로 간다.

언제 다녀왔냐는 듯이 바람이 빠지고 날아가 버린 풍선처럼 여행의 기억이 저편에 사라지고 현실감각으로만 충만해질 때 다시 여행이라는 섬이 손짓해 오며 우리를 초대해 줄거라 믿는다.


원래 여행을 오래 하면 집에 가고 싶고, 집에만 있다 보면 갑갑함에 소리 지르며 여행을 가고 싶다고 하는 법이다. 진리 같은 이 사실을 떠올리며 집으로 여행하듯, 다시 떠난다.

우리의 푸른 섬 제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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