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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므니 Aug 26. 2023

산책 한 번 할래요?

날이 너무 더울 때를 피해서 남편과 나는 시간이 있으면 종종 산책을 한다. 주말이어서 아이들이 있으면 아이들과 함께 하기도 하지만 주로 둘이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길을 걷는다. 산책코스는 우리 집을 기준으로 바다 쪽으로 내려가 동네 한 바퀴를 서쪽으로 크게 돌며 일몰이 아름다운 정자를 콕 찍고 오솔길을 지나 작은 못을 건너 집으로 오는 코스이다.

일몰 명소인 우리동네 닭머르 해안

약 30분 정도 소요되며, 미로처럼 되어 있는 골목길을 조금 다르게 선택해서 지나면 시간은 조금 늘어나거나 줄어들기도 한다. 지나가며 집집마다 가꿔 놓은 텃밭을 구경하며 고추 심으셨네, 저번에는 상추였는데 상추나무를 다 뽑으셨네. 며 모르는 집이지만 산책하며 알게 되어 우리끼리 친밀함이 형성된 집들을 지나며 이야기를 하며 걸어간다.


산책을 할 때 나누는 이야기의 주제는 주로 아이들, 서로의 일과 관계된 이야기들, 실수담들, 웃긴 일들 등을 나누는데 실없는 농담 따먹기도 많이 한다. 제주다 보니 렌터카가 지나가면 렌터카를 오늘 얼마나 봤는지 이야기하고 요즘 해 지는 시간이 빨라졌다며 이야기를 한다. 어제에 비하면 고작 1~2분 빨라진 거지만 7월에 비해 이제 얼마나 당겨졌는지 이야기하며 주식이야기 하듯 침을 튀기기도 한다.

비 오고 난 뒤에 작은 오솔길에 깔린 야자매트가 미끄럽다며 남편이 조심하라고 이야기할 때 내 러닝화는 접지력이 좋다며 자랑하다가 슬라이딩하며 미끄러져 크게 다칠 뻔 한 이야기도 산책 후에는 에피소드가 된다.

돌아오는 길에 항상 들를 수밖에 없는 작은 못에 자라가 살고 있는데 그 자라를 보기 위해 우리 둘은 서성이고 한 마리라도 찾으면 소리 지르며 저기 있다며 호들갑을 떠는 것도 산책 코스의 일부다.


아이들과 함께 나선 산책길

산책은 어렵지 않고 쉬워서 그 말만 들어도 왠지 기꺼이 따라나서고 싶게 만든다. 일상과 쉼 사이의 경계가 모호할 때 환기하듯 할 수 있는 것이 산책이다. 경쟁하며 달릴 필요도 없고, 만보를 채우고자 열심히 걷지 않아도 되고, 슬리퍼를 신어도 무방하며 설렁설렁 주머니에 한쪽 손을 넣고 가도 상관이 없다. 긴장을 늦추면서 무장해제하게 해 주는 산책의 묘미를 나이 들어가며 더욱 느끼고 있다.


오늘도 산책을 하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한 걸음 한 걸음 걸었다. 이름 모를 풀꽃도 예뻐서 알은체를 해 주었고, 남의 집 텃밭 작물 걱정을, 부러움을 표하기도 했다. 바다 경관을 볼 수 있는 정자는 매일 보는 것이기에 올라가지 않고 가뿐하게 패스하는 여유와 제주에 사는 부심을 부리기도 했으며, 빼놓지 않고 들르는 작은 못에서는 서로가 고개를 쑥 내밀어 자라 찾기에 여념이 없었다.

반가운 손님과 함께 봤던 일몰

삶의 쉼표가 되어주는 산책을 하고 오면 답답한 것도, 근심스러웠던 것도 조금은 잊히고 희석된 채 관심사에서 벗어나게 된다. 이게 바로 산책의 묘미가 아닌가 싶다. 더운 날이 차츰 가면서 산책하기 좋은 계절과 날씨가 다가옴이 설렌다. 선선한 가을바람을 맞으며 가족 모두 산책길을 나설 때만큼 행복이 충만할 때도 없기에 그때를 반가움으로 맞이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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