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에서 골을 넣는 방법은 다양하다. 메시처럼 수비수를 추풍낙엽 마냥 제치고 넣거나 호날두처럼 아크로바틱한 오버헤드킥으로 넣거나, 중요한 건 공을 골대 안으로 넣는 것이다. 투자의 세계도 마찬가지이다. 잠재 가치가 높은 기업의 재무제표를 분석하는 가치투자, 차트의 움직임을 살펴 매매하는 차트투자, 아니면 정기적으로 배당금이 나오는 배당투자 등 다양한 방법으로 투자금을 불리면 된다.
정도는 없지만 선호는 있다. 헤딩보다 발리슛으로 넣은 골이 멋지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듯, 투자 방법 역시 그러하다. 나는 수많은 투자의 방법 중 ‘분산투자’를 선호한다. 그 이유는 내가 투자를 하는 목적이 안정적인 노후 대비하기 위함이고, 경험칙으로 시장의 예측 불가능성을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다
‘High Risk, High Return’ 투자 수익률은 감내한 리스크와 비례한다. 즉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는 그만큼 높은 위험성을 각오해야 한다. 파이어족을 꿈꾸거나 단기간에 큰돈을 벌려면 높은 리스크를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내 목표는 수십 년 뒤의 노후를 안정적으로 보내는 것이다. 원금이 적은 초기에는 높은 리스크를 감내할 수 있다. 투자금의 손실이 발생하더라도 향후 노동 소득과 투자 성공 가능성이 이를 메워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남은 근로 기간과 투자 가능 기회가 줄어들어 손실을 보전하기 쉽지 않다. 게다가 총자산이 증가할수록 같은 비율의 손실이라도 절대금액이 커지게 된다. 그래서 장기 투자는 신중해야 한다.
그럼 젊을 때 공격적인 투자를 하여 시드머니를 불려놓고 나이 들수록 안정적으로 투자하면 어떨까? 이러한 운영방법을 활용하는 금융 상품이 TDF라는 이름으로 시중에 판매되고 있다. 하지만 실제 시장에서는 이러한 전략을 성공적으로 실행하기 어려운 요인들이 많다. 나심 탈렙은 <행운에 속지 마라>에서 시장을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시장 수익률을 상회하는 투자전문가는 20%도 안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나머지 80%의 투자자는 쓸데없는 매매로 돈과 에너지를 낭비한다는 뜻이다. 물론 자기만의 방법으로 다방면에서 수익을 실현하는 사람들이 존재하겠지만, 소중한 근로 소득을 날렸던 짧은 투자 경험을 통해 뼈저리게 느낀 것은 함부로 시장을 예측하려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거기에 바쁜 직장 생활과 육아를 병행하는 현실은 내가 투자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극도의 안정성을 추구하는 ‘Low Risk, Low Return’을 내 투자 지침으로 설정하였다.
그렇게 어떤 방법이 나에게 적절할 까 방황을 거듭하다 이 책을 마주하였다. 저자는 분산투자의 중요성을 역설하며, 네 가지의 분산을 힘주어 말한다. 첫 번째는 자산의 분산이다. 보통 투자 자산이라고 하면 주식과 부동산만 생각하지만, 채권, 금, 원자재 등 다양한 자산 군이 존재한다. 이중에 상관관계가 적은 것들로 분산을 해야 한다. 두 번째는 지역의 분산이다. 미국의 경제 위기가 중국의 경기 호재일 수 있다. 그렇기에 하나의 국가에 치우친 투자보다는 다양한 대륙과 국가로 분산할 필요가 있다. 세 번째는 통화의 분산이다. 통화의 상대가치인 환율은 각국 정세에 따라 매일 같이 변동하기 때문에 어느 통화표시 자산을 보유했느냐에 따라 자산의 총액은 요동친다. 따라서 다양한 통화로 자산을 분산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시점의 분산이다. 내재가치에 변화가 없어도 당시의 상황에 따라 각기 다른 평가를 받을 수 있다. 특정시점에 매수하기보다 정기적으로 꾸준히 분할 매수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처럼 다양한 자산군의 시공간적인 분산 전략은 불가해한 시장이 내포한 위험을 회피할 안전장치이다. 이러한 전략의 장점은 갑작스러운 시장의 충격에도 의연할 수 있다는 것과 투자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포트폴리오에 따라 무작정 분할 매수를 하는 것에 만족해야 할까? 단 1%라도 내 수익률을 높일 방법을 고민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이러한 물음에 저자는 성장과 물가의 고-저에 따라 경제 상황을 4가지로 분류하여, 주식, 채권, 원자재, 금 등 상황 별 각광받는 자산을 소개한다. 저자의 상황 별 시나리오를 축약하면 아래와 같다.
