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정부의 대중 관세 125%! 위기의 전조인가? ‘지구촌’이라는 단어가 고어(古語)로 느껴질 정도로 세계는 빠르게 분열되고 있다. 자국 우선주의라는 미명 아래 자유무역이라는 기치는 당위성을 잃었고, 그 중심에 미국의 트럼프 정부가 있다. 트럼프가 쏘아 올린 관세에 중국 역시 반응하며 양국은 상호 100%가 넘는 관세를 부과하였다. 이러한 비현실적인 세율이 실현 가능할 리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국의 정책결정자들이 밀어붙이는 이유는 상대방이 열기를 못 참고 먼저 사우나에서 뛰쳐나가기를 기다리기 때문이다. GDP 1, 2 등의 경제 대국이 벌이는 치킨게임에 세계 경제는 풍전등화의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위기'의 사전적 의미는 ‘위험한 고비나 시기’이다. 즉 위기는 절대 오지 말아야 할 시기로 인식된다. 하지만 나일강의 잦은 범람에 비록 누군가는 삶의 터전을 잃었지만, 이로 인해 토양은 비옥해지며 이집트 문명이 꽃피우게 되었다. 위기의 영문 표기인 risk의 어원은 라틴어 risicare(‘용기를 내어 도전하다’)이듯, 위기는 위험과 기회라는 양면성을 지닌다. 위기의 시기 누군가는 전락을 겪지만, 누군가에게는 신분 상승을 경험할 수 있다.
경제 위기도 마찬가지이다. 역사 속 경제 위기 때마다 엄청난 자산의 재분배가 일어났다. 근래의 사례만 보아도 이를 알 수 있다. 2020년 팬데믹 공포로 자산 시장은 급락하고 실물경기는 멈추었지만, 세계 각국의 부양책에 유동성이 급증하며 자산 가격은 고공행진을 시작했다. 이에 많은 이들이 엄청난 부를 거머쥐었다. 이렇듯 위기에 일확천금한 사례를 학습한 시장은 전통적인 이론과 다른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Buy the Dips라는 저가매수의 자세이다. ‘경제 위기가 닥치면 정부가 부양할 것이다, 그렇기에 지금의 주식이 가장 싸다.’는 알고리즘을 장착한 시장은 위기의 신호로 주가가 주춤하면 주식 매집에 몰두했다. 2022년 40년 만의 인플레이션에 연준은 급격히 기준금리를 인상했다. 이로 인해 경기 침체를 두려워하는 세력보다 연준 풋을 기대한 세력의 기세가 강해서 주가는 우상향의 추세를 보였다. 또한 4월 초 트럼프 정부의 관세 정책에 자산 시장은 충격에 빠졌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나스닥 지수는 하루 사이 12%가 급등하는 모습이 연출되기도 했다. 최근의 사례를 통해 우리는 변동성이 높은 시장에서 위기를 대하는 시장의 새로운 자세를 볼 수 있었다.
※ 풋(put) : 풋 옵션에서 파생된 경제 신조어로 정부 당국의 부양책을 의미
하지만 과거를 돌아보면 세계를 강타한 위기 때는 재정당국의 엄청난 부양책도 무용지물이었다. 트럼프 풋, 연준 풋으로 해결될 상황은 위기라기보다 침체라고 보는 게 타당할 것이다. 진정한 위기는 정부와 중앙은행의 노력에도 해결이 어려울 정도로 심각한 상황을 뜻한다. 이러한 위기는 사회 경제 시스템의 항상성(homeostasis)에 대한 지나친 믿음에서 오곤 한다. ‘지금까지 아무 일 없었잖아. 문제가 생기면 연준이 해결해 주겠지.’ 이러한 안일함이 사회구성원의 심리를 지배한 가운데 갑작스레 블랙스완을 마주하며 자산 시장과 실물경제는 위기 속에 빠지고 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외환위기는 사전에 환율의 비정상적인 준동이 있었고, 세계 금융위기는 과도한 민간 부채가 목격되었다. 그럼에도 수많은 시장 참여자들은 징조를 무시했고, 그 결과 발생한 것이 돌이킬 수 없는 위기였다.
※ 항상성(homeostasis) : 다양한 자극에 반응하여 개체 혹은 세포의 상태를 일정하게 유지하려는 성질을 의미하는 생물학 용어
※ 블랙 스완 : 도저히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일이 실제로 일어나는 현상을 뜻하는 경제학 용어
그래서 나는 혼돈의 정세에도 정부의 부양책만 믿는 안일함이 위기의 징조를 무시했던 과거를 답습하는 게 아닐지 우려된다. 현재를 직시하고 미래를 대비하는 가장 좋은 자세는 역사 속에서 배울 수 있다. 오건영 단장은 <위기의 역사>에서 1990년대 이후 우리나라와 전 세계를 강타한 네 번의 경제, 금융 위기의 시대를 분석한다. 1990년대 말 우리나라의 외환위기, 2000년대 초 미국의 닷컴 버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20년 이후 팬데믹 충격과 인플레이션 위기가 바로 그것이다. 본 서평에서는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부분을 짧게 요약해 본다.
