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서평 28화

057 환율 대전환(오건영 저)

by 나무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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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는 해외투자란 상당히 소수의 사람들만 접근할 수 있는 영역이었다. 투자의 범위는 대체로 자국 부동산, 저축과 예금, 국내 상장 증권에 머물렀고, 무역이나 외환 업무에 직접 종사하지 않는 한 환율은 일상의 관심사에 속하기 어려웠다. IMF 외환위기 이전까지 대중에게 환율이란 뉴스 속 숫자였지, 각자의 선택을 좌우하는 변수는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스마트폰 하나로 국경이라는 투자의 장벽은 사라지고 있다. 국내에 상장된 미국 ETF를 매수할 수 있고, 밤이 되면 해외 주식을 직접 거래할 수 있다. 기관 투자의 전유물이었던 미국 국채 역시 개인 포트폴리오에 자연스럽게 편입되었다. 국내 자산보다 높은 수익률을 기록해 온 미국 시장을 향해 자본이 이동했고, 그 결과 원화가 아닌 달러·엔·유로화 표시 자산의 비중은 빠르게 확대되었다. 이제 환율은 단순한 숫자의 나열이 아닌, 수익률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핵심 변수가 되었다. 외화 표시 자산의 수익률은 자산 자체의 가치 변화뿐 아니라, 원화와 해당 통화 간 상대 가치에 의해 함께 출렁인다. 환율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환율과 함께 경제를 읽는 핵심 지표로 흔히 금리를 든다. 거시경제의 방향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두 지표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다만 금리는 중앙은행이 정하는 기준금리라는 명확한 기준점이 존재한다. 시장금리가 일시적으로 괴리를 보이더라도, 통상 ‘기준금리+α’라는 범위 안에서 움직이며 중앙은행의 정책이 일정한 가이던스 역할을 한다. 반면 환율은 다르다. 각국의 경제 펀더멘털은 물론,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시장 참여자들의 심리, 지정학적 사건, 정책 당국의 개입까지 수많은 변수가 동시에, 그리고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한미 기준금리가 200bp가 넘는 역대급 격차로 인해 환율이 급속도로 상승했다고 평가하곤 한다. 그러나 최근 한미 기준금리차이가 줄어들었지만, 환율은 내려올 생각을 안 한다. 단순히 금리뿐만 아니라 수많은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에 기계적으로 환율이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전문가들조차 단기 환율은 예측이 아닌 해석의 대상이라고 말한다. 사전에 미리 환율의 움직임을 예측하기보다, 사후에 어떤 이유로 환율이 이러한 움직임을 보였구나로 해석하는 수준에 그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개인적인 경험이 하나 떠올랐다. 거시경제에 관심이 생기며 오건영 단장의 책을 비롯해 경제학 관련 서적을 열댓 권쯤 읽었을 무렵, '이제 투자에 대해 좀 알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시점이 2023년 즈음이었다. 당시의 나는 부족하고 얕은 이해를 바탕으로, 인플레이션은 곧 안정되고 금리는 내려갈 것이며, 그 과정에서 장기채권의 수익률이 유리할 것이라 판단했다. 그래서 포트폴리오에서 장기채권 보유 비중을 과감히 늘렸다. 하지만 몇 년이 흐른 지금, 수익률은 그다지 좋지 못하고, 기대와 현실의 간극에 나는 겸손을 배웠다.

이후에도 나는 경제학 서적을 꾸준히 읽고, 강의를 듣고, 공부를 이어가고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공부를 계속할수록 미래의 경제가 어떻게 흘러갈지 더 모르겠다는 생각만 깊어졌다. 알면 알수록 확신은 줄어들고, 질문만 늘어났다. 개그맨 이경규의 말처럼, “무식한 사람이 신념을 가지면 무섭다”는 문장이 뒤늦게 실감 났다. 몇 권의 책으로 습득한 알량한 지식을 진리처럼 믿고 확신에 차 행동하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지 깨달은 것이다.

