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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므니 Aug 24. 2023

일상이라는 정직함

아이들이 자러 가면 아이들 방에 알맞게 에어컨 온도를 맞춘다. 냉장고에서 내일 아침거리를 찾아본 후 그게 냉동고에 있으면 미리 꺼내 해동될 수 있도록 한다. 싱크대로 가 미처 다하지 못한 설거지를 끝내고, 샤워를 한다. 샤워 후 건조기에서 빨래를 꺼내 하나씩 갠다.


뒤이어 샤워를 마친 남편이 나오면 두런두런 오늘 있었던 일을 이야기한다. 주로 내가 실수한 실수담들을 이야기하며 깔깔거리고 그런 나를 귀여워하는 남편이 포인트다. 서로 같은 공간에서 핸드폰을 하거나 책을 읽고 같이 잠자리에 든다.



단조롭고 무미하여 아무 재미가 없는 듯 흘러가는 일상이지만 아무 일이 없는 것이 평안이고 행복임을 안다. 특별한 이벤트가 있어 가슴이 쿵쿵 뛰고, 눈이 반짝반짝해지며 잊지 못할 일로 각인되는 것 역시 큰 행복일 수 있으나 살아보니 그런 일은 거의 없거나 몇 안 되었다. 그저 큰 일 없이 잔잔하게 때로는 작은 조약돌에 물결이 일렁이며 지나갔지만 큰  움직임을 만들어내지 못함이 안도가 되어 다행인 일상이었다.


예전에 친정아빠는 사는 게 재미가 없다고 어린 우리에게 자주 말씀하셨다. 그때는 그냥 사는 건데 무슨 재미가 있어야 되는가라고 생각하며 푸념하듯 말하는 아빠가 싫었고 이해되지 않았다.

그런데 살아보니 나도 재미가 없는 날이 있긴 있었다. 한숨이 푹푹 나오고 뭘 해도 시들하며 기운이 빠지던 날들 말이다. 그래도 삶은 계속 살아지고 유지되며 이어졌다.


일상이 켜켜이 쌓이고 쌓여 생활이 되고 삶이 되어 한순간 턱 하니 세월이라는 이름으로 내가 쓰고 소비한 영수증 내밀듯 찾아오는 순간이 있다. 하루하루 시나브로 쌓여 갈 때는 알지 못하다가 한 권의 책처럼 역사가 되어 지난 시간을 마주할 때 나를 돌아보게 된다. 그때 내가 지나온 길임에도 낯섦으로 마주하지 않고 반가운 친구로 인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기에 먼저 일상이라는 정직함 앞에 매일매일을 습자지처럼 쌓아간다. 속일 수도 없고 비치는 습자지가 쌓여 온전히 나만의 삶이라는 그림을 그려낼 수 있도록 정직하고 성실하게 일상을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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