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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서평 20화

049 평균의 종말(토드 로즈 저)

by 나무파파


'평균'이란 단어는 안정감을 준다. 집단주의적인 성향의 인간에게 정규분포 상 가장 높이 솟은 곳에 위치한다는 사실은 다수의 범주에 포함되어 있음을, 그래서 배척당할 가능성이 적음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평균이라는 단어의 어감은 어떨 땐 달리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네 외모는 평균이야'


이런 식의 외모 평가는 그다지 기분 좋지 않다. 잘나지도 못나지도 않은 평범하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특히나 최근 SNS에 업로드되는 각종 과시성 게시물들은 우리들의 비교 심리를 더욱 자극하여 평범한 삶을 위축되게 만든다.


이렇게 '평균'이란 단어는 사용되는 상황에 따라 다른 뉘앙스를 풍기기도 하지만 이것이 함의하고 있는바는 '평균'이 정상과 비정상, 우위와 열위 등 가치 판단의 기준을 제시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기조를 '평균주의'라고 명명하며, 이것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평균주의가 세상을 지배하게 된 역사적인 과정은 무엇일까?


19세기의 천문학자 아돌프 케틀레는 천체의 이동 속도가 측정하는 사람마다 다르게 나오자, 측정 속도의 평균 값을 도출하였다. 그리하여 개별 측정 속도는 오류가 내포되어 있으나, 수많은 측정값을 평균한 수치는 실제 속도에 가깝다는 것을 알아냈다. 다수의 '평균'이 '정답'에 가깝다는 인식을 인간 사회에도 적용하며 평균주의의 시대가 개막하였다. 케틀레는 당시 스코틀랜드 수많은 병사들의 가슴둘레 사이즈의 평균 값을 도출하며 최초로 인체 특징을 평균 낸 사례를 남긴다. 이러한 평균의 의미는 평균치에서 먼 개개인은 오류에 해당하고 평균에 가까울수록 참에 가깝다는 인식이 깔려 있었다. 케틀레의 이론은 사회적으로 엄청난 찬사를 받으며 인구 통계학의 진리처럼 받아들여진다.


이러한 평균 신봉주의는 프랜시스 골턴으로 전환기를 맞이한다. 우생학의 창시자이자 찰스 다윈의 사촌이기도 한 골턴은 평균적임이 이상적임을 주장한 케틀러와 달리 평균을 평범함의 개념으로 전환시킨다. 평균 이상은 우월, 평균은 평범, 평균 이하는 저능으로 구분한 계층 개념을 확립하며 사회는 평균 수준을 향상시키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더 나아가 골턴은 지능적으로 우수한 사람이 신체, 도덕적으로도 우월하다는, 즉 우월함은 일관성을 지닌다는 주장까지 나아간다.


케틀레와 골턴에 의해 평균주의가 사회적으로 만연해졌다면, 프레더릭 윈슬로 테일러는 그러한 평균주의가 전 세계의 기업과 학교의 주류 조직 원칙으로 기능하도록 만들었다. 테일러는 20세기 초 미국의 엔지니어로서 공장의 시스템이 지나치게 비효율적이라 판단하여, 개개인성을 따져 능력 있는 노동자를 고용하는 것보다 평균적인 노동자를 고용하여 표준화된 공정 시스템 속에 작동하는 것이 기업의 안정성에 더 효율적이라고 주장한 인물이다. 또한 현대에는 당연시되는 '관리자'라는 직책을 만들었다. 이들이 노동자의 업무를 규격화하고 이를 준수하는지 감독한다. 이러한 과학적 관리 기법은 전 세계로 퍼졌다.


이러한 테일러 주의는 교육시스템까지 영향을 미친다. 그 결과 학생들의 교육적 자결권보다 표준화된 교육 커리큘럼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교육 제도는 발전하였다. 전국의 모든 학교가 동일한 과목과 시간의 교육을 하도록 짜였고, 모든 교육 방향은 상의하달식으로 결정이 된다. 즉 공교육은 뛰어난 천재를 기르기 보다 평균적인 인간을 양성하도록 짜였다. 이러한 교육 세태를 헤르만 헤세는 <수레바퀴 아래에서>에서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선생들은 한 명의 천재보다 열 명의 얼간이를 원할지도 모른다. 어떻게 생각하면 그것은 당연한 것이리라. 선생의 역할은 정상을 벗어난 인간이 아니라 라틴어를 잘하고 수학을 잘하는 꼼꼼한 인간을 만들어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테일러 주의의 교육학에서 한발 더 나아간 것이 20세기 초 미국의 교육학자 손다이크다. 그는 골턴의 계층 개념을 교육에 도입하여, 학생들을 평균적으로만 교육을 시키면 안 되고 각자의 능력(손다이크도 골턴과 같이 한 가지 분야에 특출난 학생이 다른 분야에도 그럴 것이라 생각했다.)에 따라 관리자가 될지, 노동자가 될지, 그도 아닌 능력이 전무한 학생이면 당장에 자원 투입을 끊어야 할지를 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테일러 주의자들의 평균적인 교육 체계 확립을 찬성하였는데, 그 이유는 테일러 주의자들처럼 평균적인 학생을 길러내고자 하는 목표가 아닌, 평균적인 교육을 통해서 우열한 학생과 열등한 학생을 구분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손다이크와 테일러의 평균주의 사상이 기업의 제조 역량을 향상시켜 사회 전체의 부를 높였고 교육수준을 한 단계 발전시켰으며, 상속받는 부와 특권이 아닌 지식의 역량으로 성공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으나, 이러한 평균주의는 큰 패착을 저지른다. 바로 인간의 개개인성을 묵살한 것이다. 평균주의의 다른 말은 정형화이다. 각각의 평균에 따라 정형화된 인간 군상과 나를 비교하여 자신의 위치를 파악한다. 또 다른 사람을 그렇게 판단한다. 모두가 특정 잣대에 있어 타인보다 나아지길 열망하며 개인주의와 독자성을 상실하게 되었다.


