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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므니 Apr 19. 2023

진부하다면 진부한 경단녀 극복 스토리

육아 6년차, 30대 후반에 막 접어든 시점에서 40대가 되기 전에 나가야 한다는 사회의 여러 목소리에 귀기울이기 시작했다. 큰 아이와 둘째도 어린이집에 성공적으로 적응하고 나니 뭐라도 해야 하겠다는 자의 반 타의 반의 압박도 서서히 크게 다가왔다.



우선, 뭘 할 수 있으려나. 가지고 있는 자격증이라고는 중등 교원 자격증 뿐. 그마저도 기간제 교사를 해 본 적도 없던 터라 도전하기에도 문턱이 높은 기간제 교사였고, 아이들이 아직 어려 풀타임으로 일하기에는 마음과 몸이 벅찼다. 그래서 단기간 시간제 알바와 같은 자리를 요리 조리 찾아보았다.


교원자격증 하나 딸랑 들고, 교육청 채용공고를 매일 눈여겨 보기 시작했다. 그러다 요즘은 전산화 작업으로 사라져 버린 방과후학교 코디네이터의 초 단기간 근로자를 채용하는 공고를 봤다. 10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5개월을 일할 수 있는 자리였는데, 그당시 최저시급을 보장하는 하루 3시간만 일하는 자리였다. 우선 바로 일할 수 있는 자리라서 지원했다. 그리고 운 좋게 합격해서 출퇴근만 2시간 정도 걸리는, 하루 3시간 일하는 곳으로 출근을 시작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나보다 먼지 합격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 분이 사정이 생겨 못하게 되는 바람에 나에게 기회가 왔다고 했다.


그 후 방과후학교 강사분들과 자연스레 소통하며 이듬해는 방과후학교 강사자리에 지원하게 되었다. 과목은 전공과 경력을 살린 것으로 선택해서 열심히 연간계획서와 프로그램 제안서를 작성했다. 여러군데 넣었는데 경력부족 탓인지, 아니면 실력부족 때문인지 다 떨어졌다. 그러다 한 군데서 면접 연락이 왔는데,  수업시연이 있다 했다. 직전에도 수업시연에서 떨어진 터라 자신감 상실로 가지 않겠다 연락을 드렸다. 그런데 담당 선생님께서 지원자가 나 뿐이라 우선 오라고 귀뜸을 해 주셨다. 그리고 면접과 수업시연을 봤고 최종합격을 했다.


예전에 같은 과목 학원 강사를 했던 터라 감은 있다고 믿었는데, 10년이 지나니 강산이 변해서 매우 낯선 세계가 되어 있었다. 그래서 다시 수업 연구를 하고 교구를 만들고 학습지 및 활동지를 만들고 손이 느리고 쓰기가 힘든 1~2학년 친구들을 위해서는 만들기 키트같은 DIY도 직접 제작해서 수업 준비를 했다.

수업이 끝나고 나면 다음 수업에 대한 부담감이 턱 밑까지 차 올랐지만 채용해주신 학교와 수업을 들으러 오는 학생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정말 최선을 다했다.



그 때 아이들과 울고 웃으며 200쪽이 넘는 책을 윤독하기도 했고, 독서력이 부족한 아이들을 데리고도 정약용이 유배지에서 쓴 편지와 같은 고전도 함께 섭렵하기도 했다.

그 때의 경험이 우리 집에서도 책육아로 이어지게 만든 원동력이 되었다고나 할까.


같은 나라라고는 하지만 특별자치도에 살고 있는 나는 말과 물이 설은 곳에서 과연 적응을 하고 일을 할 수 있을까하는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는데, 어디서든 사람이 사는 곳이었다. 경력 단절 여성을 어디서 써 주나 싶었는데, 길을 찾는 자에게 길이 열렸다.


지금도 길을 찾으며 경력에 경력을 이어나가 같은 계통이지만 또 다른 길을 찾아 매진하고 있다. 더이상 경력 단절이 되지 않길 바라며 잊혀지기 전에 글로 남겨 소회를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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