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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므니 Aug 27. 2023

세일이 주는 유혹

"띠리리리릿"

폰에 문자가 오는 소리다. 동네 마트들에서 금요일이면 앞다투어 주말세일 문자를 보낸다. 내용을 하나하나 뜯어보면 지난주에도 비슷했던 가격인데 '한정', '파격'이란 말을 내세워 들여다보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만드는 문자들이다. 그리고 마트마다 가격이 엇비슷해서 어딜 가도 비슷한 가격에 구입가능한 저렴한 품목들도 보인다. 그중에서도 유독 눈길을 끄는 문자는 1일 세일 문자이다. 하루만 이 가격으로 판매하며 세일 전 가격과 할인율까지 친절하게 알려주니 마트로 출동하고 싶은 마음이 발동한다.

이 상품이 소위 말하는 미끼상품으로 마트에 발걸음을 하게 해서 다른 물품까지 같이 구입하게 할 심산이라는 것을 잘 안다. 원래 다 알고도 속아 넘어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홈쇼핑에서 이 구성, 이 가격이 마지막이라는 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동하고, 손이 바빠지는 것처럼 상술이 사람을 꾀는 것이 한두 번이 아님을 알고도 또 넘어간다.


" 어디 보자. 오늘은 유기농 우유를 할인하네?

어머! 내가 좋아하는 김부각 스낵도 할인하잖아!

이건 사야 하는데? "


아이들 하교 시간과 학원 라이드 시간을 계산해서 마트 갈 시간을 비워 본다. 그리고 냉장고를 열어 스캔하듯 살펴보며 없는 품목을 대강 메모해 본다. 그리고 마트로 가서 세일 품목과 비세일품목까지 야무지게 담아 온다. 이건 내가 좋아하는 간식이니 사야 하고, 저건 아이들 거, 요건 남편 거 예상에 없던 항목까지 하나하나 담으면서 역시나 배보다 배꼽이 큰 상황에 맞닥뜨린다. 세일 문자가 쏘아 올린 공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는 순간이다. 가져간 장바구니에 가득 담아 나오면서 나름 지혜로운 소비를 했다고 위안하지만 그래도 장바구니에 예정에 없던 품목들이 많음은 부인할 수 없다.


삶에서 세일과 같이 달콤하게 주는 유혹이 무엇이 있을지 생각해 보았다. 놓치면 안 될 것 같고, 지금 하지 않으면 안 될 어떠한 일들, 감정표현들, 나의 권리 찾기, 여가 즐기기 등 하나같이 필요하고 기회가 된다면 하지 않으면 큰일이 날 것 같다. 하지만 지나고 나서 조금만 참았다면 조금만 기다리고 지켜봤다면 하고 아쉬움이 남을 때가 종종 있다.


흑역사긴 하지만 대학생 때, 헤어진 남자 친구에게 다시 만나보자고 애원했던 그때, 지금이 다시 올 수 없는 기회인 것 같아서 매달렸지만 결과는 부끄러웠다. 세일도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은 조급함과 다시 올 수 없는 기회라고 부추긴다. 하지만 그것이 절대 아닌 것을 안다. 매번 당해오고 속았지만 매주 세일문자를 접할 때면 분주해지는 마음은 바람 앞에 흔들리고야 마는 갈대 같다.


언제쯤 초연하게 흔들리지 않고 나의 삶을 살 수 있을까. 기회와 유혹을 구분하여 지혜롭게 선택할 수 있을까. 아이에게나 남편에게 분이 나는 그대로 표현하지 않고 한 템포 늦추며 인자하고 지혜로운 엄마와 아내가 될 수 있을까. 한 템포 늦추면 되는데, 그걸 늦추지 못해 오늘도 느끼는 감정 그대로 상황에 즉각 대응하여 몸과 마음을 반응해 버리는 나라는 사람을 본다.


마음은 날마다 연습하지만 실전에는 늘 약하다.

다짐은 늘 하지만 행동은 그대로다.


위기 상황이나 급박한 상황일 때 사람의 본모습이 드러난다고 한다. 꾸밀 수 없고, 온전히 나의 모습이 드러나는 때, 내가 어떠한 사람이 되고 싶은지 생각해 보면서 그 모습을 체화시켜 오롯이 그 모습 그대로 드러나길 바라본다. 오늘은 세일문자에서 삶을 보고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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