1997년 외환위기는 외국 자본에 과도한 부채를 진 것이 큰 원인이다. 1980년대 잘 나가던 일본이 플라자합의와 루브르 합의로 주춤하자 그 틈을 타 우리나라가 빠르게 새로운 수출 강국으로 떠오른다. 수출 확대를 위해 무리하게 설비를 증설하던 기업들이 과도한 부채에 짓눌려 자본유출이 일어났다. 당시 우리나라는 관리변동환율제(고정환율제와 비슷한)를 채택하고 있었다. 이에 자본 유출에도 환율을 방어하느라 달러 금고는 빠르게 비어갔다. 그렇게 우리나라는 외환이 부족해 외채를 갚을 수 없어, 1997년 12월 국가 부도를 선언하며 추운 겨울을 맞이한다. 범국민적인 노력으로 2001년 외채를 모두 상환하였지만, 그 여파는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기업의 설비투자는 위축되며 일자리가 줄어들었고, 기업 대출 수요 감소로 은행권은 수익구조 변화를 위해 가계 대출로 선회하며 가계 빚이 늘어나고 부동산 가격이 크게 상승하였다.
2008년 글로벌 경제 위기는 민간의 과도한 주택 담보대출과 이를 통한 각종 파생상품의 탄생이 큰 원인이다. 1930년대 미국은 은행의 방만한 투자를 막기 위해 은행 규제 법인 글라스-스티걸 법을 제정한다. 하지만 경제적 자유주의 확대와 금융산업 발전이라는 이유로 21세기 직전에 이 법은 폐기된다. 마침 세계화의 수혜로 막대한 유동성이 미국으로 흘러 들어갔다. 미국은 2000년 닷컴 버블의 트라우마 때문에 주식보다 부동산 중심의 투자가 이루어졌고, 은행권의 규제가 약해진 틈을 타 민간을 대상으로 대출을 시행한다. 주택 가격은 고공행진을 이어가며 주택 보유자들의 자산을 확대시켰고, 부의 효과로 소비가 증가하며 인플레이션이 우려되었다. 이에 연준은 기준금리를 인상하였고, 금리 인상으로 과도한 빚을 상환하기 어려운 경제주체들의 파산하고 주택 가격이 폭락하며 대형 투자은행사들이 도산하기 시작했다. 이를 시작으로 전 세계 자산 시장이 붕괴하였고, 미국이라는 거대한 소비자가 무너지자 공급자 역할의 신흥국 경제 역시 휘청거리며 실물경기도 침체에 빠졌다. 연준은 막대한 달러를 살포하는 양적완화를 통해 위기를 타개하는 데에 성공한다. 하지만 이로 인해 엄청난 국가 부채가 쌓이게 된다.
앞서 말했듯 위기의 시기에는 그 조짐을 무시하는 안일함이 짙게 깔려있다. 이와 더불어 또 다른 공통점은 바로 부채이다. 부채의 무서움은 그 파급 효과가 전방위적이라는 것이다. 최근 개인들의 주식 투자가 만연해지며 레버리지를 사용하는 것을 우려하는 기사를 접한 적이 있을 것이다.
**"개인 투자자들의 투기적 베팅, 레버리지 위험 수위 도달"** (한국경제, 2024년 12월 4일)
하지만 이런 레버리지 투자를 자행하는 것은 개인만이 아니다. 기업과 국가의 자본 차입은 채권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결국 빚이다. 코로나라는 전대미문의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전 세계는 막대한 양의 부채를 통해 돈을 풀었고, 미국은 한 해 채권 이자로만 지급하는 달러가 국방비를 넘었다는 충격적인 소식도 들려오고 있다. 원금이 아니라 이자만이다. 이처럼 개인과 기업, 국가를 비롯해 거의 모든 경제의 주체가 부채의 늪에 빠지고 있다. 부채의 무서움은 그 폭탄이 언제, 어떻게 터질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어느 한 주체의 디폴트 선언이 연쇄적인 부도를 초래하여 도미노처럼 수많은 경제 주체를 무너트릴 수 있다.
이러한 위기의 시기는 언젠가 반드시 오기 마련이다. 위기가 존재하지 않는, 모두가 행복한 유토피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는 위기를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 저자는 거안사위(居安思危)의 자세를 강조한다. 평안한 시기에도 위태로울 때를 생각하라는 것이다. 과거의 위기를 반면교사로 삼을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외환 위기를 경험하고 충분한 외환 보유고를 준비했고, 미국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은행권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였다. 개인으로서는 평온한 시기 자신의 역량을 높이고, 다양한 자산 군을 담은 포트폴리오를 준비해야 할 것이다.
모두(冒頭)의 질문을 반복한다. 지금이 위기의 전조인가? 알 수 없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위기란 깜빡이 없이 갑자기 치고 들어온다는 것, 그리고 준비되지 않은 자에게 더욱 가혹하게 다가온다는 것이다. 과연 우리는 준비가 되어있을까? 나만의 성벽과 해자는 굳건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