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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서평 23화

052 햄릿(셰익스피어 저)

by 나무파파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인 <햄릿>을 읽지 않아도 여러 곳에서 한 번쯤은 들어봤을 대사이다. 그 유명세는 도덕적 인물인 햄릿이 복수를 두고 고뇌하는 복잡한 심경을 간단한 문장에 함축적으로 표현했기 때문이다. 혹자는 이러한 햄릿의 태도를 우유부단하다고 보지만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햄릿의 고민은 선함을 지닌 인간의 필연적인 방황이다. 덴마크의 왕자 햄릿은 어떤 일을 겪었던 것일까?


햄릿은 왕국 백성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 신망이 두터운 왕자이다. 그는 부친인 선왕을 살해하고 왕위를 빼앗은 현왕 클로어디스에 대한 복수를 고민한다. 자신의 아비를 해한 클로어디스를 생각하면 분노에 사로잡혀 복수심이 불타오르지만, 복수가 초래할 파멸적인 결과와 자신의 도덕적 신념 때문에 주저한다. 하지만 덕망 높은 햄릿도 극의 진행에 따라 변한다. 과거를 잊으려 할수록 복수에 대한 열망은 더욱 거세진다. 그렇게 클로어디스와 재혼한 어머니 거트루드를 비난하고, 분노의 감정에 사로잡혀 사랑하는 연인 오필리아를 매몰차게 떠나보낸다. 결국 마비된 이성은 재상 폴로니어스를 죽이게 되는 실수를 초래한다. 그 일로 덴마크를 떠나 영국으로 가려고 했지만, 클로디어스가 자신을 제거하려 한다는 음모를 알게 된 햄릿은 복수를 결심하고 돌아온다. 하지만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낳는다. 햄릿에 복수는 그의 아비를 살해한 클로어디스에게 향했고, 폴로니어스의 아들 레어티스는 그의 아비를 죽인 햄릿에게 칼끝을 겨눈다. 클로디어스와 레어티스는 햄릿을 제거하기 위해 검술 대회를 연다. 그렇게 열린 대회에서 햄릿을 비롯한 레어티스, 클로어디스, 거투르드 등 연루된 모두가 사망하는 참극이 벌어진다.


원수를 용서하여 받는 감화보다 복수가 주는 통쾌함이 더 크기에 클라이맥스에 적에게 날리는 복수라는 카운터펀치는 관객들에게 사이다를 마신듯한 개운함을 선사한다. 그렇기 때문에 콘텐츠의 몰입감을 높이는 복수는 영화 등 콘텐츠의 단골 소재이다. 박찬욱 감독의 복수 3부작인 <복수는 나의 것>,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등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작품들이 복수를 소재로 많은 인기를 구가하였다.


하지만 햄릿은 복수의 결과로 도덕적 신념, 사랑하는 연인과 가족, 자신의 지위와 명망, 그리고 목숨을 잃었다. 이처럼 복수는 가슴속 분노를 배설하기 위해 매우 높은 비용을 치러야 하는 행위이다.

최근에는 복수를 넘어, 대신 보복을 하여 타인의 억울함을 해소해 주는 사적 제재를 소재로 하는 콘텐츠가 늘어나는 추세이다. 대표적으로 ‘살인자ㅇ난감(웹툰, 드라마)’, ‘비질란테(웹툰, 드라마)’, ‘베테랑2(영화)’ 등이 있다. 이렇게 미디어 콘텐츠에 복수의 주체가 확장되는 경향은 피해자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 확대와 대중의 공권력에 대한 인식 변화에 있다. 범죄 가해자가 죄질에 비해 낮은 수준의 처벌을 받은 사건들이 인터넷을 통해 공론화되며 피해자의 억울함에 대한 대중의 공감이 높아졌다. 그리고 국가가 피해자들을 제대로 구제하지 못한다는 인식이 각인되어 공권력에 대한 불만과 분노가 쌓였다.


나 또한 범죄자들에 대한 합당한 단죄가 이루어지는 스토리에서 강한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이들을 소재로 한 콘텐츠의 주 소비자이다. 하지만 이러한 사적 제재는 현행 법률과 사회 시스템에 대한 심각한 위반을 넘어 문명사회에서 폭력은 어떠한 경우에도 정당화될 수 없고, 범죄자에 대한 개인의 자의적 판단과 집행은 공권력에 비해 흠결이 높을 수밖에 없는 등 영화와 달리 현실에서는 공중누각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기에 문명화된 시민들에게 ‘다크히어로’는 현실의 수많은 부당함에 대한 분노와 정의로운 사회를 바라는 간절함의 형상화이다.


이처럼 우리는 살면서 겪는 크고 작은 불합리에 분노하지만 우리의 이성은 보복이나 복수를 상상에 머물게 제어한다. 이렇게 셰익스피어는 햄릿을 통해 복수를 한갓 카타르시스의 거름이 아닌, 도덕적 인간의 본능과 이성의 갈등으로 표현하며 인간에 대한 이해를 한 단계 높여주었다. 최근 수많은 콘텐츠들에 비하면 <햄릿>은 밋밋한 감이 없지 않다. 17세기 쓰인 수백 년 전의 작품이기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그럼에도 <햄릿>이 문학계에서 아직도 강한 생명력을 내뿜는 이유는 인간의 본성과 사회적 관계에 대한 중요한 통찰을 제공하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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