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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서평 18화

047 공감은 지능이다(자밀 자키 저)

by 나무파파

‘나 우울해서 빵 샀어.’

‘무슨 빵? 많이 샀어?’


‘야, 너 T야??’


MBTI를 아는 사람이라면 위에 말에 가시가 돋쳐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최근 유행했던 성격유형검사(MBTI)는 공감의 정도에 따라 사람을 T와 F로 구분한다. 흔히 F면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이 뛰어나고 T면 공감 능력이 부족한 성격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이는 꽤나 잘못된 정보라고 한다. T와 F는 공감 능력의 정도보다 공감의 종류에 따라 구분된다. 또x이 같은 상사 때문에 울분을 토하는 마음에 함께 격분하는 것만이 공감이 아니다. 상대의 상황에 감정적인 반응뿐만 아니라 이상한 상사 밑에서 겪는 지속적인 문제를 해결하려는 마음 역시 공감 반응의 하나이다. 전자의 공감은 감정적 공감(F), 후자의 공감은 인지적 공감(T)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모든 사람에게 종류가 다를 뿐 모두 충분한 공감 능력이 있냐? 그건 아니다. 사람은 저마다의 기질에 따라 공감 능력에 차이가 있다. 주변에서 자주 T냐는 핀잔을 들을 정도(앞서 말했듯 이는 MBTI 유행이 불러온 오해이다)로 공감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라면 영원히 이렇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예전에는 공감 능력이 게임 캐릭터에 부여되는 능력치처럼 고정되어 있다고 생각했다(로든베리 가설). 그러나 뇌과학과 정신병리학의 발전은 공감 능력이 기질에 영향을 받기는 하나, 그 정도가 고정된 것이 아니며 충분한 훈련과 교육에 따라 가변적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심지어 반사회적 인격장애로 알려진 사이코패스의 경우에도 치료와 훈련을 통해 타인에 대한 공감에 성공한 실험도 있다! 이처럼 공감이란 종류와 정도에 있어 매우 다양하기에 T와 F처럼 이분화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공감은 지능이다>의 저자는 이러한 공감 능력을 설명하고 그 능력의 중요성을 주장한다. 앞서 인지적, 감정적 공감으로 구분한 공감을 저자는 3단계의 과정으로 설명한다.


- 1단계(현재) : 타인의 감정을 공유한다. 기쁨, 분노, 우울 등 친구와 동일한 감정을 공유하며, 그의 상황과 환경보다는 지금의 감정에 집중하는 것이다.


- 2단계(과거) : 친구 기분의 원인을 분석하여 이유를 파악한다. 친구가 기쁜 이유는 승진을 했기 때문이고, 분노하는 이유는 상사에게 질책 때문이다. 그의 감정이 기쁨이나 분노 등으로 표출되기까지 어떠한 상황과 환경이 원인이었을지 파악해 보는 것이다.


- 3단계(미래) : 타인의 상황을 해결해 주려는 공감이다. 승진한 친구에게는 그의 능력을 칭찬하며 앞으로도 긍정적 환경이 이어질 수 있도록 격려해 주고, 상사와 마찰이 잦은 친구에게는 그 원인과 해결 방법을 논의하며 앞으로 부정적 상황이 줄어들 수 있도록 해결 방법을 제시한다.


이렇듯 공감이란 상대에 감정의 현재 상황을 확인하고 그 원인을 분석하여 긍정적인 미래를 도출하는 건설적인 과정이다. 그러나 최근 T/F의 논쟁에서도 알 수 있듯 우리는 감정적 공감만을 요구한다. 잦은 상사의 꾸중에 지친 애인에게 ‘많이 힘들겠다. 그렇지만 상사가 원하는 방향을 잘 파악해서 보고서를 작성해보자’와 같은 해결책을 제시했다가는 원치 않는 싸움이 일어날 수 있다. 후배에게 괜히 조언이랍시고 업무능력을 키우기 위해 관련 보고서 읽어보기를 권하는 순간 꼰대 선배가 되어버린다. 선비, 꼰대와 같이 인터넷에 비난조의 은어가 만연해지며 우리 사회는 3단계까지 점진적으로 발전되어야 할 공감이 1단계에만 정체하게 되었다.


탐구생활이라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조승연 작가는 한 영상에서 최근 들어 공감의 시간적, 공간적 범위가 축소되는 것 같다고 우려를 표했다. 이것은 무슨 뜻일까?


