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서평 2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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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4 인플레이션에서 살아남기(오건영 저)

by 나무파파 Mar 10. 2025


“미 인플레 기대감 30년래 최고… 우려 커져”


지난주 내일 신문의 한 기사 제목이다. 2025년 2월, 물가 상승률에 대한 경제주체들의 예상치를 나타내는 미시간대학의 기대인플레이션이 4.3%로 발표되었다. 통상 중앙은행이 목표치로 삼는 2%를 훨씬 상회하는 수준이다. 2024년 2~3%대 물가 상승률이 지속되자 작년 9월 미 연준은 기준금리를 50bp 인하하였다. 이에 많은 이들이 2021년부터 이어온 기나긴 인플레이션 시대의 종식을 기대하였다. 하지만 미시간대학의 발표와 함께 다시 인플레이션의 공포가 커지고 있다. 또다시 고물가 시대가 도래하는 것일까?


오건영 팀장님의 <인플레이션에서 살아남기>는 2022년 5월 발매된 책으로 2021년 갑작스럽게 찾아온 인플레이션이라는 파고의 원인 분석과 이에 대한 각종 대비책이 담겨있다. 복싱에는 카운터 펀치라는 게 있다. 예상이 되는 펀치는 아무리 강한 펀치라도 이 악물고 버틸 수 있지만, 사각에서 날아오는 카운터 펀치는 예상치 못한 일격에 그 파워가 강하지 않아도 상대의 정신을 잃게 만들기 충분하다. 최근 우리가 경험한 인플레이션은 방심한 세계 경제에게 가해진 카운터 펀치였다. 전 세계 경제는 반세기 가까운 시간 동안 안정적인 물가 기조 속에서 성장해왔다. 위기 때마다 막대한 유동성을 공급해도 물가가 오르지 않았기에 그 누구도 인플레이션을 경계하지 않았다. 하지만 팬데믹 시대의 공포가 가시기도 전에 예상치 못한 고물가라는 카운터 펀치에, 전 세계는 충격에 빠졌다. 그러나 과거를 천천히 돌이켜보면 전조증상은 분명히 존재했다. 그 신호는 무엇이었을까? 과거를 복기해 보자.


1970년대의 세계는 오일 쇼크 등의 사건으로 스태그플레이션을 겪었다. 물가상승률과 실업률은 음의 상관관계에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이론이었지만, 당시에는 고물가와 경기 침체가 함께 닥친 미증유의 시기였다. 중앙은행은 고물가에는 금리 인상, 경기 침체에는 금리 인하라는 통화정책 카드를 꺼내는 것이 일반적인 대응이다. 하지만 당시 서로 다른 패를 요구하는 상황이 동시에 벌어지자 연준은 허둥지둥하는 모습을 보였고 경제의 혼란은 더욱 가중되었다. 이때 등장한 인물이 '인플레 파이터'라고 불리는 폴 볼커 연준 의장이다. 그는 인플레이션을 속전속결로 해결하고 이후 경기 침체를 벗어나야 한다고 우선순위를 정했다. 극심한 경기 침체를 각오하며 기준금리를 무려 20%라는 경악스러운 수준까지 인상하고 나서야 고물가를 극복하였고, 이후 빠르게 기준금리를 안정화시키며 경기를 부양하여 1980년대 스태그플레이션을 벗어나는 데 성공한다.


이후 세계는 눈부신 발전을 경험하는데 그 이유를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세계의 '공조'라고 생각한다. 1980년대 영국의 대처 총리와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을 필두로 신자유주의가 떠올랐고, 1990년대에는 냉전이 종식되고 WTO가 설립되며 세계는 빠르게 통합한다. 2001년 인구 대국의 중국이 WTO에 가입하며 생산의 인건비가 안정화되었다. 이러한 일련의 공조 과정을 통해 바야흐로 세계는 엄청난 발전을 이루게 된다.


이러한 공조는 세계 물가의 안정성을 더해주었고, 이는 각종 위기 때 위정자의 선택지를 넓혀주었다. 대표적인 예가 2008년 세계 금융위기에 연준이 막대한 유동성을 공급하며 위기를 벗어난 것이다. 원래 위기에 돈을 찍는다는 생각은 1차 세계대전 이후 하이퍼인플레이션을 경험한 독일의 사례가 떠올라 선택하기 어려운 방법이었다. 하지만 세계의 공조 덕에 화폐를 살포하는 편리하고 해법은 물가상승이라는 부작용 없이 즉각적인 경기 부양 효과를 발휘하였고, 이후 크고 작은 경기의 부침에 정부당국의 전가의 보도로 활용되었다. 이는 현대통화이론(MMT)이라는 새로운 통화이론으로 정립되기에 이른다.


