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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므니 Aug 30. 2023

비가 오는 날이면

어릴 때 아마 국민학교 저학년인 시절에 비가 오는 날이면 항상 장화를 신었다. 분홍색인 데다가 커다란 리본이 달려 있고, 뒷굽이 있어 마치 구두를 신은 것처럼 걸을 때 또각또각 소리가 나서 일부러 뒤축을 콩콩 찍으며 다녔던 장화가 생각난다. 하굣길에는 장화를 신은 김에 운동장에 흙이 패인 물 웅덩이에 가서 일부러 첨벙첨벙 발 장난을 치기도 하고 발을 물 웅덩이에 푹 담가서 진짜 장화에 물이 들어오는지, 안 들어오는지 시험해 보기도 했다.

이제는 엄마가 되고 나니 이제는 내 장화보다 아이들 장화와 우산 챙기기에 바쁘다. 키와 발 사이즈에 맞게 장화와 우산을 잘 구비해서 주어야 하니 잘 챙겨본다.


올해는 유독 비가 많이 와서 과장을 조금 한다면 신발과 우산에 물 마를 날이 없다. 전 날 일기예보를 보고 아침에 다시 날씨를 확인한다. 우리 집에서 날씨에 가장 민감한 사람은 둘째 아이인데, 비가 오면 점심시간에 축구를 못하니 그걸 가장 아쉬워해서 아침이면 날씨를 제일 먼저 확인한다.

비가 오는 날이면, 분주해지고 챙길 것이 많다. 아이들 장화와 우산을 꺼내놓고, 가방에 손수건과 여분 양말을 챙겨 넣는다. 그리고 비 옷 대용으로 걸칠 엄청 얇은 바람막이도 꺼내둔다. 내 우산과 장화도 마찬가지로 준비해 두고 물이 묻어도 무방하고 양손의 자유를 줄 큰 크로스백으로 출근 가방을 교체한다.


집에서 나가기 전 제습기는 필수로 체크해서 집 안을 뽀송뽀송하게 유지시켜 주도록 한다. 역시나 비 오는 날 출근길은 차량이 더 붐비는 듯한 생각도 들고 교통체증도 심하다. 아이들이 하교를 하면 가방에 묻은 물기를 닦아내고, 우산도 정리해 둔다. 이래저래 비가 오면 챙길 것도 신경 쓸 것도 많아 정신이 없다.


그래도 좋은 것도 몇 가지 있는데, 텃밭에 물을 안 줘도 되니 편하고 마음도 여유롭다. 이 비를 다 받아먹고 무럭무럭 자라겠지 하는 편안한 마음이 든다.

차로 이동하고 난 뒤, 조금 남는 시간에 차 안에 앉아서 빗소리를 듣고 있으면 그 자체가 편안한 마음이 들고 힐링이 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날씨로 나른한 기분 탓인지, 이런 날 국물요리는 가족들의 환호를 받기에 찌개나 국이 들어간 요리를 준비하면 맛있게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차분한 마음이 들어 책도 잘 읽히고 글도 쓸 기분이 나는 것도 좋은 점 중의 하나라고 할까.

아, 남편과 차에서 내려 잠깐 이동할 때 우산 하나에 같이 쓰고 다니니 알콩달콩 연애 기분도 나니 그것도 좋은 점일까 싶다.


비가 오는 날이면 불편한 것이 먼저 떠오르고 왜 이렇게 비가 많이, 계속 오나 하고 불평도 나오지만 비가 올 때 좋은 점을 생각해 보니 그것대로 운치 있고 매력 있다고 여겨져 편안하게 받아들여 본다. 상투적인 표현으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무슨 일을 했다고 하면 꾸준히 성실하게 그 일을 해 낸 것으로 인정하며 칭찬한다. 그래서 비가 오는 날이지만 나 또한 꾸역꾸역 글을 쓰고, 발행하며 비가 오는 날에도 할 일을 했다고 우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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