90년대 냉전의 종식과 함께 지구촌, 세계화 등 전 지구적 통합이라는 레토릭과 함께 많은 국가들이 빠르게 가까워졌다. 아프리카 등 빈민국에 대한 관심과 동정은 높아졌고, 이들을 돕고자 하는 움직임은 커져갔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마지막 공연 장면을 기억하는가? 이는 빈민국의 어려운 이들을 돕기 위한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열린 실제 행사를 연출한 것이며, 당시에는 이러한 모금 행사가 잦았다. 이 밖에도 수많은 이들이 타인의 어려움에 깊이 공감하며 수많은 구호의 손길이 오고 갔다.


하지만 최근에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 먹고살기 어렵다는 한탄과 함께 타인에 대한 관심은 줄어들고 남을 돕는 것은 어느새 사치스러운 행동이 되었다. 거기에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지정학적 갈등들은 타국을 위한 공감의 수출길을 막아버렸다. 이러한 현상은 국경 너머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남녀, 노소, 지역, 출산 여부 등등 수많은 잣대로 나와 너를 구분 짓기 시작하고 내가 아닌 이들에 대한 이해와 공감은 점점 줄어가고 있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신조어가 2022년 트렌드 코리아에 등장한 나노 사회이다. 공감의 범위는 '내'가 속한 파편화된 군소집단 까지만이다. 이렇게 우리 사회의 공간적 공감의 범위는 축소되었다.


이는 비단 타인과의 관계뿐만 아니다. 시간적으로 멀리 떨어진 미래의 나에 대한 공감 역시 줄어들고 있다. 다음 주가 시험인데 당장 유튜브의 숏츠를 끊지 못하겠다. 이는 다음 주 높은 시험 성적을 받아 기뻐할 나보다, 당장의 도파민 분비를 즐기는 나에게 더 높은 공감을 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현재의 소비를 참는 것은 미래에 부유해질 자신을 위한 행동으로, 먼 미래의 자신에 대한 높은 공감에서 기인한 것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욜로와 같은 극단적인 현재 중심적 소비행위를 추구하는 경향이 짙어지며 미래의 자신을 외면하는 모습들을 자주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현대 사람들의 공감의 범위는 왜 협소해지고 있는 것일까? 저명한 정치 경제학자 마틴 울프는 그의 저서 <민주주의적 자본주의의 위기>에서 현대의 자유주의적 민주주의가 훼손되고 포퓰리즘이 만연한 이유로 경기 침체 등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꼽았다. 즉 불안한 미래가 우리를 근시안적인 선택으로 몰아넣어 현재의 감정과 기분에만 충실하고, 우리 내면의 이기심을 자극하여 다른 사람에 대한 공감과 배려를 줄어들게 만든 것이다.


이러한 공감의 축소는 우리 사회의 수많은 문제를 초래한다. 미시적으로는 개인, 집단 간의 갈등과 혐오가 만연해지는 것부터 거시적으로는 기후 위기, 민족주의 심화에 따른 전쟁 발발까지.


다른 동물에 비하면 열등한 신체 능력에도 불구하고 사피엔스 종이 지구 생태계의 최정점에 위치한 이유는 높은 집단주의적 성향 덕분이다. 이는 타인에 대한 유대와 공감의 능력에서 기인한다. 즉 공감은 집단주의의 동물인 인간에게는 뿌리 깊은 본능이다. 하지만 사용하지 않는 능력은 퇴화하듯, 감정적 공감만을 찾는 지금의 상황을 좌시하면 우리의 다양한 차원의 공감 능력을 잃을지도 모른다.


어느 때보다 미래에 대한 희망이 줄어든다고 느끼지만 유사 이래 우리는 가장 풍족한 삶을 영위하고 있다. 가지지 못한 것만 좇다 결핍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다 보면, 소중한 사람의 따스한 한마디도 오지랖과 지적질로 느껴질 뿐이다. 내 기분을 몰라준다며 볼멘소리를 하기보다, 나에게 충고와 조언을 아끼지 않는 사람을 '꼰대'로 치부하기보다, 그들의 인지적 공감을 겸허히 받아들이면 어떨까? 서두에서 언급했듯 공감은 선천적 기질에만 좌우되는 능력이 아니다. 교육과 환경 등 후천적 요소 역시 공감이라는 능력에 크게 기여한다. 이렇듯 다양한 공감을 주고받다 보면 T와 F의 논쟁은 철 지난 유행이 되어 버리고, 서로를 향한 따스한 시선만 남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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