그럼에도 환율은 장기적으로 국가의 경제 체력이라는 본질적 가치에 수렴할 가능성이 크다. 오건영 작가는 이 점을 토대로, 단기적으로는 트럼프 정부 이후의 혼란한 국제 정세 속에서 극심한 변동성이 이어지겠지만, 장기적으로 원·달러 환율은 우상향 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한다. 불과 2~3년 전 1200원대 환율을 마주하며 위기를 논하던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 곧 안정을 되찾아 우리가 익숙한 1100원대로 회귀할 것이라 기대했지만, 현실은 1500원을 목전에 두고 있다. 저자는 이러한 고환율 국면이 일시적 이상 현상이 아니라 새로운 정상, 즉 뉴노멀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미국의 압도적인 기술 경쟁력과 시장 지배력, 여기에 정책 효과까지 더해지며 글로벌 자본이 미국으로 쏠리고 있고, 이를 유의미하게 견제할 대안이 당분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저자가 제시하는 근거다.

물론 이에 반하는 시각도 존재한다. 레이 달리오는 『변화하는 세계질서』에서 중국을 차세대 패권국으로 지목하며 팍스 아메리카나의 종말을 예측한다. 실제로 중국은 위안화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기 위해 다각도의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페트로달러 체제에 도전하며 위안화 결제를 확대하고, 서구 중심의 은행결제망(SWIFT)에 대응하는 CIPS를 구축했다. 나토에 맞서 브릭스를 주도하고, 아프리카와 아세안 지역으로 영향력을 넓히기 위해 일대일로 사업과 위안화 차관을 활용한다. IMF에 대응하는 금융·투자 기구 설립 역시 같은 맥락이다. 중국은 미국의 금융 깃발이 꽂힌 영역을 호시탐탐 넘보고 있다.

그러나 다수의 전문가들은 이러한 전망이 결과의 문제가 아니라 시점의 문제라고 지적한다. 패권국의 순환 주기가 통상 200년 내외라는 점을 감안하면, 미국은 아직 패권의 중반에도 이르지 않았다. 달러와 미국의 위상이 단기간에 급락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미국이 보유한 군사·금융·기술의 슈퍼파워는 중국의 시도를 번번이 무력화할 수 있는 현실적 힘으로 작동하고 있다.

다만 더 먼 미래의 일은 누구도 단언할 수 없다. 최근 트럼프 정부의 노골적인 자국우선주의와 국제 질서를 경시하는 행태는 캐나다, 호주, 영국, 유럽 등 전통적 우방국들의 신뢰에 균열을 냈다. 달러 패권은 단순히 힘의 결과라기보다, ‘세계 경찰’을 자임해 온 미국에 대한 신뢰와 동의 위에 구축된 질서였다. 그러나 그 수혜를 망각한 채, 교역 상대국은 물론 우방국까지 약탈자로 규정하고 관세로 압박하며, 명분 없이 자국 이익만을 앞세운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거대한 댐은 대개 한 번의 충격으로 무너지지 않는다. 무시하고 지나친 작은 균열이 누적되어 어느 날 붕괴한다. 당장의 근미래에는 미국의 슈퍼파워가 여전히 건재해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우방국과의 신뢰 약화, 중국·러시아·브라질 등 미국과 대치하는 진영과의 분화가 가속된다면, 더 먼 미래의 패권의 왕좌는 공석으로 남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우리가 경제를 공부하는 이유는 결국 투자를 잘하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 우리는 미래의 경제 상황을 예측하고, 각광받을 국가와 산업, 섹터를 맞히려 애쓴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분명해진 사실은 하나다. 미래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불확실하며, 확신은 언제든 배신당할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나 정보 과잉의 시대, 우리는 입맛에 맞는 정보와 지식만 습득할 가능성이 높고, 미래의 수많은 가능성을 닫아 놓은 채 편향된 예측으로 흘러가는 확신은 오히려 우리에게 독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환율의 미래를 예측하는 책을 읽고 내가 얻은 교훈은, 미래를 맞히는 법이 아니었다. 오히려 미래를 단정하지 않은 겸손의 태도였다. 급변하는 혼돈의 시대에 가장 필요한 투자의 미덕은 예측의 정확성이 아닌, 스스로의 확신에 매몰되지 않고 틀릴 수 있음을 인지하는 능력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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