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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므니 Feb 22. 2023

위경련의 역사

모두가 잠든 고요하고 깜깜한 밤. 한 손에 핸드폰을 들고 인기척을 내지 않고 화장실로 기어가다시피 들어간다.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타일 바닥에 쓰러지듯  누워있다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 침대로 다시 기어 오다시피 왔다. 신고 갔던 실내화 슬리퍼와 가지고 갔던 핸드폰은 내팽개쳐 두고 몸만 겨우 돌아와 침대에 누이었다.

하. 그 녀석인가. 다시 시작인 건가.



배가 고프다고 급하게 먹은 김밥이 원인이었다. 볼일을 보고 맛집이라는 곳에서 식구들 먹을 김밥을 여러 줄 샀다. 배가 고팠고, 김밥이라는 음식은 언제나 구미가 당기니 차 안에서 잘 썰려진 김밥을 우걱우걱 씹어 허겁지겁 먹었다. 물도 한 모금 안 들이킨 채 말이다.

집에 도착하고 나서 가슴 아래 명치 쪽이 더부룩함을 느꼈고, 바로 직감했다. 얹혔구나. 그리고 무서웠다. 동반되는 어둠의 친구가 곧 찾아올 거라는 것을 알아서.




자라나면서 자주 체해서 힘들었다. 월례행사라 할 만큼 체했고 속이 불편해서 소화제는 친구였으며, 엄마가 손 따주는 건 흔하디 흔한 일상이었다.

그래도 그 당시는 얹히고 체한 걸로 끝이 났는데, 결혼을 하고 육아를 하다가 발전이 되었다. 몰라도 되고, 굳이 경험하지 않아도 되는 세계에 들어온 것이다.


그것은 바로 위경련!!

처음 위경련을 할 때가 생생히 기억난다. 남편은 출근하고 첫째는 어린이집에 가고 둘째 아이와 집에 있는데 토할 것 같고 속이 뒤틀리는 것 같았다. 생전 처음 느끼는 고통에 약을 먹을 수도 없었고(마땅한 약도 없었다.) 그럴 정신도 없었다. 출산 때 무통 주사를 맞기 위해 새우처럼 등을 구부렸던 것처럼, 놀고 있는 아이 옆에 누워서 새우처럼 등을 구부리고 바닥을 긁으며 끙 끙 신음소리를 냈다. 남편에게 연락을 했지만 당장 올 수는 없었고, 어린아이가 옆에 있으니 우선 견뎌 보자는 생각뿐이었다. 그렇게 바닥을 긁고 끙끙댄 지 1시간이 지났나, 2시간이 지났나. 시간이 얼마간 흐르자 고통은 사라졌고 구부러졌던 등을 펴고 일어나 앉을 수 있게 되었다.

그 당시 여러 가지로 스트레스가 극심했던 것을 기억한다. 그래서 위가 반응을 해서 조금씩 체하고, 소화불량이 되었던 빈도가 늘어났는데 급기야는 위경련으로 몸이 신호를 보냈다.



한 번 위경련을 하자 다음엔 아주 쉬웠다. 조금이라도 속이 불편하다 싶으면 다음 코스는 위경련이었다.

조금이라도 마음이 불편하다 싶으면 다음 코스는 위경련이었다.

조금이라도 신경을 쓰는 일이 발생하면 다음 코스는 위경련이었다.

부부싸움을 하고 난 다음코스는 위경련이었다.



예외가 없었다. 그래서 위경련으로 응급실을  계속 들락날락했다.

위경련은 겪어 본 사람만이 안다. 숨이 안 쉬어지고 속이 뒤틀리는 고통 가운데 바닥을 좀 긁으면서 2시간 정도가 지나면 괜찮아지긴 하는데, 그 과정이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 고통스럽다. 응급실에 가면 경련을 멈추게 하는 진경제를 주고 좀 있으면 괜찮아진다. 집에는 처방받은 진경제와 짜 먹는 소화불량 관련 약들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그래도 위경련을 한 번하면 한 동안 2주나 3주 내에는 조심하기도 해서 좀 안 했는데, 급기야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 일주일에도 몇 번씩 위경련을 하고 소화불량이 심하게 와서 먹지도 자지도 못하는 40일 정도의 고통이 시작되었다. 그때가 마침 방학이라 아이들을 친정에 맡겨두고 집에 혼자서 조심조심하다가 위경련을 하면, 쉬고 참는 식이었다. 위내시경도 하고 내과에 가서 위와 관련한 약을  한 보따리 받아서 먹고, 한의원에 가도 차도가 없었다.

먹으면 배가 아프고 속이 뒤틀리고 생활이 되지 않았다. 아파서 살이 쭉쭉 빠졌다. 자동 다이어트가 되니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위가 운동을 안 하는 것 같아 강제로라도 움직이게 하려고 가벼운 산행을 매일 했고, 음식도 극소량으로 먹었다. 그러다 잘 맞는 의사 선생님을 만나 치료를 받고 나아졌다. 그 의사 선생님께는 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나에게는 최고의 명의셨다. 한 달 넘게 고생한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하다.




그 명치의 묵직함과 속이 더부룩하고 알싸한 느낌이 김밥과 함께 찾아왔다.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오랜만에 헤어졌던 악연으로 엮인 친구와 한밤중 조우했다.


다시 위경련.

익숙하지만 절대 친해질 수 없는 고통이 밤을 갈랐고, 침대시트를 몇 번 쥐어뜯다 보니 고통이 옅어졌다.




위와 관련된 질환은 예민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반응하고 발생하기 쉽다고 들었다. 평소 무던한 성격이라 자부했지만 다른 사람에게 싫은 소리 하기도, 듣기도 싫어 혼자서 처리하고 감당하는 일이 많아서 그런가. 오히려 이런 성격이 예민하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불편한 상황을 미연에 방지해 아예 차단하려고 하는 예민함 말이다. 완벽을 추구하고 일처리나 여러 부분에서 잘 해내려는 욕심도 한 몫하겠거니 한다.


김밥은 집김밥이 최고니까 이제 사 먹는 김밥은 안 먹어야겠다.  최근 스트레스를 받았나. 조절해야지. 이 정도로 오늘의 위경련은 갈무리된다.



제발 다시는 만나지 말자꾸나. 제발 좀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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