하지만 영원할 것 같았던 세계화의 기조도 점차 먹구름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2016년 브렉시트와 2018년 미중 무역 전쟁을 시작으로 세계화의 균열이 발생했다. 팬데믹으로 하늘 길이 막히며 국경의 장벽이 높아졌고, 러-우 전쟁과 중동의 위기 등 끊임없는 지정학적 위기가 일어났다. 타민족에 배타적인 민족주의를 내세우는 국가가 득세하였고, 일부 경제권에서는 리쇼어링(해외 공장 복귀) 등이 새로운 경제 정책으로 등장했다. 전 세계 단일 경제권은 점차 권역별 경제 연합으로 분화되었다. 하지만 이렇게 세계의 분열이 가속화되어도 전 세계 금융당국은 여전히 손쉬운 해결책인 유동성 공급 정책에 집착했다. 그 결과 우리는 반세기 만에 인플레이션의 공포를 다시 마주하게 되었다.


2021년 심상치 않은 물가 상승률에 많은 경제계의 구루들은 우려를 표명했다. 하지만 연준의 수장인 파월 의장은 이러한 현상을 ‘일시적’이라고 일축했다. 팬데믹 시대의 엄청난 소비 수요를 충족하지 못해 일시적으로 공급망의 병목현상이 발생한 것이 물가 상승의 원인이고 이는 곧 해결될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연준의 이러한 주장은 보기 좋게 빗나갔고 방심한 세계는 갑작스러운 인플레이션이라는 파고에 휩쓸리게 되었다.


고물가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연준을 위시한 각 국 중앙은행은 엄청난 속도로 기준금리를 인상했다. 하지만 급격한 금리 인상은 또 다른 문제를 불러왔다. 앞서 말했듯 세계는 저물가 기조에 유례없는 저금리의 시대를 살아왔다. 이에 정부와 기업, 민간은 낮은 조달 비용으로 엄청난 레버리지를 활용하였고, 막대한 부채를 지게 되었다. 저금리 시대에는 상환할 이자의 부담이 적었지만, 갑작스러운 금리 인상에 짧은 기간에 상환 이자가 몇 배로 불어나며 시름하는 경제 주체가 급증하였다. 그렇게 부채의 공포가 찾아왔다. 거기에 소비 감소와 내수 침체까지 겹치며 세계 경제는 심각한 국면에 접어들었다.


그렇게 몇 년의 인고의 세월이 지나고 10%에 육박했던 물가 상승률은 2024년에 2~3%로 안정되었다. 연준도 2024년 9월 경기의 부양을 위해 기준금리를 인하하며 인플레이션 시대에 마침표를 찍는 듯했다. 하지만 트럼프 2.0 시대의 관세 폭탄과 이를 대비하는 각국의 금리 인하 정책은 꺼져가던 인플레이션이라는 불씨를 다시 살리고 있다. 이에 대한 두려움이 미시건대에서 발표한 기대인플레이션 수치에 드러나 있다.


우리는 인플레이션 시대에 대해 더욱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돈의 가치가 떨어지는 인플레이션은 우리가 노동으로 피땀 흘려 모은 저축의 가치를 속절없이 녹여버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소중한 자산을 지키기 위해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경제의 급격한 변화에 맞서 대응하려 한다. 하지만 인간이, 그것도 투자의 세계에 종사하는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이 급변하고 예측불가의 경제에 대응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유발 하라리는 자신의 저서 <사피엔스>에서 시장을 2단계 카오스라 명명한다. 1단계 카오스는 날씨와 같이 참여자의 개입이 전혀 영향을 못 미치는 상황이다. 2단계 카오스는 시장과 같이 참여자들의 행동이 결과에 영향을 미쳐 전혀 다른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즉 우리가 주어진 정보를 통해 아무리 정교한 시스템을 도입하여 미래를 예측해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한다 해도, 같은 정보를 활용한 수많은 참여자들의 행동은 예측과 전혀 다른 결과를 낳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대응이 아닌 대비가 필요하다.


이에 대해 저자는 '분산투자'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각기 다른 분야의 자산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여 다양한 경제 상황에 대비하는 자세를 권한다. 주식, 채권과 금 등 다양한 분야에 분산과 더불어 미국, 유럽, 아시아 등 다양한 지역에 분산까지 예기치 못한 경기 변동에 대비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16세기 프랑스의 철학자 미셸 드 몽테뉴는 “역사는 같은 상황을 반복하지 않지만, 그 상황은 대개 비슷한 방식으로 다시 나타난다.”라고 말했다. 미시간 대학교의 기대인플레이션 수치가 다시 물가 상승을 경고하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안일한 안심도, 과도한 경계도 아니다. 냉철하게 현실을 직시하고 경제의 높은 변동성을 인지하여, 우리의 자산을 지키기 위한 나만의 성벽을 공고히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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