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 "파스타"

by 나무파파

파스타. 이탈리아의 밀 식품이다. 음식, 특히 파스타에 진심인 이탈리아인들의 열정 때문에 파스타는 그 종류가 무척 다양하다. 우리가 흔히 파스타와 스파게티를 혼용해서 말하는데, 사실 스파게티는 파스타의 일종으로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일반적인 굵기의 면 파스타이다. 엔젤 헤어 파스타라는 우리나라의 잔치국수와 비슷한 얇은 면도 있고, 링귀니, 페투치니 같이 납작하게 눌린 면도 있다. 일반적인 면의 형태만 있는 게 아니다. 어릴 적 급식 샐러드에서 자주 접했던 마카로니처럼 속이 비고 짧은 형태의 파스타도 있다. 만두처럼 고기나 야채로 속을 채운 라비올리도 있고, 우리나라의 수제비와 비슷한 뇨끼라는 감자와 밀로 만든 파스타도 있다. 이밖에도 펜네, 토르텔리니, 로티니 등등 수많은 종류의 파스타를 모두 열거하기는 쉽지 않다.


소스의 종류도 엄청나다. 우리는 흔히 오일, 크림, 토마토 3가지 소스로 분류하지만, 더 깊게 들어가면 알리오올리오, 바질페스토, 로제, 라구, 머쉬룸 크림, 카르보나라, 카초 에 페페(치즈후추), 엔초비 파스타 등등등 넣는 재료에 따라 수만 가지 소스가 존재한다.

숏폼의 콘텐츠를 보다 보면 가끔 파스타 면을 부숴 삶는 사람을 보고 절망하고 분노하는 이탈리아인들을 볼 수 있다. 셀 수 없는 파스타의 종류와 그들이 내뿜는 분노를 보면, 그들의 파스타에 대한 남다른 사랑을 알 수 있다.


이탈리아 인들만큼은 아니지만 나도 파스타를 정말 좋아한다. 일주일에 4~5번은 해 먹는데, 한국인 중에서는 꽤나 자주 먹는 편에 속할 것 같다. 언제부터 이렇게 파스타를 좋아했을까?


학교 급식으로 나온 토마토소스 스파게티를 먹어본 것이 처음으로 파스타를 접해본 경험이 아닐까 싶다. 나와 같은 1980년대 생들은 공감할 것 같다. 약간은 불은 면과 자극적인 맛의 토마토소스가 학생들의 입맛에 꼭 맞았고, 스파게티가 메뉴로 나오는 날에는 많이 먹기 위해 급식실에 늦게 갔던 기억이 있다. 뭐.. 그런 선택은 더러 모험적이었다. 늦게 가면 남은 음식을 양껏 받아먹을 수 있기도 하지만, 운이 없으면 재료가 조기 소진되어 맛없는 반찬만 꾸역꾸역 먹게 될 가능성도 있었다. 하지만 극악의 로또 당첨 확률을 알면서도 설레는 마음으로 복권판매점 문을 여는 것처럼, 그 시절의 우리도 산처럼 쌓인 스파게티가 주는 희열을 위해 배고픔을 참는 인내를 발휘했었다.


어른이 되고 회사를 다니니 가끔 구내식당에서 스파게티가 나온다. 급식 시절에는 아주머니들이 배식을 해주었지만, 우리 구내식당은 자율 배식이다. 그렇기에 마음껏 양껏 퍼 먹을 수 있다. 누군가 어른이 된다는 것은 구슬 아이스크림을 마음껏 사 먹을 수 있는 때라는 우스갯소리를 했다. 식판에 국의 영역까치 침범하여 산처럼 쌓인 스파게티를 볼 때마다 내가 어른이 되었구나를 느끼곤 한다. 하지만 어른되서 먹는 구슬아이스크림은 어릴 때 먹은 그것보다 혀끝에 주는 단맛의 충격이 덜 하듯, 구내식당에서 먹는 스파게티는 급식실에서 먹던 내 추억 속의 그 맛보다는 덜하다.

