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소풍날 아침이면 안 그래도 설레는 마음을 더 들뜨게 했던 고소한 냄새가 생각난다. 참기름 냄새가 진동할 때 일어나서 엄마 옆으로 가서 김밥 꽁다리를 주워 먹으며 학교 갈 준비를 했던 그 시절을 지나 이제는 내가 아이들 소풍날 새벽같이 일어나 김밥을 싼다. 그 당시 엄마는 김밥에 대한 추억을 이렇게 회상하곤 하셨다.
선생님 것까지 김밥을 싸려면 얼마나 고생했는 줄 아니? 찬합 도시락 칸칸에 김밥이며 과일이며 어우 다시는 못하지.
국민학교 시절 임원을 좀 했던 나는 자발적이었는지, 의례적이었는지 기억이 잘 안 나지만 선생님 도시락을 싸 가는 당번을 종종 맡곤 했다. 덕분에 소풍짐이 무거웠지만 어딘가 모를 자랑스러움과 우쭐함이 소풍 때마다 이고 지고 가는 일을 자청하곤 했다. 그리고 돌아오는 선생님들의 찬사와 고마움의 표현에 더 신이 났으니 말이다.
이쯤에서 말해 보는 친정엄마의 김밥에 들어가는 재료는 7가지이다. 계란, 단무지, 시금치, 어묵, 우엉, 소고기, 당근이 그 주인공이다. 얼핏 보면 특별해 보일 것 없는 이 재료들이 어우러져 내는 환상의 맛은 먹어본 사람만 안다. 그렇다면 친정엄마의 김밥레시피에 들어가지 않는 것은 맛살과 햄이다. 이상하게 어릴 때부터 맛살과 햄을 싫어하며 넣지 않던 친정엄마는 단무지를 제외하고 직접 재료를 만들어 넣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시고 맛있다 하셨다. 그리고 계란 흰자와 노른자를 분리한 지단을 얇게 부쳐 김을 올리고 밥을 올린 다음, 그 계란 지단을 얇게 통으로 올려 나머지 부재료를 감싼 김밥을 싸셨다. 지금 내가 김밥을 싸 보니 그건 너무 손이 많이 가는 일인데 말이다. 그래서 엄마가 싼 김밥은 흰 지단으로 감싼 김밥은 흰 김밥, 노란 지단으로 감싼 김밥은 노란 김밥으로 불렀다. 또 엄마는 나름 스페셜한 김밥으로 - 김밥천국이 없었던 시기임에도 - 참치를 넣은 참치김밥과 치즈김밥도 두어줄 싸주시기도 했다.
엄마가 공들여 싼 김밥 중에 제일 보기 좋고 예쁜 김밥은 어김없이 선생님 도시락용이었고, 꽁다리와 자르다가 터진 김밥은 우리 남매의 아침식사였다. 엄마 김밥은 유독 자르다가 풀어지는 김밥이 많았다. 그 이유는 아직 국민학생인 우리들이 한 입에 먹기에 김밥이 크다고 생각되어 최대한 얇게 자르다가 김밥이 풀어졌기 때문이다. 그때는 풀어진 김밥만 우리에게 준다고 투덜댔는데 내가 엄마인 지금 생각해 보니 엄마의 사랑임을 알겠다. 지금의 나도 우리 아이들에게 김밥을 썰어서 줄 때 최대한 얇게 잘라서 주곤 하는데 종종 풀리는 김밥을 만나기 때문이다.
추억을 먹으며 김밥을 떠올리던 내가 아이들 어린이집 시절 소풍날 도시락을 싸야 할 때부터 김밥을 싸기 시작했다. 아직 꼬꼬마 어린이들인 아이들을 위해서 처음에는 김밥용 김을 4 등분해서 쌌고,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는 김밥용 김을 2 등분해서 쌌다. 요즘 유행하거나 자랑할만한 예쁜 캐릭터 모양이 들어가는 도시락이나 금손인 분들이 쌀 법한 그런 도시락은 아니었고 그저 기본에 충실한 김밥도시락을 쌌다. 엄마처럼 얇은 계란 지단을 색별로 만들어 쌀만한 정성과 솜씨는 조금 부족했다. 대신 엄마의 김밥을 최대한 흉내 낸 사랑과 맛을 담으려 노력했다.
다행인 건 이 김밥을 우리 집 식구들이 좋아한다는 점이다. 남편은 거짓말을 좀 많이 보탰겠지만 팔아도 될 정도의 맛이다.라고 했고 우리 집 두 아들도 내가 김밥을 만든다고 하면 너무 좋아하니 말이다. 김밥 준비하는 냄새가 나는 날이면 너무 좋아서 방방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보면 이 맛에 김밥을 만다는 생각도 든다.
나의 김밥 레시피는 엄마의 그것과 똑 닮아 있다. 김밥용 밥은 보통 고슬고슬하게 지으라고 하는데 워낙 찰진밥을 좋아했던 친정식구들에게는 김밥용 밥도 어김없이 찰진 밥이었다. 그 입맛 그대로 나의 김밥도 찰진 밥이 기본이다. 김밥 재료는 완전수라고 하는 7가지. 계란, 단무지, 시금치, 어묵, 우엉, 소고기, 당근. 시금치가 나오지 않는 철이면 오이로 대신하기도 하는 레시피인데, 소고기는 잡채용으로 길쭉길쭉하게 잘라서 밑간과 양념을 한 뒤 볶아야 하고 우엉과 당근은 잘게 채 썰어 볶고, 계란은 최대한 두껍게 해서 목 막힘을 방지하라는 엄마만의 방식을 그대로 따라 한다.
요즘엔 잘 나오는 김밥용 키트를 사서 간편하게 싸도 무방한데 나는 굳이 엄마의 레시피대로 그 방법을 고수해서 싼다. 어릴 때 먹던 추억의 맛을 되살리기 위해, 추억도 함께 먹기 위해서인가 싶다. 김밥을 쌀 때는 김밥의 참기름 냄새와 추억이 방울방울 떠오른다. 소풍날 분주히 움직이며 김밥을 싸던 엄마의 뒷모습과 김밥도시락을 들고 낑낑 대며 올라갔던 소풍 장소에 대한 기억과 맛까지.
지금 아이들과 부대끼며 만드는 김밥이 훗날 아이들에게 추억의 맛으로 기억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아직 작은 아이들 입에 크지 않게 들어가도록 얇게 얇게 김밥을 써는 것도 잊지 않으며 김밥을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