'인간 만사에서는 오랫동안 당연시해왔던 문제들에도 때때로 물음표를 달아볼 필요가 있다'

-버트런드 러셀(영국의 철학자)


책의 서두에 나온 인용문으로, 저자는 지금의 세계에 만연한 평균주의 프레임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평균주의의 종말에 대한 해답을 교육제도의 개편에서 찾고자 한다. 학위수여를 위해 한 분야에 있어 종합적이고 전방위적인 학습보다 자바 프로그래밍 자격증, 페이스트리 자격증 등 극도로 세분화된 자격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이다. 언뜻 보면 불필요한 교육으로 낭비되는 자원을 아끼고, 필요한 분야에 대해 핀 포인트로 능력을 취득한다는 점에 있어 효율적인 시스템으로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일련의 노력들로 평균주의로 점철된 세상의 프레임을 개개인성의 원칙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주장에 대하여 일말의 위험성을 우려한다. 평균주의가 집단의 다양성을 말살하였다면, 교육제도에 대한 저자의 주장은 개인 능력의 다양성을 매몰시킬 위험이 있다. 다양한 능력의 함양은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개인의 생존 전략이다. 평균적인 교육은 미래에 어떠한 능력이라도 쉽게 체득할 수 있도록 개인의 종합적 역량을 강화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직업에 필요한 특수 능력만 취득하는 시스템은 언뜻 효율적으로 보일지 모르나 교육산업 전반에 종사하는 자들의 수익 감소를 초래하여 시작부터 좌초될지 모른다. 혹은 이후 산업 구조 다변화에 따라 과거의 기술에 속박된 채 새로운 직종으로의 구직을 어렵게 할 수도 있다. 물론 이러한 의견에 대해 고등 교육 이전의 공교육 기간에 종합적인 교육을 수행하며, 직장 생활 중에도 지속적으로 시류에 맞는 능력을 발달하면 된다는 재반박이 있을지 모른다. 다만 고등교육일지라도 너무 국소적인 범위의 교육보다 해당 분야에 대한 폭넓은 교육이 더 필요하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이러한 교육의 가치관 차이보다 더 큰 우려는, 평균주의에서 개개인성으로의 프레임 전환이 자칫 객관화된 시스템을 관리자의 주관적인 판단의 장으로 변모시킬 위험성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평균주의의 잣대로 정형화한 것은, 표현을 달리하면 객관적인 기준이다. 예를 들어 테일러 주의하에 구성된 조직 시스템을 갖춘 기업이 직원을 채용할 경우, 그들의 채용 기준은 정량화 되어 있다. 하지만 개개인성의 원칙을 중요시하는 기업이라면 특정 자리에 대한 채용에는 관리자나 오너의 자의적 판단이 강하게 개입될 소지가 있다. 이처럼 객관화라고도 불릴 수 있는 평균주의는 다수의 이해관계 상충 상황에서 예측 가능성을 부여한다. 이런 기준의 부재는 자칫 부당함의 근간이 될지 모른다. 영합성을 띤 특정 이익 배분은 자의성이 내포된 개개인성의 원칙보다 사회적 합의에 따른 규격화된 기준에 따라야 하는 것이 '공정'이라는 시대적 화두에 적합할 것이다.


이러한 나의 반론도 일부의 상황에 국한될 것이다. 즉 세상만사에 적용되는 절대 원칙이란 없다. 우리 세계의 답은 변증법적으로 도출된다. 평균주의는 효율성과 공정성이라는, 개개인성 원칙은 다양성이라는 각각의 특수 가치에 기여하는 만큼, 서로 대척점에 있는 두 기준의 중간 어디즈음이 세상을 더욱 이롭게 할 것이다. 독서의 소회가 다소 교과서적인 결론에 도달했지만, 앞서 말한 변증법적 결론은 결코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 대립된 가치에 대한 끊임없는 사유와 논의의 과정에서 정교한 논리가 발달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지금 사회의 지배적 기조인 평균주의의 명암과 그 역사적 과정을 들려주고, 규격화, 다양성, 공정과 분배 등 다양한 사회가치에 대해 고민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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