(1) 고성장-고물가 : 주식(상승) 채권(보통) 원자재(상승) 금(상승)
(2) 저성장-고물가 : 주식(부진) 채권(부진) 원자재(상승) 금(상승)
(3) 고성장-저물가 : 주식(상승) 채권(보통) 원자재(부진) 금(부진)
(4) 저성장-저물가 : 주식(부진) 채권(상승) 원자재(부진) 금(부진)
(* 이는 저자의 실제 역사와 이론을 통한 상세한 설명 과정은 생략하고 결과만 단순 도식화 한 것으로 저자의 의도와 상이한 부분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 )
이러한 시나리오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미국의 경제 상황이 (1) 번의 시나리오를 향한다고 예상되면 포트폴리오에 미국 채권 비중을 1% 낮추고 주식을 1% 높이는 식으로 운용의 미를 발휘할 수 있다. 이를 통해 큰 리스크는 부담하지 않은 채 연간 수익률의 미묘한 상승을 기대할 수 있다. 소폭의 상승을 과소평가하면 안 된다. 시간이 선사하는 복리라는 마법을 통해 미래의 부를 엄청나게 확대할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러한 시나리오 역시 불완전하다고 말한다. 앞서 언급했듯 시장의 예측 불가능한 특성으로 기존 이론의 틀을 벗어나는 새로운 상황이 계속해서 등장한다. 최근의 미국 주식 시장의 Buy the Dips(저가매수) 심리가 대표적이다. 경기 침체가 예상되면 경기를 선행하는 주식시장은 하락하는 게 전통적인 이론이지만, 최근 미국 주식시장은 이와 다른 움직임을 보였다. 2021년 미국 연준은 고물가에 대응하기 위해 빠르게 기준금리를 인상하였다. 시장의 예측을 상회하는 금리인상 속도에 많은 전문가들이 경기 침체를 예상하였다. 하지만 시장참여자들은 경기가 침체되면 연준이 부양책을 시행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래서 침체를 우려한 하락장은 바겐 세일이라고 믿으며 엄청난 매수세를 보였고, 이는 전통 이론과는 전혀 다른 메커니즘이었다. 즉 귀납적 추론의 결과로 정립된 것이 대부분인 경제학 이론을 맹신하는 것은 위험하다. 언제든 검은 백조가 등장할 수 있음을 각오해야 한다.
우리 사회는 기대수명의 증가로 노년기가 길어지고, 출산율이 하락하여 미래의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들 것이 자명하다. 이러한 기조가 지속되면 사회의 중추역할을 담당할 청장년층이 극단적으로 부족한 역피라미드 형태의 인구구조로 이어질 것이다. 거기에 사회의 가치관이 변하고 있다. 과거와 달리 세대 간 부양해야 한다는 의무감은 사라지고 있다. 이러한 인구구조와 사회인식의 변화를 뉴스와 기사, 각종 미디어를 통해 접한 우리 세대는 암울한 미래를 직시하며, 어느 시대보다 노후 대비의 필요성을 통감하였다. 이로 인해 한때 성행했던 욜로, 파이어 등 불확실한 미래를 외면하는 가치관은 인기가 사라지고 있다. 준비되지 않은 사람에게 불확실한 미래는 절체절명의 위기로 다가오고 있다. 그러나 불안감에 휩싸인 많은 이들이 무모한 투자를 감행하고 있다. 불확실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리스크를 줄이는 분산투자는 필수다. 과연 지금 우리의 자산은 안전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