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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므니 Jan 14. 2023

엄마의 택배

오늘도 어김없이 온 엄마의 택배

결혼을 하고 잠깐 친정 옆에서 살았던 때를 빼고는 일주일이나 이주일에 걸쳐 빠짐없이 오는 것이 엄마의 택배다. 종류도 천차만별 가지가지이다. 철마다 빠지지 않는 제철 음식과 이제는 제주에 사는 딸의 택배를 다시 부쳐 주는 택배꾸러미도 한편에 놓여 있다. (제주로 오는 택배에는 거의 대부분 도선료가 붙기 때문에 택배비용이 비싸다. 그래서 친정으로 택배를 보내 엄마가 다시 부쳐 주는 방식이다.)




보자.

오늘 택배에는 뭐가 들어있나.

모두 냉동으로 꽁꽁 싸매고 소분한 봉지들이 소복하다.

종종 부산의 돼지국밥 맛을 못 잊어 먹고 싶어 하는 딸과 손주들을 위해 직접 돼지뼈를 고아서 만들고 수육고기를 먹기 좋게 썬 돼지국밥용 육수와 수육고기가 각각 4봉이다. 4번 끓여서 먹으라는 것이다.

다음은 제철 맞은 키가 작은 부추. 초벌 부추라고 하는데 부산에서는 약정구지라고도 해서 일반 부추보다 비싸게 파는 재료이다. 돼지국밥에 양념해서 넣어 먹으라는 뜻인 듯하다.

다음은 LA양념갈비이다. 명절에 먹을 것을 미리 부쳐 주신 것이다. 그리고 다음은 둘째 손주가 무척 좋아하는 소고기미역국. 내가 좋아하는 호박죽, 잘 다져 주신 다진 마늘 등등 봉지 봉지마다 엄마의 사랑이 가득하고 이런 것까지 보냈나 싶을 음식들로 꽉 차 있다. 아이스 박스 안에 어찌나 테트리스를 잘해서 넣었는지 빈틈없이 꽉 맞다. 어떤 때는 냉동된 음식들과 섞이지 말라고 박스 안에 칸을 만들어 상온 보관 음식들을 얼지 않게 보내기도 하신다. 음식 외에 오늘은 아이들 새 학기 준비물로 주문했던 여러 물품들도 가지런히 있다.



철없는 나는 음식에서 흘러나온 물이 물건을 적시면 엄마에게 단속 좀 잘해서 보내라는 지청구를 한 적도 있는 못된 딸이다.

하지만 매번 택배를 받고서 칼로 아이스 박스를 빙 둘러 훑어 뚜껑을 열고 음식을 하나씩 하나씩 꺼낼 때면 주방 구석에서 눈물을 훔친다.

언제까지 엄마의 택배를 받을 수 있을까. 언제까지 철 없이 이게 먹고 싶고, 아이들이 이건 잘 먹으니까 더 해달라고, 대신 택배를 받아서 부쳐 달라고 응석맞이 청을 할 수 있을까 싶어 눈물이 난다. 그리고 이것을 만드느라 동동 거리며 분주하게 힘들게 준비했을 엄마가 떠올라 마음이 시리다. 또 이 나이까지 엄마를 부려 먹는 딸이라 눈물이 난다.

택배 박스를 뜯을 때마다 눈물을 훔쳐서 이젠 아이들도 남편도 그러려니 하며 아이들은 또 엄마 운다라고만 한다. 소리 없는 눈물을 재빨리 닦고, 음식과 물품들은 적재적소에 정리해 두고 엄마에게 전화를 건다.


" 택배 잘 받았어요."

" 아고, 늦게 안 가고 잘 도착해서 다행이다. 날씨가 이래서 제주 배가 안 뜬다고 해서 걱정했네. "

" 뭘 이렇게 많이 보냈어. 고생 많으셨네. "

" 그런데 작은 아기 좋아하는 파김치를 깜박한 거 있지. 요즘 정신이 이렇네. "

" 아니에요. 이렇게 많이 보낸다고 엄청 고생했겠다. 다음부터는 조금씩만 해요. "

" 지난주에는 밑반찬 좀 했는데, 이번에는 밑반찬이 없어서 먹을 게 없네. "

" 아니에요. 충분해요. "




주거니 받거니 충분하다 아니다 몇 번의 대화 끝에 결국은 잘 먹을게요. 감사해요.로 마무리 짓는다.

엄마는 엄마의 택배를 받을 때마다 내 눈이 뜨겁게 붉어지는 걸 알까. 좀 더 시간이 지나면 내가 엄마에게 택배를 보내며 이런저런 당부와 아쉬움을 말하겠지. 그때까지 우리 엄마가 오래오래 계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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