추억 보정의 효과일 수도 있지만, 어릴 때야 많이 접해보지 못했던 스파게티라는 외국의 음식에 대한 호기심과 동경이 함께 작용했기에 더 맛있었던 것 같다. 지금이야 더 맛난 파스타도 먹어보았기에 구내식당의 조금은 불은 스파게티의 맛이 많이 아쉬운 것이리라. 그래서 어른이 된다는 건 스파게티를 산처럼 쌓을 수 있고, 내킬 때마다 구슬 아이스크림을 사 먹을 수 있는 여유로움 보다, 새로운 자극이 줄어들어 작은 것에 설렘을 느끼지 못하는 무뎌짐이 더 크게 느껴진다.


구내식당의 스파게티 맛은 다소 아쉽지만, 나는 내가 만든 파스타를 무척 좋아한다. 다행히 아내도 내가 만든 파스타를 맛있게 먹어준다. 요리하는 게 취미라 직장 생활에 여유가 있던 시기 양식조리기능사 자격증을 땄다. 요식업과 전혀 무관한 직군에서 일 하기에 그 자격증이 나의 커리어에 도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요리가 취미인 한 사람으로서 나의 실력이 일정 수준은 된다는 것을 국가에서 공인을 받았다는 자부심이 생겼다.


20대 때는 정통 카르보나라에 푹 빠져있었다. 지금 이이야 유튜브에 많이 소개되어 우리나라 사람들도 정통 카르보나라에 대해 많이 알지만, 그 당시에는 흔히 까르보나라라고 표기하며 뽀얀 크림 스파게티를 떠올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는 이탈리아 음식이 미국을 거쳐 한국으로 들어오며 각색된 것이다. 정통의 이탈리아 카르보나라는 그것과는 많이 다르다. 카르보나라(Carbonara)라는 이름을 유심히 보면 탄소(Carbon)가 들어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석탄처럼 후추를 많이 뿌려서 그렇다는 설과 석탄 광부가 든든이 먹은 음식이라는 설 등 다양한 유래가 전해지고 있다.


정통적인 조리법은 간단하다. 지방층이 굉장히 두꺼운 염지한 관찰레(돼지 볼살)를 구워 기름을 빼고 그 기름에 면수와 면을 넣고 볶는다. 그리고 불을 끈 후 소스를 붓는데, 소스는 페코리노 로마노라는 양유로 만든 치즈를 강판에 갈아 후추와 계란 노른자를 섞어 만든다. 돼지기름과 면수, 소스가 잘 유화되도록 섞어 주면 강한 치즈와 후추의 향이 매혹적인 정통 카르보나라가 완성이다.


들어가는 재료 중에 우리나라에서 구하기 쉽지 않은 것들이 많기 때문에 전통적인 레시피를 조금 수정해서 나만의 방법으로 요리를 했다. 우선 관찰레는 구하기도 어렵고 기름이 너무 많아 베이컨으로 대체한다. 그리고 한국인답게 올리브유에 마늘을 함께 넣어 볶는다. 가끔 매콤한 게 당길 때는 페퍼론치노를 한두 개 첨가한다. 치즈는 흔히 피자 위에 뿌려먹는 갈아진 파마산 치즈로 대체하고, 계란도 흰자까지 모두 넣는다. 20대 때는 돈이 많지 않았기에 재료비를 아끼는 방법이었다. 이렇게 하면 정통의 카르보나라와는 맛이 많이 다르겠지만, 나는 이 레시피를 너무 좋아해서 매일 같이 해 먹었다. 하지만 이렇게 먹으니 너무 칼로리가 높아 건강에는 나쁘다.


