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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서평 21화

050 변신(프란츠 카프카 저)

by 나무파파

변치 않는 사랑이 있다면 가족 간의 사랑이 아닐까? 카프카의 변신을 읽기 전의 나는 이렇게 믿어 의심치 않았다. 가족 간의 사랑은 어떠한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절대적인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나 자신의 희생을 백만 번 감수하더라도 가족을 우선시하는 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가족에 대한 사랑의 모습이다. 그러나 카프카의 생각은 달랐던 것 같다. 그러한 그의 생각이 그의 소설 <변신>에 담겨있다.


이 소설은 중편에 속하는 만큼 길지 않고 줄거리가 간단하다. 그레고르는 가세가 기운 집에서 외판원으로 취직해 활동하며 집에 생활비를 지급한다. 그런 그는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는 절대적인 구성원이다. 인간의 기본적인 의식주가 그를 통해 충족되기 때문에 그에 대한 가족들의 사랑은 맹목적이며 열렬하다. 하지만 어느 날 그는 한 마리의 거대한 벌레로 변신한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위치에서 한 마리의 벌레로 급전직하한 그는, 가족들에게 숨겨야 하는 치부이자 식량을 축내며 가세의 몰락을 가속화하는 해충일 뿐이다. 그가 벌어오던 돈으로 학업을 이어 가던 동생도, 그에게 생활비를 의존하며 절대적인 사랑을 보이던 부모도 등을 돌린다. 혈연이라는 강력한 연대에도 불구하고 그는 가족이라는 공동체의 구성원에게 배척되고 만다.


카프카가 이 소설을 집필한 1916년은 본격적인 산업화의 과정 속에서 자본주의가 힘껏 기지개를 켜며 세상은 돈을 중심으로 서술되기 시작한다. 인본주의에 입각한 인간의 존엄성은 자본의 앞에 무기력해진다. 거기에 더해 제국주의의 팽창과 열강들의 경쟁은 민족주의를 심화시켰다. 혼돈과 격변의 시기, 전통의 가치는 상실되고 인간의 탐욕과 폭력성은 공동체를 와해한다. 이는 가장 근원적 공동체인 '가족'에게도 해당된다. 혈연으로 이어진 소규모 집단도 그럴지인데, 문화적, 인종적, 민족적 동질성으로 이어진 인간 사회의 유대감은 얼마나 약해졌을까. 카프카는 이러한 시기를 걸어오며 위기의 전조를 느꼈을 것이다.


물리학에 '이력현상'이라는 용어가 있다. 한 물리적 상태가 당시의 물리적 조건만으로 결정되지 않고, 그것이 이전에 겪어 온 상태의 변화 과정에 의존하는 현상을 말한다. 이는 비단 물리학뿐만 아니라 역사의 현장에도 적용된다. 1차 세계 대전이라는 역사의 특이점은 사라예보에 울려 퍼진 총성으로 시작되었지만, 이는 그전의 수없는 갈등과 분열의 누적에서 기인한 것이며, 카프카가 목격한 모습들이 바로 이러한 것이다.


이후 세상은 끝없는 대혼돈의 시대로 접어든다. 양차 세계 대전과 대공황이 초래한 수많은 유무형의 파괴, 세계열강이 저지른 셀 수 없는 만행과 피식민지의 항거. 이러한 어지러운 소용돌이 속에 발생한 무수한 고통과 상처는 1990년대 소련의 붕괴와 함께 맞이한 냉전의 종식에 이르러야 가까스로 새살이 돋기 시작한다.


이후 세상은 잠깐의 평화기를 맞이한다. 과거보다 빈곤의 퇴치가 이뤄지며 먹고살 만해진 세상에 다시 인권의 가치가 부각된다. 세계화와 함께 세상은 온기를 띤다. 하지만 이러한 분위기는 불과 반세기를 지속하지 못했다. 빠르게 전 세계에 퍼진 금융 자본주의로 모든 가치는 돈으로 평가되며, 스마트폰과 SNS 등 정보통신 기술의 발전은 탈진실의 사회를 초래하고, 국가나 개인의 빈번한 합종연횡은 서로 간의 신뢰를 하락시켰다.


파편화의 흐름에 내몰린 현대인은 다시 한번 가족의 해체를 경험한다. 저출생, 고독사, 은둔 청년, 혼인 인구 감소 등 최근 뉴스를 도배하는 사회적 현상들이 바로 그것이다. 카프카가 목도한 시대는 의식주 등 기본적인 생활의 미충족이 가족 해체의 주된 이유였지만, 어느 시대보다 풍족함을 경험하는 현대에 또다시 이런 와해의 현상이 반복되는 것은 미래에 대한 희망이 상실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민족주의와 국수주의가 다시금 발로 하며 국가와 대륙 간의 거시적인 갈등을 추동하고 있다. 중동과 아프리카, 유럽 대륙과 중국. 세계는 집단적 갈등이 존재하지 않는 곳을 찾기 어렵다. 그나마 무력 분쟁이 없는 우리나라도 성별과 정치적 성향 등 다양한 기준으로 극심한 분열을 앓고 있다. 미시적 관점에서는 개인의 개인주의가 심화되어 내집단 규모를 더욱 축소하며 외집단에 대한 배척을 더욱 강화하였고, 인간의 개체 간 배타성은 점증하고 있다. 그 결과 우리 사회의 유대를 지탱하는 것은 가느다란 실 가닥 불과하게 되었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의 저자로도 유명한 19세기 미국의 작가인 마크 트웨인은 이렇게 말했다. '역사는 반복되지 않지만 운율을 띄고 있다.' 현시대의 분위기가 개인주의, 나노 사회 등으로 명명되며 시대의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치부되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아니면 새로운 특이점의 전초일까? 역사의 운율이 반복되지 않기를,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카프카가 울린 경종을 유념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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