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 사이 문해력에 대한 위기론이 부각되고 있다. 스마트폰 등 디지털 매체에 익숙해진 나머지 독서와 멀어지고, 한자 단어를 모르는 것은 당연하며, 약간이라도 긴 글은 읽지 못한다. '심심한 사과'에 분노하고, '중식 제공'이란 말에 짜장면을 기대하거나 '금일 방문하세요'라는 말에 금요일에 찾아오는 현상은 문해력 하락의 심각성을 잘 보여준다.
리터러시, 즉 문해력에 대한 심각성을 논하기 전에 저자는 단어의 정의를 시도한다. '리터러시(literacy)'의 사전적 의미는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능력이다. 앞선 언급에서 알 수 있듯 나는 리터러시와 문해력을 동일시하였다. 하지만 저자는 책의 모두에서 양자의 차이가 분명함을 밝힌다. 문해력은 텍스트를 읽고 이해하는 개념이지만, 리터러시는 이를 넘어서는 것이라 한다.
과거보다 독서량은 줄고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매일 주고받는 정보의 양은 과거의 그것보다 월등히 많다. 시사, 경제, 연애, 스포츠 등 뉴스와 다양한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시시콜콜한 잡담들, 그리고 친구와 주고받는 메신저와 같이 텍스트 정보의 종류가 다양해지고 그 양도 늘어나고 있다. 또한 각종 팟캐스트, 유튜브 등 음성과 영상으로 구성된 정보까지 우리는 하루에도 무수한 양의 정보와 지식을 접하고 생성하고 있다.
정보 매체의 다양성이 증가할수록, 그 속에 담고 있는 주장과 논리의 다양성도 증가한다. 그렇기에 데이터를 읽고 이해하는 문해력을 넘어서는 능력이 필요하다. 그 능력이 바로 리터러시이다. 그렇다면 리터러시의 정확한 정의는 무엇인가?
저자는 리터러시의 의미가 너무 방대하고 포괄적이기에 이를 명징하게 정의하기를 주저한다. 이는 개인, 사회, 문화의 경험과 인식에 따라 다양하게 정의될 수 있기에 그런 것이 아닐까? 그럼에도 책을 읽은 후에 리터러시에 대한 나만의 정의를 내려보자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다양한 경로를 통해 습득하는 정보를 나의 경험적 지식과 결합하여 비판적, 능동적으로 수용하며, 이를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자신의 의견을 제대로 피력할 수 있는 능력'
단순히 글을 읽고 이해한다는 범주를 아득히 넘어섰다. 정보의 습득이라는 수동적인 행위를 넘어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상호작용까지 포괄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리터러시는 어떻게 길러질 수 있으며, 왜 중요할까? 작가는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대다수 국가의 교육법은 학생 개개인의 특성을 이해하고 반영하지 못한 채, 획일화된 교육을 제공한다. 이러한 교육은 사회 전체 시스템 속 하나의 부품인 노동자로서 생산성을 높이는 것에 도움이 되었을지 모른다. 소품종대량생산이라는 근현대의 트렌드에는 유기적으로 하나같이 움직이는 집단이 성장에 더 유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4차 산업 시대가 도래하며 전에 없던 신기술이 하루가 다르게 등장하고 있으며, 어느 시대보다 개인들의 다양성이 존중되기에 획일적인 교육은 효율성이 떨어진다. 그래서 하나의 정답이 있는 교육이 아닌, 개인들의 경험과 생각을 존중하는 교육이 필요하다.
저자는 이를 다음과 같이 도식화한다. 우리가 생활하고 지내는 ‘제1의 공간’과 배우고 학습하는 ‘제2의 공간’을 융합한 ‘제3의 공간’에서 사회의 지식과 개인의 경험이 공존하며 리터러시 능력을 함양할 수 있다.
그렇다면 개인들의 리터러시 능력을 향상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릴 때부터 획일화되고 하나의 정답이 존재하는 교육을 받아온 우리들은 정보의 비판적 수용에 약하다. 약간이라도 공신력이 묻은 정보는 그것이 진실이라 믿고 수용한다. 여기에 유튜브와 페이스북을 위시한 새로운 미디어 매체의 알고리즘 기능은 나와 성향과 생각이 유사한 정보만 선별 제공하고, 그 결과 그것이 세상의 진리인 양 사고가 굳어간다. 그렇게 소위 확증편향에 빠지게 되고 더 이상 정보의 진실은 중요하지 않다. 나와 생각이 같다면 진실, 그렇지 않다면 거짓이다. 그렇게 탈진실 사회로 변해가고 이는 사회분열을 가속한다. 이를 가장 잘 이용한 정치인은 트럼프 미 전 대통령이며, 우리나라를 비롯한 수많은 정치인이 이런 현상을 이용하고 있다.
정보통신 기술이 발달하여 세계 각국의 시간적 거리가 좁혀진 덕에 타 문화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지며 지구촌, 세계화라는 하나의 세계가 탄생하는 듯했다. 그러나 기술 수준의 발달 속도에 못 미치는 리터러시 능력 때문에 지금 전 세계는 개인과 집단, 국가별 철저히 분절되는 중이다. 우리나라만 해도 세대 갈등, 남녀갈등, 지역갈등이 심해지고 있고, 세계적으로도 신냉전, 탈세계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 중이다. 물론 이런 현상에는 다른 이유도 복합적으로 작용했겠지만, 정보를 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세상을 진실된 눈으로 바라보려는 리터러시 능력의 부재 혹은 부족이 크게 한몫했을 것이다.
이러한 위기의식이 고조되며, 다양한 전문가들이 리터러시 능력 함양을 외치고 있다. 방대하고 포괄적인 리터러시 능력은 쉽게 체득하기 어렵다. 그렇더라도 이를 외면하는 것은 인간 세상의 사분오열을 방관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저자의 말처럼 획일적인 교육을 이어오는 교육계는 각성해야 할 것이며, 개인들은 다양한 매체가 표방하는 진실을 한 번쯤 의심하고 반문해 보는 비판적인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 사회의 리터러시 능력 향상을 위한 첫걸음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