그렇기에 요즘은 자칭 건파(건강한 파스타)에 푹 빠져있다. 올리브유에 다진 마늘과 토마토를 볶다가, 건강에 좋은 통밀 파스타(통밀파스타는 다소 툭툭 끊기는 느낌이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일반 스파게티보다 링귀니가 그나마 식감이 더 괜찮다)와 면수를 넣고 소금 간을 하고 마무리한다. 재료가 다소 심심해 보일 수 있는데, 시판 치킨스톡을 약간 첨가하면 마늘의 감칠맛과 토마토의 새콤한 맛을 배가시켜 주어 매력적인 파스타가 된다.


이렇게 파스타를 좋아하는 나를 보고 아내는 무척 신기해한다. 파스타의 원산지인 이탈리아에서 무려 9,000km나 떨어진 대한민국에서 이렇게 까지 파스타를 좋아할 수가 있을까? 하지만 우리나라에 파스타를 사랑하는 사람은 나뿐이 아니다. 북적거리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이 그 방증이다. 거기에 동네마다 한두 개씩 있는 피자집들(물론 대부분의 피자집은 미국식이다)을 보고 있으면 전 세계에 퍼진 이탈리아 음식 문화가 매우 부럽다.


우리나라도 비빔밥, 불고기 등등 K푸드를 널리 알리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K-pop이나 드라마, 영화들과 다르게 K푸드는 그다지 인기를 얻고 있지 못하다. 개인적으로는 우리나라 음식이 세계화에 더딘 이유가 편의성에 있지 않나 생각해 본다. 뭐 파인다이닝 급으로 요리를 한다면야 그 레시피의 복잡성은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가겠지만, 일반적인 수준에서 요리를 한다면 양식보다 우리나라 음식이 훨씬 손이 많이 가고 어렵다.


간단히 김치말이 잔치국수를 해 먹어보자. 우선 다시마와 멸치, 무로 육수를 끓이고, 버섯, 당근, 양파 같은 야채를 손질해 육수에 살짝 데친다. 그리고 김치를 볶고, 흰자와 노른자를 분리하여 지단을 만든 다음 면을 삶으면 차가운 물에 헹구면 재료 준비가 끝난다. 준비한 재료를 한 그릇에 적당히 담에 육수를 부어 말아먹는다. 절대 간단치가 않다. 아내가 좋아해 가끔 해주었는데, 손이 너무 많이 가기에 아기가 태어난 후로는 거의 못해줬다. 거기다 우리나라는 7첩, 9첩 반상 등등 상다리 휘어질 정도로 수많은 가짓수의 반찬과 음식을 차려 먹기를 좋아하기에 한 그릇 음식을 선호하는 서구의 식문화와 거리감이 있다.


나름의 이유를 생각해 보긴 했지만 문화란 물리적 현상이 아니다. 한 나라의 문화가 널리 퍼지고 사랑받는 이유는 과학적 이론처럼 재단하여 규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강남 스타일의 싸이와 BTS가 전 세계에서 사랑받을 것이라고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엄청난 노력이 시대적인 흐름과 운을 만나 드라마틱한 시너지를 발휘한 것이다. 이러한 선례를 따라 우리나라의 많은 문화 콘텐츠들이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에 발맞춰 요식업에 종사하는 많은 이들이 우리나라의 매력적인 음식을 널리 알리려 노력하고 있다. K문화의 전 세계적인 시류에 동승하여 하루빨리 한식의 세계화가 이뤄졌으면 좋겠다.


얼마 전 미국에서 냉동 김밥이 핫했고, 영국에서 떡볶이가 엄청난 인기를 구가했었다. 이를 넘어 요리에 대한 자부심이 넘치는 이탈리아에서도, 비가 추적추적 오는 날에는 파스타보다 뜨끈한 국물의 잔치국수를 먹자는 사람들이 나타나는 날이 언젠가는 오지 않을까? 파스타를 사랑하는 한국인으로서, 잔치국수를 사랑하는 이탈리아에 안토니오를 만나면 무척 재밌을 것 같다는 상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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